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처음 최승현을 만난 건 고2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 내가 전학을 오고 나서였다. 이미 끼리끼리 뭉쳐있는 아이들에 왕따가 되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선생님이 가르킨 빈자리에 앉았을 때.
'안녕, 난 최승현이야.'
줄이 그어진 노트에 조그맣게 쓰여있는 글자가 내 앞에 들이밀어졌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엔 짙은 눈썹에 오목조목 잘생긴 남자아이가 있었다. 내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아이가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다시 한번 종이를 가볍게 흔들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려졌다.
*
이 어중간한 기간에 온 낯선 전학생에게 아이들은 다행히 환영의 인사를 건네왔다. 내가 처음 보는 아이들의 질문들을 하나하나 답해줄 동안 최승현은 그저 뒤에서 우리들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원체 말이 없는 앤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 앞에 앉은 영배란 아이가 최승현을 가르켰다.
"얘 귀 안 들리는 거 알고 있어?"
그때의 나는 감정을 숨기는 게 어려운 어린애였다. 그래서 실례인줄 알면서도 당황한 표정을 여지없이 드러냈었다. 생각해보면 충분히 기분 나쁠만한 상황이었는데도 최승현은 그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 웃는 얼굴에 할 말을 잃은 사이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모두가 돌아가고 영배마저 몸을 튼 이 순간. 나는 어떻게 최승현을 대해야 하는지 약간의 막막함이 들었다. 열여덟. 철없던 고등학생에게 장애를 가진 친구는 너무나 낯선 존재였다.
수업이 중간쯤 지났을 쯤.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쉬는 시간 이후로 왜인지 느껴지던 어색함에 억지로 교과서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자 아침때와 같은 노트가 있었다. 최승현의 얼굴만큼이나 단정한 글씨가 눈에 띄였다.
'불편하면 선생님한테 바꿔달라 할까? 나는 괜찮아.'
나는 그제서야 아차 하는 마음으로 최승현을 바라봤다. 다정스레 눈을 맞춰오는 모습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까의 모습에 상처라도 받지는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에 잠시 글자를 바라보다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최승현은 약간 놀란 듯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소리 없는 웃음이 교실 한가득 피어올랐다.
*
그 날 이후로 우리는 무섭게 가까워져 갔고, 1년이 지난 고3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끝나고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최승현은 나에게 고백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설픈 고백이었다. 그 당시의 우리는 모든 대화를 노트나 핸드폰으로 해결했었는데,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던 내 문자에 최승현은 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볼 뿐이었다. 기다림에 지친 내가 최승현의 팔을 붙잡자 그제서야 멈췄던 손이 움직였다. 얼마나 힘주어 누르는지 키패드가 고장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후, 겨우 돌려받은 핸드폰엔.
‘좋아해. 지용아.’
간결한 두 마디가 적혀있었다. 우리는 그대로 걷던 걸음도 멈추고 서로를 바라봤다. 최승현은 처음 만났던 날 그대로의 웃음으로 나에게 손을 건넸다. 그리고 나는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최승현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
“나 왔어.”
또 언젠가는 최승현이 내게 귀를 다친 이유를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느릿한 손길로 ‘가족 여행 중에 교통사고’를 써내려가는 모습은 눈물만 흘리지 않았을 뿐이지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나는 짐짓 어른처럼 굴려는 그런 최승현을 대신해 어린아이처럼 울어야만 했다.
“지용아.”
최승현은 그 사고 이후로 차가 무섭다고 했다. 많이 무서워? 횡단보도 앞에서 불안하게 손을 떨어대던 최승현은 내 물음에 아무 말 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권지용.”
지용은 어깨를 강하게 잡아오는 영배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정신 차려. 단호하게 말하는 영배의 어깨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새하얀 꽃들 사이에 파묻혀있는 최승현. 말도 못하는 주제에 세상 다 가진 사람처럼 웃고 있는 최승현.
그런 네가 왜 거기 있는건데?
*
사인은 대낮에 뺑소니로 인한 즉사. 최승현은 차로 귀를 잃더니 기어코 차로 생을 마감했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질긴 운명이었다.
영배가 빈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르기 시작했다. 차오르던 술은 정확히 컵 끝부분에서 멈춰섰다.
“사람 하나 죽는 거 별거 아니네.”
단숨에 술을 들이 킨 영배가 그렇게 말했다. 지용은 대답대신 묽은 육계장을 입에 넣었다. 매콤한 국물과 퉁퉁 불은 건더기가 쉬이 넘어가지 못하고 목 언저리에 쌓여갔다.
*
이틀을 버티다 화장을 하러가는 마지막 날. 집에 돌아가기로 맘을 먹었다. 도저히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최승현을 볼 자신이 없어서였다. 갈 준비를 하는 지용의 옆에서 영배는 침묵을 지켰다.
"끝나고 연락할게."
주차장 앞까지 배웅을 온 영배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영배와 지용의 사이에선 특유의 향냄새가 진동을 했다. 지용은 무의식적으로 코를 찡긋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문을 열고 몸을 숙이던 지용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앞에 서있던 영배가 의아한 눈길로 마주했다.
“그런데 영배야.”
“왜.”
“정말 승현이가 죽었어?”
영배는 지용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용은 그 말을 끝으로 차 안으로 들어섰다.
*
꿈을 꾸었다. 권지용과 최승현은 골목 한 복판에 서있었다. 지용은 승현이 고백하던 고3 여름방학 날임을 깨달았다. 하얀 교복을 입은 승현이 지용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미안해. 지용아.’
아, 승현아 안돼.
뒤집어지는 속에 눈을 뜨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시큼한 위액과 눈물 뿐이었다.
*
"요즘 얼굴보기 왜 이렇게 힘드냐."
타박하는 듯 물어오는 질문에 지용은 그저 소리 없이 웃었다. 소리 없이 웃는 건 최승현이 가장 잘하던 짓이었다. 쏟아질듯 하면서도 끝까지 쏟아지지 않던 웃음소리.
"무슨 생각해?"
"그냥."
그런데 왜 불렀어. 지용의 물음에 영배가 무언가를 가방에서 꺼내들었다.
"아까 아줌마가 유품정리 한다고 해서 갔다가."
지용의 손을 붙잡고 툭, 내려놓은 그것은
“네 거 같아서."
두터운 노트 한 권이었다.
*
네가 언제부터 글을 썼던가. 처음 페이지를 열었을 때 빼곡히 쓰여있는 글자들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20xx년 x월 x일]
이제야 숨이 턱 막혀왔다. 익숙한 날짜. 바로 며칠 전 꿈에도 나왔던 그 날이었다.
[안녕. 지용아. 이건 너에게 보내는 편지면서 내 일기가 될 거야. 결국 너와 나, 우리에게 보내는 이야기지. 과연 이 걸 너에게 보여줄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처음으로 너와 손을 잡으면서 나는 마음 전체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기분을 느꼈어. 겨우 손만 잡았을 뿐인데. 너는 그 정도로 나에게 대단한 존잰가봐.
지용아, 나는 비록 너의 손만큼이나 따뜻할 너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내 목소리로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못하지만, 대신 그만큼의 사랑을 글로, 손으로, 몸으로 전할게. 네가 절대 외롭다 느끼지 못하도록 내 모든 것을 너에게 줄게. 그러니까 나를 사랑한다면 너는 그냥 내 손을 잡고 웃어주기만 해줘. 너의 사랑이 내 온몸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나는 그거면 충분하거든.]
[20xx년 x월 x일]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 나는 네가 내 옆자리에 앉던 그 순간순간 모두를 기억해. 어색한 웃음으로 잔뜩 얼어있는 네 모습 참 귀엽다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이제와 말하는 건데 너한테 자리 바꿔도 괜찮다고 했던 거. 사실 속으로는 네가 가지 않았으면 했었어. 좀 더 너를 알고 싶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부터 너를 좋아하고 있던 게 아닐까싶어. 민망한 말이지만 첫눈에 빠진 게 이런 걸까.]
짧은 문장들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피가 몰리는 코끝과 눈가에 인상을 찌푸리고 다음 장을 급히 넘겼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정기적인 날짜들은 아니었지만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승현은 어느 날은 사랑한다 하고, 어느 날은 미안하다 말했다. 비록 표현은 제 각각 이였지만 결국 주인공은 권지용과 최승현. 둘 뿐이었다.
어느새 마지막 편지에 다다랐다. 정확히 승현이 죽기 삼일 전의 날짜였다.
[20xx년 x월 x일]
[안녕 지용아. 어느새 이 노트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거의 1년의 시간이 지났네. 그 길다면 길은 시간동안 아직까지 내 손을 놓지 않아줘서 고마워.
오늘 엄마한테서 아는 사람의 장례소식을 들었어. 아주 건강했던 사람이었는데 알고 봤더니 췌장암 말기였대. 그래서 손쓸 틈도 없이 돌아가셨다는 거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기게도 네가 생각나더라.
언젠가,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게 될 날이 올지도 몰라. 어쩌면 연락도 안 되고 만날 수 없는 곳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나는 떨어진 그 곳에서 너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네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고 너도 그 곳에서 나를 사랑하고 있어줘.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다른 곳이라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면 되는 거야.
나는 꾸준히 너를 사랑할 자신이 있어. 그리고 너는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PS. 한참 생각해 봤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지금처럼 내 곁에서 안 떨어지는 게 제일 좋을 거 같아. 사랑해 지용아.]
*
순간 어지럼증이 돌았다. 힘없이 고꾸라진 머리는 차디찬 바닥에 그대로 부닥쳤다. 지용은 제대로 숨을 쉴 수 가 없었다. 처음 노트를 넘겼을 때부터 따갑게 두 눈을 찔러대던 글씨가 여전히 눈앞에 존재했다. 꾹꾹 힘주어 쓴 단정한 글씨. 내가 사랑했던 또 하나의 최승현.
결국 근 3일 동안 잘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제대로 자지 못해 뻑뻑해진 눈 아래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은 그대로 다시 제 목으로 차오르는지 토해내듯 힘겹게 뱉어낸 거친 숨에서조차 울음기가 가득했다.
너를 잘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지.
지용은 지쳐버린 몸을 완전히 바닥에 누이고 허탈해져오는 마음에 눈을 감고 웃음을 터뜨렸다. 허파에서부터 나오는 바람 섞인 소리는 웃음보단 울음에 가까웠지만 어쨌거나 지용은 웃었다. 내가 이런 너를 어떻게 잊어. 눅눅히 젖은 목소리가 형체도 없이 공기 중 어딘가로 흘러갔다.
*
꿈을 꾸었다. 여전한 열아홉의 최승현과 스무 살의 권지용이 있었다. 지용은 제 앞으로 또다시 들이밀어지는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미안해 지용아.’
고개를 들었다. 흰 교복이 유난히 잘 어울렸던 열아홉의 최승현은 어느새 스무 살의 최승현이 되어 지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기 잘 봤어.”
까끌까끌한 목 언저리 너머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마 최승현은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지용은 쓰게 웃으며 승현의 손을 붙잡았다. 지용의 손보다 반쯤은 더 큰 손이 다정하게 감싸왔다. 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따뜻한 온기라서, 지용은 울컥하고 올라오는 마음을 꾹 참아내야 했다. 그리곤 마치 그 날의 승현처럼 한 자, 한 자 힘주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승현은 여전히 지용의 반대쪽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용은 말없이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승현의 손이 천천히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우린 괜찮을 거야. 지금도 같은 마음이잖아.’
지용은 핸드폰에 눈을 떼지 못하는 승현의 뺨에 손을 올렸다. 둘 사이로 시선이 얽혀졌다.
“사랑해. 네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가까워지는 승현의 얼굴에 지용은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승현의 웃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단 한 번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확실히 승현의 목소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