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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마다 가진 빛을 뽐내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만큼이나 아름다운 서울의 밤하늘은 이미 완연한 남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복잡했고, 온갖 종류의 자동차들로 끝도 없이 메워진 도로는 시간이 멈춘 듯 마비되어 있었다. 점점 색을 더해가는 밤하늘과 함께 고된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며 내일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의 치열한 발걸음 속에서,

 

  큐어(The Cure)의 아침은 밝아오고 있었다.

 

  서울의 중심인 강남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정치계 인사들부터 연예인들까지 많은 고위층 사람들이 찾는다는 최고급 와인 바 ‘큐어’는 단순한 와인 바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꽤 커 보였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마주 보이는 벽장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와인 병이 여백 없이 꽉 채워져 있었으며 너무 차분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묘한 분위기를 풍겨냈다. 주방 역시 레스토랑인지 와인 바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1층에서 꽤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스테이크부터 스시, 와인과 곁들여 먹기 좋은 간단한 안주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큐어의 외양을 묘사하자면 아무래도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웨이터들은 모두 전용 유니폼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채로 복도를 이리저리 활보했다. 탁 트여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닫혀 있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잘 익은 포도로 담근 레드와인 색의 어두운 조명 때문임이 분명했다. 천장에 수도 없이 달린 조명들, 채도 낮은 색들이 빛으로 어우러져 뿜어내는 그 모습들은 가히 장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특히 바 매니저인 승현은 3층에서 보드카를 마시며 천장에 달려있는 총천연색의 빛의 향연들을 감상하는 것을 즐겼는데, 웬 일인지 오늘 그는 1층 바 테이블에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투명한 칵테일이 담긴 글라스에 머물러 있었고, 또한 유리잔에 투과되어 보이는 희고 작은 손에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었다. 다리를 잔뜩 꼬고 앉는 바람에 구김 없던 슬랙스에 약간의 주름이 생기긴 했지만, 정작 다른 것에 열중하고 있었던 승현은 그것에 대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웬 칵테일?”

  “레몬 칵테일이에요.”

  “마셔 봐도 되나요?”

  “네. 물론이죠. 기존에 있던 메뉴에 추가할 계획인데 지금은 레몬 질이 별로라서 그렇게 당도가 높거나 맛이 깊지는 않겠지만…… 많이… 이상한가요?”

 

  아니요- 맛있는데요. 그 간단한 말을 듣기까지 얼마나 노심초사 했던가! 승현의 말에 그제서야 웃는 지용이었다. 3년 전, 큐어의 일을 도와주던 바텐더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고 나서 바 매니저와 바텐더를 동시에 맡아오던 승현은 주변 지인의 소개로 큐어의 바텐더를 하기에 제격이라는 권지용을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부터 동글동글한 외모와 함께 좋은 인상을 심어준 그는 바텐더라는 직업과 정말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말투와 따뜻한 성격, 그리고 수준급의 실력을 소유한 탓에 다른 것 따질 것도 없이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바로 지용을 스카우트를 해 온 승현은 그 때의 급한 결정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안심했을 정도로 승현은 지용에 대해 엄청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매니저님은 칵테일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으실 것 같았는데… 의외네요. ”

  “내가 그래 보였나요?”

  “외관이 그렇다는 건 아니구요. 보드카나 위스키, 진한 와인 정도만 드시는 것 같아서요. 대중화 된 것들도 잘 안 찾으시는 것 같고.”

  “칵테일을 아예 안 먹는 건 아니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종류가 있긴 하죠. 제 취향을 확실히 알고 계시네요.”

 

  승현은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어차피 바텐더라는 직업 특성 상 고객의 취향을 잘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이렇게 가끔씩 지용이 자신에게 소소한 부분이라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뭔가 지용에게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만약 착각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테이블이 한적하네요.”

  “네. 아무래도 주말도 아니고 다들 룸 위주로 들어가시니까요.”

  “다행이네요. 바 테이블은 넓은데 지용씨 혼자 다 손님들 받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 쓰였는데.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요. 지용씨 오기 전까지만 해도 바 테이블은 내가 맡고 있었거든요.”

  “정말요? 매니저님이?”

  “그럼요. 지금은 지용씨가 계시니까 안 하고 있는 거구요.”

 

  중앙 바 테이블의 분위기는 갈수록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잠깐의 담소 후 눈을 마주치며 각종 알코올 음료 제조에 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던 둘의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다른 때보다 더 아쉬웠던 이유는, 평일 새벽의 여유로움에 너무 익숙해 진 탓이었다.

 

  “매니저님. 3층 룸 호출이요.”

  “아… 잠깐 실례할게요.”

  “네. 이따 뵈요.”

 

  바 테이블에 더 앉아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승현은 자신을 호출한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때문인지 우스꽝스러운 스텝으로 먼 거리에서 얼핏 바라본 지용이 있는 중앙 테이블, 아니 정확히는 지용을 바라본 것이었다.

 

  예쁘게 생겼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많은 것이 변했지만 이 생각만큼은 변할 여지가 없었다. 멀리서 보든 가까이서 보든 승현에게 지용에 대한 생각의 변화 따위는 없었다. 선반 위로 옮겨놓을 때마다 항상 옅은 샴푸 향이 나던 연갈색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찰랑거렸고 어두운 조명에 의해 음영진 눈가는 섹시하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승현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심오한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승현은 고개를 뒤로 한 채 지용을 눈에 담기 바빴다. 심장은 쉴 새 없이 요동쳤고, 호흡은 자꾸만 가빠져왔다. 더 있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승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2.

 

  

 

  외국에 오래 있어서 그런 것인지 지용은 서울의 낯선 공기가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어가 어눌하거나 한국 정서가 어색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용은 어쨌든 그렇게 느꼈다.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 어디보다 가장 따뜻하고 편안해야 할 서울이 스물 일곱 지용에게는 그저 타지(他地)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색함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큐어에 취직한 전후로 나뉘는데, 열 살 정도부터 지금까지 외국에서 지내다 온 자신을 배려해 주는 웨이터들과 매니저인 승현, 또 직업이 바텐더이고 동시에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그런 느낌들은 어느새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 지용에게 큐어는 집과 다름이 없었다. 항상 편안함을 주는 마음의 안식처. 

 

  그런데 갑자기, 원래도 어두운 큐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익숙한 냉기는.

 

  “여기서 일 해?”

 

  예감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승현과의 대화 후 곧바로 밀려들어오는 주문으로 인해 선반에 있던 와인의 개수를 파악하던 지용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나 입국했어.”

 

  이혁수.

 

  독일에서부터 같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생활을 같이 했던 그가 한국에는 갑자기 무슨 일일까. 바텐더가 되기 위해 한 길만 걸으며 공부에 매달렸던 지용에 비해 혁수는 경영학을 배우고 싶어 했다. 같은 길을 걸었던 둘은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다행히도 경영학이 적성에 맞았던 것인지 혁수는 독일에서 큐어 만큼이나 큰 바를 차려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처음에 지용이 큐어에 취직했다는 말을 듣고 아닌 척 했지만 내심 서운했던 혁수는 지용을 보기 위해 일부러 한국으로 입국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본 얼굴, 반가웠다.

 

  “생각보다 잘 살고 있었네. 우리 바 말고 다른 곳에 취직했다길래 어떤가 하고 보러 왔지. 분위기 좋은데? 물론 내 바(Bar) 보다는 아니지만.”

  “…너…! 이렇게 갑자기 오는게 어딨어?”

  “나 안 반가워? 우리 나름 오랜만에 만난 건데.”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뜬금없잖아……!"

 

  혁수가 맞아.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긴 해-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지용은 큐어에서 취급하는 와인 종류가 빼곡히 적힌 서류 뭉치로 부채질을 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혀를 쏙 내밀며 뭐가 어떻냐는 듯 큐어의 웅장한 내부를 구경하던 혁수는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별 시덥잖은 곳에서 일하면 당장 독일로 데려오려고 했는데… 니가 일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뭐래. 그나저나 연락 좀 하고 오지! 영업 시간이라 나가지도 못하고…”

  “아냐. 어차피 나 너 만나고 아침에 바로 일본 가야 돼. 식사는 여기서 하면 되는 거고.”

  “일단 앉아.”

 

  지용은 선반에서 아까 여자 손님이 과일 안주와 함께 주문했던 블루넌 골드 에디션(Blue Nun Gold Edition)두 병을 집었다. 블루넌 골드 에디션은 달기도 하고 과일이나 샐러드와 같이 먹으면 맛이 좋아 여성 고객들이 많이 찾는 와인 중 하나였는데, 처음에 이 와인이 ‘스위티 와인’ 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지용은 두 병중 한 병을 다시 선반 위에 꽂아 두었다. 

  와인을 선택할 때는 첫째로 메인 메뉴로 무엇을 먹느냐가 가장 중요했는데, 어떤 와인이든 궁합이 잘 맞는 음식과 어우러지면 그 향과 맛은 배가 되어 입안 곳곳을 누볐다. 혁수의 성격 상 과일 같은 건 안 먹을 것 같고, 그럼 고기? 스테이크? 초밥?

 

  “이혁수, 너 단 거 안 먹지?”

  “어. 나 드라이와인 좋아해.”

  “알았어. 메인 메뉴는 뭘로 할래? 내가 살게.”

  “여기서 제일 비싼 스테이크로 해 줘.”

 

  스테이크라는 말에 지용은 서둘러 구석에서 샤또 까망삭(Chateau Camensac)을 빼냈다. 가격대가 좀 있는 편이라 테이블에서 주문하는 손님들은 별로 찾지 않는 와인이었는데, 지용이 마셔본 것 중 스테이크와 함께했을 때 가장 맛이 좋았던 것은 이 와인이었다. 여러 잔을 마실 때마다 각각의 맛이 다르다는 점은 이 와인의 큰 장점이었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자연스러운 풍미를 위해 미리 코르크 마개를 열어 놓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지용은 와인 두 병을 들고 테이블로 돌아와 혁수의 앞에 샤또 까망삭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서 바로 아까 주문을 받았던 블루넌 골드 에디션부터 세팅을 시작했다. 여자 손님은 빠른 지용의 손놀림에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고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과일 안주는 바로 테이블에 놓여질 것이고, 코르크 마개만 개봉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직접 개봉하시겠어요?”

  “네?”

  “가끔 진짜 와인을 두고 가짜 와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신경 쓰이시면 직접 개봉하실래요?”

  “아니에요. 큐어에서 설마 가짜 와인을 취급할 리가.”

 

  여자 손님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름 저렴한 편에 속하는 와인이더라도 큐어에게 손실이 가는 오점은 남기지 말아야 했다. 설마 큐어 같은 고급 와인 바가 가짜 와인을 취급하며 손님들을 희롱할 리는 없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도 있을 수 있기에 와인을 개봉하기 전에는 무조건 손님에게 먼저 의사를 묻고 행동해 주세요. 라고 승현이 특별히 지용에게 당부했던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세팅은 끝났다. 비교적 간단한 것이었기에 시간은 별로 걸리지도 않았지만 오랜 친구를 길고 긴 바 테이블 구석에 와인과 함께 혼자 앉혀놓은 지용은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본래 지용은 손님들에게 음료를 제공해주며 (특히 혼자 온 손님 같은 경우)말동무가 되어주곤 했지만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어차피 혁수와 대화를 하고 있더라도 새로 주문이 들어온다면 다시 일어나야 하겠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난 것이기에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부르시고요.”

  “네, 고마워요.”

 

  짧은 눈인사, 그리고 지용은 서둘러 혁수가 있는 쪽으로 의자를 끌고 가 앉았다. 

 

  “서비스 정신이 아주 투철하네. 고용하고 싶을 정도야.”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일자리가 있어.”

 

  19년지기 죽마고우들의 대화는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됐다. 대부분 혁수가 하는 이야기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지만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많은 세월동안 쌓아왔던 추억이 있기에 오랜만에 과거의 이야기를 잔뜩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한국으로 온 후 3년 동안에 있었던 일들이 제일 궁금했다. 고등학교 때, 매일 감기에 걸려 옷소매를 콧물로 잔뜩 적시고 다니던 다니엘이 얼마 전 결혼을 했다는 것과, 대학교에서 같은 모임에 들어 있었던 미국계 동양인 제니퍼가 지용을 3년간 짝사랑하다가 한달 전 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다는 것, 마치 지용은 혁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독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래서 걔랑 너랑 사귀는 줄 알았다니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내 이상형은 그런 사람이 아냐…”

  “네 이상형이 뭔데, 너 설마 아직도 여자친구 없냐?”

 

  혁수는 진심으로 지용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여자친구가 없었단 말이야? 한국으로 가면 연애도 하고 좀 그렇게 지낼 줄 알았더니. 완벽한 오산이었다.

 

  “내 이상형은… 잘 생긴 사람.”

  “잘 생긴 여자 좋아해? 표현 참…”

  “여자 아닌데?”

  “뭐?”

  “난 그냥… 잘 생긴 사람이 좋아.”

 

  은유법이었다. 비교적 도수가 낮은 와인이었음에도 한 잔씩 마시다 보니 지용의 얼굴은 어느새 조금 달아올라 있었다. 머릿속에 누구를 그리고 있는 것일까, 무의식적으로 3층을 바라보며 ‘잘 생긴 사람’ 이라고 말하는 지용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라 있었다. 

 

 

 

 

 

 

3.

 

 

 

  “그럼 일 주일 뒤에 하루 동안 큐어를 대여하고 싶으시다는 거죠?”

  “네. 저희 브랜드 런칭 쇼를 하기에는 여기가 가장 적합할 것 같아서요. 비용은 얼마든 지불하겠습니다. 최상의 서비스로 준비해 주시구요.”

  “이미 계약서에 서명도 한 마당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충분히 알겠습니다. 저희가 경험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첫 런칭쇼이다 보니 더 신경이 쓰이네요. 잘 부탁드릴게요.”

 

  눈웃음이 매력적인 남자는 승현과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며 계약서를 챙겼다. 런칭 전부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꽤 유명한 패션 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해 쇼를 준비하던 중, 큐어와 인연이 닿아 이 곳을 쇼 장소로 정하게 되었다고 했다. 미국계 한국인이고, 이름은… SOL 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따뜻하지만 묘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그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아, 잠깐만요.”

  “네?”

  “아까 들어오다 잠깐 봤는데… 바 규모는 큰데 바텐더는 한 분밖에 안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감당… 가능할까요? 몇 백명은 올 텐데…”

  “그럼요.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면 인원은 추가하면 되는 거고, 기존에 있는 바텐더 실력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정말 잘 하시는 분이거든요. 절대 실망하실 일 없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가 룸을 나가고 나서, 승현은 계약서를 잘 정리해 방으로 돌아왔다. 1층 주방 뒤로 돌아가면 나오는 복도에는 탈의실과 관리실이 있었는데, 이 곳에서 승현과 지용이 마지막으로 하루에 벌어들인 수입을 정산하고는 했다. 철제 서랍에 던지듯 계약서를 집어넣은 승현은 쏟아져오는 피로에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똑똑똑 –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반사적으로 다시 일어날 수 밖에 없었지만.

 

  “매니저님. 클로징까지 30분 남았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어요?”

  “네. 예상 외로 대화 길어지시던데요.”

  “아…… 그랬나요.”

 

  하긴 장소를 대여하는 계약 치고는 말이 길어지긴 했었다. 파티 같은 건 몇 번 제의 받은 적이 있지만 브랜드 런칭쇼 같은 건 처음이었으니까. 말은 알겠다고 했지만 이것 저것 신경 쓸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복잡해져 오는 머리에 한숨을 푹 내쉰 승현은 웨이터에게 고개를 끄덕거린 후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지용 씨는 뭐 하고 있을까.

 

  피곤했지만 승현은 다시 로비로 나가보기로 했다. 이따 뵈요- 라고 했던 지용의 말이 신경이 쓰였던 것일까, 무거운 몸을 의자에서 일으킨 승현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마음은 급한데 몸은 무거웠고, 몇 걸음이면 충분히 왔다갔다 하던 복도는 오늘따라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다.

 

 

 

 

* * *

 

 

 

 

  “무슨 소리야, 너 남자 좋아해?”

  “왜, 좋아하면 안돼?”

  “얘가 왜 이렇게 삐딱해. 남자 좋아하는 거 잘못 된 거 아니야. 궁금해서 그래.”

  “말 안 할거야.”

 

  지용은 입안에 와인을 머금은 채로 툴툴거렸다. 감초 향과 바닐라 향이 알맞게 어우러진 와인은 취기가 오른 지용의 기분을 더욱 더 업 시켰다. 애교가 많은 성격이 아닌데도 술만 먹으면 입술을 삐죽거리고 꽈배기가 되어 온 몸을 베베 꼬는 지용을 바라보던 혁수는 어이가 없어 허 – 하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누군데, 나 진짜 궁금해. 여기 사람이야?”

  “어.”

 

  마치 학창시절에 주로 하던 스무고개를 하는 느낌이었다. 샐러드 접시에 군데군데 남은 야채 조각들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생각에 잠긴 혁수를 쳐다보던 지용은 푸흐흐-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누구냐고.”

  “몰라- 말 안 해줄거야. 니가 맞춰봐.”

  “아 진짜.”

  “힌트를 주자면, 너랑 키가 조…금? 비슷해. 아니다. 너보다 아주 살짝 작아.”

 

  두 죽마고우가 스무고개 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즈음 승현은 로비에 나와 바 테이블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조명도 없는 구석에 있는 터라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지용을 찾는 승현, 그리고 어둠 속에서, 승현을 바라보는 지용의 눈동자는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잘 생긴 사람’, 누군지 알 것 같다.

 

  “어라…”

 

  승현이 지용을 보면 그랬듯, 그를 바라보는 지용의 얼굴은 빛 좋은 토마토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맥박은 빨라지고, 호흡은 가빠졌고, 심장은 요동쳤다. 같은 증상이었다. 급격히 달아오르는 체온을 주체하지 못한 지용은 급기야 셔츠 맨 윗 단추를 풀었다. 

 

  “너 저 사람 좋아해?”

 

  바 안의 배경 음악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잔잔했다가, 절정으로 치닫을수록 고조되는 클래식으로. 지용은 이름 모를 이 음악이 자신의 정신 상태와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입으로 내가 최승현을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라고? 술의 힘을 빌리고 두근거리는 심장만 봐도 확실히 답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되어 주었지만, 지용은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혁수 앞에서 이상한 말은 다 해놓고서 정작 핵심 질문에 대답도 못 하고. 바보 같았다.

 

  “……하는 사람이야.”

  “뭐라고? 크게 말해봐.”

  “맞다고……좋아 하는 사람…….이야.”

 

  아무래도 짝사랑인 것 같지만. 이어질 뒷 말을 생략한 채로 지용은 울상을 짓고는 테이블에 얼굴을 묻었다. 혁수는 지용이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좋아하면 고백해야지. 너 사람 좋아해 본 거 처음이잖아.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

  “…….”

  “이번에는 놓치지 마. 급한 것 같아도 일단 질러 보고 나서 생각해. 늦는 것 보다는 빠른 게 훨씬 나으니까.”

  “…….”

  “너 안 자는 거 다 알아. 너는 사람에 대해 그런 감정을 처음 느껴 봐서 조금 늦게 깨달은 거 뿐이야. 니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으응….”

  “조만간 좋은 소식 기대할게. 힘 내고.”

  “……”

 

  혁수의 마지막 말을 들은 지용은 그대로 뻗어버린 것 같았다.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진 혁수는 잠든 것 같은 지용을 깨우지 못하다가 몇 분 뒤, 계산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고 구석진 바 테이블에는 지용만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었다.

 

  짝사랑.

 

  하지만 지용의 슬픈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용이 짝사랑인 것 같다고 시무룩해 있을 동안, 승현은 그를 찾기 위해 1층 로비 곳곳을 누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4.

 

 

 

  적갈색 로퍼와 미끄러운 대리석 바닥이 마찰하며 만들어 내는 리드미컬한 소리는 몇 십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고, 의도치 않은 숨바꼭질에 지친 승현은 테이블 위에 걸터앉았다. 

 

  지용 씨는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갑자기 지용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지용은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냥 직장 동료? 아는 사람? 결국 아무런 답도 얻어내질 못했다.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승현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무모한 사랑이었다. 단 한번도 승현은 지용의 마음을 알려고 시도한 적도 없었고, 지용과의 관계가 발전되려고 노력한 적도 없었다. 해바라기 식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을 일컫는 것일까, 지용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마음을 지용에게 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부담스러워 할 테지. 고백?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웨이터들이 모두 퇴근한 바 안은 한적했다. 넓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넓었었나, 새삼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만 흐르는 땀을 닦아내기 위해 냅킨을 찾으려 고개를 돌린 순간,

 

  “지용…씨?”

 

  남자 치고는 작은 등이 한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곳에서 잠이 들까, 앞 뒤 사정을 모르는 승현은 그저 지용이 안쓰러웠다. 아무래도 런칭쇼 때 바텐더를 많이 두어야 할 것 같다고, 입고 있던 수트를 벗어 주며 승현이 한 생각이었다.

 

  “매니저님.”

 

  당연히 잠들어 있을 줄 알았던 지용이 갑자기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승현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갈 뻔 했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목소리가 왜 그래요, 라는 따뜻한 안부를 묻기도 전에 승현의 예민한 청각 신경을 파고드는 지용의 다음 말을 듣자 마자, 승현은 그대로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좋아해요.”

 

  성급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지용은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이 밉지 않았다. 후회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눈물로 떡진 얼굴을 들 수도 없고, 지용은 말하는 내내 테이블에 엎드린 채로 눈물을 방울방울 흘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셀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감정, 이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긴장했던지 미세하게 떨려오는 손 끝을 수습하기도 전에 지용은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정리할 감정, 늦으면 늦을수록 좋지 않을 테니까.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좋아했어요. 저도 얼마 전에 깨달았어요. 매니저님 좋아하는 거… 갑작스러우실 거 알아요. 매니저님한테 이런 말씀 드려서 괜히 부담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고… 생각 많이 하고 말씀 드리는 거에요. 가벼운 그런 감정 같은 것도 아니고, 진심이에요.”

 

  두서 없이 마구 말을 뱉어내는 지용이 안쓰러워서인지 승현은 떨리는 지용의 손을 가만히 잡아 주었다. 승현의 마음을 모르는 지용으로써는 동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승현은 지용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같이 좋아하고 있었음에도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먼저 고백한 지용이 고마웠고, 대견스러웠다.

 

  “빠른 시일 내에… 정리 하겠습니다. 불편하시면 저 자르셔도 괜찮아요. 단지… 진심만 전달하고 싶었어요. 말을 안 하고 버텨보려고도 했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더 깊어질 것 같아서…저는…”

  “우는 거에요?”

 

  따뜻한 저음, 별다른 스킨십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도 지용은 승현이 자신의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싫다고 나를 피하거나 욕을 하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알 수 없는 승현의 태도에 지용은 무심코 얼굴을 들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어 붉어진 눈과 부르튼 입술, 승현은 손을 뻗어 지용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문을 닫은 바 안,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둘은 서로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중이었다. 결말이 어떨 지는 처음부터 예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를 담았을 뿐.

 

  “왜 울어요.”

  “이러지 마세요… 저 이러시면 진짜… 매니저님 정리 하고 싶어도 못 해요. 저 정말로…”

 

  눈물로 인해 호흡은 고르지 못했고, 손은 다시 떨려왔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승현이 느껴지는데도 차마 그의 눈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막연한 슬픔이 밀려왔다. 뚜렷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자신을 위로하는 승현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은 채로 눈물을 닦아내던 지용은 마지막 말을 하기 위해 잔뜩 잠긴 목을 다듬었다.

 

  “위로 하지 마세요… 동정 얻고 싶어서 말씀 드린 거 아니고, 매니저님 저 싫어 하실 거 알아요. 저는 알면서도…”

  “왜 내 대답도 안 듣고 마음대로 판단해요?”

 

  처음 듣는 승현의 단호한 어조였다. 항상 자신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어오던 승현이 이런 상황에서 단호하게 나오자 지용은 깜짝 놀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누구 마음대로 누가 누굴 정리해요, 누가 누굴 싫어한다는 거에요. 난 단지…난…”

  “……”

  “말 보다는 행동이 낫겠죠. 어차피 지금 나… 무슨 말을 하든 바보 같을 테니까.”

 

  승현은 자신의 아래에서 위태로운 표정을 지은 채로 자신을 쳐다보지 못하는 지용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이목구비와 가녀린 얼굴 선, 승현에게 지용은 하나의 작품이었다. 만지면 부서질까, 바라보면 닳을까.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였고 들숨과 날숨이 쉬지 않고 교차하던 순간, 

 

  “……내 대답이에요.”

 

  말도 안 되게 달콤한 키스가 쏟아졌다. 그간에 참아왔던 감정을 성급하게 터뜨려 버린 승현의 키스는 지금 이 순간 지구가 폭발한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달콤했고, 격렬했다. 승현의 행동을 예상치 못했던 지용은 갑작스러운 승현의 키스에 벽으로 천천히 밀려났다. 아득해져 오는 정신을 가까스로 차려 가며 자신의 감정에 대한 승현의 답을 천천히 받아냈다. 고른 치열을 훑고, 지용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버리겠다는 듯 파고드는 승현은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민망한 소리는 빈 바 안을 가득 메웠다. 그토록 갈망했던 서로를 보듬고, 안고, 알아내기 위해 분주하던 그들의 키스는 호흡이 가빠져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될 때까지 멈출 줄을 몰랐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이후의 앞으로의 상황, 미래 같은 건 방금 막 새로운 사랑을 꽃피운 그들에게 별로 중요치 않았다.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키스는 둘이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입술을 떼고 몇 초 뒤에 다시금 이어졌다. 눈물로 뿌옇게 된 시야로 인해 지용은 승현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아주 진하게, 선명하게 자신을 채워주고 있는 승현의 어깨를 말 없이 끌어안은 지용은 승현과 함께 어우러졌다. 하나가 되고, 다시 하나가 되어 서로를 알고, 서로를 찾고, 갈망하고. 그들의 색은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서울의 아침, 하늘은 옅은 파랑 색으로 물들었고, 만물의 근원이 되는 따뜻한 햇빛은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는 이 시간, 비록 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별빛이나 맑은 달빛은 없었지만, 큐어의 밤은 도시의 아침보다 찬란했다.

 

 

  마치 내일 아침이 밝아오지 않을 것처럼,

  큐어의 밤은, 아주 천천히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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