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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화창했다. 승현은 곧 다가오는 어버이날에 부모님에게 꽃을 드리기 위해 꽃집에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를 만났다. 금발의 그가 순결한 하얀 꽃을 만지고 있는 그 모습은, 승현이 딱 3초, 만에 그에게 빠지게 만들었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그의 금발, 입가에 살짝 지은 그의 미소는 마치 천사의 그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멍하니 서있는 승현을 알아챈 지용의 입에서 미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용이 허리를 펴고 제대로 서서 승현을 쳐다보았다. 승현은 지용의 갈색 눈동자와 마주치자, 몸에서 무언가의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맑은 그의 눈동자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부모님께 드릴 꽃을 사려고 하는데요.”

 

 승현이 지용의 시선을 살짝 회피하면서 말했다.

 

 “아, 들어오세요.”

 

 곧 있으면 어버이날이니까 카네이션도 괜찮고요, 간단하게 그냥 장미도 좋고. 지용은 승현을 꽃집 안으로 데려와 이 꽃, 저 꽃을 만지며 하나하나 설명했다. 문제는 승현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는 것. 이미 지용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승현은 아까 시선을 회피했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다시 정신없이 지용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잘 보지 못했던 오똑한 코는 물론, 예쁘게 튀어나온 이마마저 완벽했다.

 

 “……꽃말을 보자면 펜스테몬이나 달리아도 괜찮아요.”

 

 아. 지용이 고개를 돌리자 승현은 깜짝 놀라며 그의 얼굴 감상을 마쳤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지용의 갈색 눈동자가 승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승현은 얼굴이 괜히 화끈거려 또 다시 그와의 눈 맞춤을 은근슬쩍 회피했다.

 

 “그냥 장미로 주세요.”

 

 “몇 송이로 해드릴까요?”

 

 한 다발만 해주세요. 지용이 주문을 받고 포장을 시작하자 승현은 안에 있는 꽃 한 번, 지용 한 번을 계속 번갈아서 쳐다봤다. 만난 지 몇 분이나 됐다고 콩깍지가 꼈을까- 승현의 눈에는 이미 지용이 꽃이요, 아니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꽃을 묶는 것이 정말 예뻤다.

 

 “손님도 이 마을에서 사세요?”

 

 대뜸 지용이 승현에게 물었다. 아, 예. 그런데 되게 처음 보는 거 같아요. 최근에 이사 오셨어요? 몇 달 전에요. 제가 밖에 원체 돌아다니지를 않아서……. 아아, 그렇구나.

 

 그리고 정적. 승현은 말주변이 없는 자신을 처음으로 탓했다.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갈 기회였는데! 이름도 알아낼 기회였는데! 승현은 속으로 백만 번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포장은 거의 다 되었고, 기회는 더 이상 없었다. 아아, 망할 나새끼.

 

 “여기 다 되었어요. 2만원입니다.”

 

 “여기요.”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승현의 심정은 착잡 그 자체였다. 안녕히 가세요-. 꽃을 안아 들고 꽃집에서 나가기 바로 전, 승현은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보기로 결심했다.

 

 “저기…….”

 

 “네?”

 

 “동네도 좁은데, 우, 우리 서로 이름이나…….”

 

 아아-. 지용이 살풋 웃었다. 그의 미소에 승현은 넋이 나가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되었다.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과장하자면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이 정말 순수한 미소였다. 성인의 웃음이 어찌 저리 순수할 수 있을까. 승현은 심장이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것을 애써 막고 있었다.

 

 “지용. 권지용이에요. 그 쪽은요?”

 

 “아, 최승현입니다.”

 

 “음……, 그럼 승현씨라고 하면 되나?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지용이 승현에게 한쪽 손을 내밀었다. 승현은 머뭇거리다 그의 손을 붙잡았다. 손발이 원체 차가운 승현에게 지용의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

 

 

 

 지용을 처음 본 그 날 이후로, 승현은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그의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나비에 둘러싸여 꽃을 정리하던 그의 모습과, 그 아름답던 풍경이, 계속해서 승현의 머릿속에 남아 없어지지 않았다.

 

 그와의 첫 만남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던 심장이 갑자기 쿵쿵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 힘들게 잠들면, 그가 꿈에 나왔다. 자신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는 새침하게, 그러나 예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모습이 아쉬워서, 그리고 사랑스러워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승현의 발걸음은 항상 떼어지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가려 안간힘을 쓰다가, 간신히 한 발짝을 떼어 놓으면 순식간에 꿈에서 깨어버렸다.

 

 그를 만난 지, 딱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승현은 결심했다.

 

 고백, 해보기로.

 

 

 평소 붙임성이 없는 승현에게 있어, 이 행동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승현은 네이버에 ‘고백하는 법’, ‘20대 고백하는 법’, ‘처음 보는 사람한테 고백하는 법’만 수십 번을 쳐봤다. 그러나 전혀 쓸모없는 ‘카톡으로 고백하기’ 같은 해결법만 우수수 나오자, 승현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 카톡을 내가 어떻게 알아. 으으, 어떡하지-. 승현은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결국 승현이 택한 방법은, 장미꽃다발 안겨주기였다. 문제는 주위에 꽃집은 그의 꽃집, 딱 하나라는 것. 그의 꽃집에서 샀던 꽃을 들고 그에게 고백한다, 뭔가 이상하잖아. 그렇다고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 승현은 장롱 속에서 정장 한 벌을 꺼냈다.

 

 “……그런데 뭐라고 말하지.”

 

 아아, 죽겠다.

 

 

 승현은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마음속이 안절부절, 엉망진창으로 뒤섞여버린 승현의 마음과는 달리, 하늘은 새파랗고, 맑았다. 승현은 주먹을 쥔 양손에 더 힘을 줬다. 이 와중에 새파란 하늘은, 꼭 지용의 웃는 모습을 닮아 정말 눈부셨다. 눈이 멀 듯 아파옴에도 승현은 자꾸만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다. 하늘을 쳐다보면 지용이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것만 같아서, 계속 쳐다보았다.

 

 몇 분 걷지 않아 꽃집 앞에 도착한 승현은 다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돌아갈까,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닫혀있는 꽃집의 문고리를 잡았다. 할 수 있다, 최승현. 할 수 있다.

 

 “어서 오세요…… 아 승현씨!”

 

 오랜만이에요, 자주 좀 들러주지.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지용의 환한 미소에 승현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그, 저기…… 꽃 사러…….”

 

 “응응. 어떤 꽃 필요해요?”

 

 누구 줄 건데요? 이번에도 추천해드릴게요. 승현에게 등을 보이며 지용이 말했다. 찰랑거리는 금발이 예뻤다. 들어와 봐요. 승현의 팔을 붙잡고 지용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어어, 하는 사이에 승현은 꽃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사방에서 꽃향기가 풍겨왔다. 나비 몇 마리가 날개를 팔랑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승현씨한테 꽃 받는 사람들은 참 기분 좋을 거 같아요.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꽃 선물도 해주고.”

 

 질투난다-. 괜히 던지는 지용의 말에 승현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승현은 땀이 흐르는 손을 정장 바지에 스윽 닦았다.

 

 “고백하러갈 겁니다.”

 

 “와, 승현씨 멋있다.”

 

 저번보다 더 멋있어진 이유가 이거였구나? 지용은 살풋 미소를 지으며 이 꽃 저 꽃을 만졌다. 고백이라면 아무래도 빨간 장미가 최고 아닐까요? 전형적이긴 하지만요. 꽃말도 정열적인 사랑이에요. 얼마나 멋져. 그리고 승현씨랑 빨강색 참 잘 어울려요. 그럼 그 걸로 주세요. 몇 송이 드릴까요? 100송이요. 와, 오늘 장미 다 나가게 생겼네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승현은 지용이 장미를 포장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지각색의 꽃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홀린 몇몇의 나비들은 꽃잎에 앉아 열심히 움직이던 날개를 쉬게 해주고 있었다. 승현은 다시 지용을 쳐다보았다. 형형색색의 꽃들 사이에 있는 백금발의 동그란 머리.

 

 “다 되었어요.”

 

 21만원인데, 파이팅 하라고 만원 깎아드릴게요. 지용이 ‘만원’을 나타내는 것처럼 검지를 피며 말했다. 괜히 귀엽잖아, 라고 생각하며 승현은 지갑에서 현금 20만원을 꺼냈다. 승현씨 센스 있네. 여기 꽃다발이요. 지용은 승현에게 돈을 받고 꽃다발을 안겼다. 꽃다발이 승현의 품에 가득 찼다. 승현이 장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지용에게 다시 넘겼다. 지용이 장미를 한 아름 들고 고개를 빼꼼 내밀며, 승현을 의문이 가득 찬 눈길로 쳐다보았다. 승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 지금이다.

 

 “가지세요.”

 

 “네?”

 

 “당신, 에게 고백하러 왔습니다.”

 

 승현의 귀가 빨개지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자꾸 땀이 흘렀다. 평소에 몸이 차가운 지라 이렇게 땀이 많이 흐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용기를 내 지용의 갈색 눈동자와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말했다.

 

 “처음 봤을 때 반했습니다.”

 

 저를요……? 지용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겠어요, 저는 당신이 좋습니다. 승현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게이라고 혐오하지는 않을까, 조금 더 알아본 후에 고백할 걸 그랬나. 승현은 갑자기 밀려오는 후회에 고개를 푹 숙였다. 이대로 틀어지는 건 아닐까, 온갖 부정적인 잡생각이 승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그리고 승현의 생각은 결국 현실과 일치해버렸다. 안되는구나. 끝나버렸다.

 

 “괜찮습니다.”

 

 승현은 뒤를 돌아 꽃집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 때 지용이 승현의 손을 붙잡았다. 방금 차였어도 주제 파악을 못하는 심장은 또 다시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승현이 뒤를 돌아보자, 한 손에 장미를 들고 환하게 웃는 지용이 있었다.

 

 “승현씨, 나도 승현씨가 좋아요.”

 

 지용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소리였다. 그런데 왜 찬 거지? 이번에는 승현이 지용을 의문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우리 만난 지 일주일도 안됐잖아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귀면 서로에게 상처만 주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우리 일단은 자주 만나보자고요. 응? 지용이 눈웃음을 치며 승현에게 말했다. 그리고 승현은 생각했다. 드디어 천사를 만났다고. 승현은 다시 지용에게 돌아 승현의 손을 잡았던 지용의 손을 꼭 잡았다.

 

 “지용씨, 내가 정말 잘해줄게요. 진짜, 잘해줄게요.”

 

 알았어요, 알았어. 지용이 승현을 보며 까르르 웃었다.

 

 “그럼 이 장미들은 내가 가지는 거예요?”

 

 “응, 당신 겁니다. 당신이 다 가져요.”

 

 그 꽃도, 나도 이제 오로지 당신 것이니까. 당신이 다 가져요. 승현은 지용이 안아들고 있는 장미꽃을 바닥에 두고 힘껏 껴안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앞으로 많이 안을 수 있는 날들이 올 테니까.

 

 “지용씨, 나 한 번만 안아보면 안돼요?”

 

 사실 못 참았다.

 

 “응, 안돼요. 우리 아직 사귀는 건 아니잖아.”

 

 승현씨, 나 비싼 남자에요. 앞으로 지켜볼 거야. 지용의 얄미운 말마저 승현의 눈에는 귀여운 투정으로 보였다. 아, 고백한 지 몇 분이나 됐다고 그새 콩깍지가 씌었을까. 뭐 그러면 어때. 어차피 낄 콩깍지, 익숙해지기나 해야지.

 

 

 그런데 승현씨, 내 꽃집에서 산 꽃으로 나한테 고백할 생각은 어떻게 했대요? 주위에 꽃집이 여기밖에 없어서……. 아하하- 뭔가 살짝 웃긴 거 있지. 내가 이거 다시 돈 받고 팔면 어떻게 할 거에요? ……. 농담이야 승현씨, 웃어요. 승현씨 웃으면 멋있어. 응응, 멋있다. 그런데 우리 이제 썸타는 사이인거에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와, 나 이런 거 처음이야.

 

 하여튼, 우리 잘 해봐요 승현씨.

 

 

 

 하늘거리며 날갯짓을 하던 노랑나비가 지용이 들고 있는 장미꽃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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