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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아빠진 차 안에선 타는 듯 매캐한 냄새가 났다. 이미 다 박살이 나 버린 유리창 너머로 들어온 잿더미 같은 모래가 그 위로 퍽퍽하게 내려앉았다. 욱신거리는 눈가를 손으로 훔쳐내자 아린 느낌이 검붉게 죽은 피와 함께 묻어나왔다.

 덜컹.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아슬아슬하게 굴러가던 차가 결국 멈췄다.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모래언덕 한 가운데였다. 탑은 헤드레스트에 뒷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지금 조용하고 딱 좋은데. 눈 앞을 점유한 채 어른거리는 너만 빼면.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눈은 시뻘겋게 충혈된 채였다. 이불을 움켜쥐며 내 이름을 힘겹게 중얼이던 네 목소리도 머릿속에서 괴로우리만치 웅웅 울렸다. 씨발……. 너는 왜 끝까지 나를 이렇게도 괴롭히는지. 욕지거리가 입밖으로 기어나왔다.

 

 

 어째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날씨였다.

 

 

 

* * *

 

 

 

 부디 그대의 앞에 무한한 축복만이 가득하길.

 

 

 수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빌었던 행복이다. 장마 중의 강물처럼 차고 넘치는 축복의 염원에 네 표정은 차게 굳어 있었다. 과연. 나는 너의 오만한 냉기를 훑어보면서 몰래 침을 삼켰다.

열 일곱. 그 어린 나이에 너는 이미 그 이면에 까아맣게 덧칠해진 너를 향한 적의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GD는 사람들 입에서 어색하게 불리어지는 워튼 가家 도련님 칭호가 익숙한 듯 보였다. 장남이지만 둘째인 너는 아마 평생 도련님인 채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번에 결혼한 네 누나의 매형이 죽지 않는 이상은, 네 부모님이 쌓아 왔던 그 많은 돈다발은 손에도 대어보지 못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세간에서 불리는 네 칭호가 패배자, 인 것도 영 틀린 말은 아닌 거지. 그러나 너는 그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고요한 눈을 하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파도같이 동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프로그래밍된 것 마냥. GD, 하고 부르는 네 매형의 목소리에 뒤돌아보는 표정에서도 감정은 티끌만큼도 배어있지 않았다. 

다만, 미약하게나마 살짝 벌어진 입술 새로 내뱉어지는 검은 색 한숨 소리 정도는 느껴졌다고 할까. 몇 십분 전 저택 뒤편에서 본 너로부터 뭉개뭉개 피어오르던 회색 담배 연기를 닮은, 그.

 

 

 그리고 나는 그런 너에게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축복을 보낸다.

 

 

 

* * *

 

 

 

 나는 너희 집안의 개로서 존재한다.

 

 같은 핏줄 나눈 가족도 씨발놈이면 목을 따야지. 그것이 내 아버지의 철칙이었다. 애시당초 범죄 조직이었던 핏줄은 속일 수가 없었다. 피비린내 풍기는 권력 투쟁이 일상인 콩가루 집안에서 그 좆나게 쓰잘데기도 없어 뵈는 권력을 우리 아버지 손에 쥐어준 것이 너의 부모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검은 돈은 그러고도 남을 위력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내어진 것이 자식의 목이었다. 어른들의 못된 이해관계 놀이에 다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덕택에 우리 집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팔려올 수 있었다. 비록 목을 매인 채였지만 말이다.

 내가 스물 다섯이 되고 네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정식적으로 그 집안을 지키라는 임무를 목줄에 달았다. 그들에게는 영리하고 잔인하지만 주인 앞에서는 이빨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충견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충견이 지켜야 하는 주인은 네 누나와 매형이었다.

 

 네가 아니라.

 

 “─GD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네 매형이 내게 던졌던 질문이다. 미소는 어떤 의도를 담았으나 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별 생각 없는데요. 대답과 동시에 찻잔 받침 위에 놓여있던 잔이 짤그락 소리를 내며 탁자 위를 굴렀다. 잔에 담겼던 얼그레이 홍차가 흘러 카펫에 적빛 흉터를 새기고, 붉은 향이 알싸하게 코 끝을 찔렀다.

 

 “난 말야.”

 “…….”

  “그 아이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

 “…아.”

 “제 누나와 나를 소름 돋게 만들거든.”

 

 소름 끼치는 향이었다.

 

 

 

* * *

 

 

 

고 양이처럼 새초롬하게 올라간 갈색 유리알 같은 맑은 눈동자와 같은 빛의 머리칼, 그리고 길게 뻗은 팔다리. 그게 처음 본 너를 이루는 것들이었다. 그건 네 누나도 마찬가지여서, 누가 보아도 너와 네 누나가 피를 나눈 남매라는 것을 알게 했다. 비록 너는 그녀가 종종 짓고는 하던 해사한 미소를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음에도. 

 햇빛 한번 본 적 없는 듯 흰 얼굴은 유약한 이미지를 풍겼다. 단정한 외형과 차분한 말투는 타인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심성은 그다지 곱지 못했다. 그건 GD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났다. GD는 정말로 나를 ‘개’로 보고 있었으니까.

 

 “GD, 얘기 좀 하자.”

 “내가 왜? 요즘 안 맞았더니 또 기어 오르고 앉았지, 니가?”

 

 저가 나보다 어린 나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도 GD는 내게 존대를 할 것을 강요했다. 싸가지는 대체 어디다가 팔아 드신 건지, 말을 좀 낮출라 치면 그걸 꼭 기어오른다고 표현했다. 그렇다고 내게 예의를 강제하는 그 요구를 들어준 적은 없었다. 온실 속에서 자란 도련님이 뱉는 쌍욕은 별로 무섭지 않았으니까. 

 

 “인상 구기지 마. 그런다고 니 누나 안 닮았을 것 같아?”

 “…개 같은 새끼야. 할 얘기가 그거야?”

 “아. 그건 아닌데.”

 

 그리고 나는 그런 GD의 성질을 건드리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이 누나와 닮았다는 사실을 별로 듣고 싶지 않아 했다. 아니, 경기 일으키는 꼬라지를 보면 이건 거의 혐오 수준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을 거다. GD의 그 포비아적 혐오감에는 그의 누나가 가장 큰 공헌을 했다. 그녀는 GD를 무슨 괴물 보는 것 처럼 대했다. 

 짐작하건대, 그녀는 어째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제 부모 후계를 받아 가주가 되었을 동생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걸 갖고 있는 듯도 했다. 내가 젖먹이 때부터 여기 있던 것이 아니기에 잘은 모르지만 이 바닥에서 돈에 눈 멀어 하는 부모형제 없는 짓거리들이란 뻔하지 않은가. 그것이 케케묵은 먼지처럼 까아맣게 쌓여 악취를 풍기는 거지.

 

 그러니까, 어찌 되었든 간에 GD는 분명 그 둘에게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피곤한 집안. 우리 집도 만만치 않지만 정말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집안이었다. 

 

 “너 조만간 죽을 것 같다.”

 “허?”

 “니네 매형한테.”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 존재하지도 않는 목줄이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짜악, 살갗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돌아간 고개에 잠시 상황파악도 되지 않은 채 멈춰 있었다. 좆같은 개새끼면 그냥 짖기나 해. 화를 다 담지 못해 씩씩거리는 숨이 그 말과 뒤섞이어 구둣발 앞에 던져졌다. 쎄게도 때렸네. 붓겠구만. 맞은 뺨이 삽시간에 얼얼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경쓰였던 건 빨개진 채 떨구어진 네 오른손이었다.

 

 

 “개새끼가 지 주제 모르고 사람 말을 하려고 하니까 개소리만 나잖아.”

 “…호구새끼가. 위험하다고 알려줘도 꼭.”

 “그게 개소리라는 거야.”

 “…니 정말 모르는 거냐, 아님 모르는 척 하는 거냐?”

 “…….”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거야.”

 

꾹 말아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이길래 한 대 더 맞을 줄 알았다. 이빨 하나 정도는 빠져야 저 빌어먹을 자존심이 덜 상하려나 싶어 이를 앙다물지도 않고 바라보고 있는데 그 떨림이 조금은 잦아들기에 쌍욕은 날아와도 맞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욕설도 회피도 아닌 농도 짙은 한숨이었다. 그리고 뒤따른 대답은 알아, 명확한 두 글자. 그 간단하고 차분한 대답에 오히려 심장이 내려앉았더랬다. GD는 뭉툭한 손톱을 손바닥에 찔러넣은 채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다고?”

 “이 집구석에서 배운 거 눈치밖에 없거든.”

 “그러면서 왜 가만히 있는데. 미쳤어?”

 “이젠 귀찮아서.”

 

 숨 쉬는 것도. 높낮이 없이 이어진 말에 여전히 감정은 묻어있지 않았다. 당황스럽도록 평소와 같았다. GD는 지친 눈으로 내 등 뒤 허공 어느 즈음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 * *

 

 

 V.I는 읽던 문서들을 바인더에 대충 끼워 넣은 뒤 책상 위로 내팽개쳤다. 조폭 집안 아들내미가 형사한테 서류를 보내다니, 참 예상 밖의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적힌 내용은 그보다 더 예상 밖의 것이었다. 

 

 날 속이는 건가? 

 

 머리를 굴려 이런 생각까지 해 봤지만, 딱히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자신은 딱히 깨끗한 형사가 아니었다. 조직끼리의 피바람 부는 총칼질이나 자본가들의 사기 횡령도 일반인에게 눈에 띄는 피해를 주는 범위가 아니면 그냥 눈 감아 주고는 했다. 그러면 이 새끼들도 알아서 범위 조절을 하거나 제 눈에 띄지 않도록 관리 잘 하는 터라 그 쪽이 일하기에도 더 편했다. 사기꾼이나 깡패 새끼들 주제에 고마움은 아는지 가끔 연말연초 기념 선물이라는 타이틀을 뒤집어 쓴 뇌물이나 처리할 만 한 사건(지들 입맛대로 먹고 버린 사건들이었겠지만)도 보내주고는 할 정도로 자신은 그들에게 환심을 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정도로 스케일 크게 보내주는 일은 없었는데.

 

 서류 봉투에 몇 겹이나 꽁꽁 씌워 보내진 서류는 워튼 집안의 검은 돈에 관한 내용이었다. 세상에 나와선 안 될 만큼 추접하고 더러운 내용들이 읽을수록 그 깊이를 더하며 반복되었다. 그저 그런 상인 집안이었던 워튼 가문이 어떻게 단번에 그리도 큰 자본을 만지게 되었는지 단번에 납득이 가게 만들어주는 내용이었지만 공개한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터였다. 어쩌면, 이걸 넘겨준 이의 집안도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날아가겠지.

 

 그렇다면, 왜?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V.I는 캐비넷에 등을 기대며 바싹바싹 말라가는 입 안을 혀로 훑었다. 괜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때 울린 전화 벨소리가 형사사무실을 채워 V.I는 조금 움찔 떨었다.

 

 “여보세요?”

 ─V.I?

 “내가 근무시간에는 전화하지 말랬지.”

 

 대성이었다. 동양계 쿼터로 통칭 D-lite라는 별호를 달고 살인청부업 일을 하고 있는 빌어먹을 소꿉 친구인데,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형사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도 범죄에 대한 투철한 정의 의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이유의 반은 저 새끼 때문이었다. 살인청부업자를 불알친구로 둔 형사라니, 이 무슨 아이러닉한 조합이란 말인가.

 

 ─미안. 그치만 너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어. 잠시 통화 가능하지?

 “괜찮아. 대신 빨리 끊어.”

 ─혹시 최근에 워튼 집안에 대한 소식 들은 거 없어?

 “뭐? 그거 니가 보냈냐?”

 ─그거라니?

 

 대성의 반문에 V.I는 입을 닫았다. 송부된 서류에 대해 대성은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십 년을 같이 지냈는데 그 정도는 목소리만 들어도 눈치 깔 수 있었다. 그렇다면 먼저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었기에, V.I는 저 쪽의 용건에 대해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워튼에 대해서는 왜 묻는데?”

 

 그 물음을 듣고 대성이 잠시 머뭇거렸다. 뭔데. 끊는다? 다시 한 번 재촉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 소리가 들리고는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며칠 전에 의뢰가 들어왔어. 보증금 40%가 먼저 보내졌고. 엄청나게 큰 액수였어. 섬을 하나 사도 될 만큼.

 “의뢰 내용이 뭐길래.”

 ─워튼 가 사람들을 다 죽여 달래.

 “……뭐?”

 ─그 집 장남만 빼고.

 

 이름이 GD라고 했던가? V.I는 침을 꿀꺽 삼켰다. 패배자. 워튼 가문의 패배자라고 불리는 그 집안의 둘째 아들내미였다. 두뇌가 명석하고 언변에 능하여 사람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그 집안의 장남이기에 워튼 가의 가주가 될 것은 뻔했던 모양이었는데, 그의 부모가 음독 사고로 세상을 뜨고 난 뒤 공개된 자필유언장에는 모든 재산과 권리를 그의 매부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더랬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시나리오였기에 그것은 이슈가 되어 한동안 별별 루머와 함께 워튼 가문을 둘러싼 채 둥둥 떠다녔었다. 그 중 그 누나가 자신의 남편과 함께 몰래 손을 써 상속 순위가 뒤바뀌게 만들었다는 건 뒷골목의 가장 공공연한 소문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의뢰 받아도 되겠냐?

 

 V.I는 책상 위로 내던져진 서류철을 노려보았다. 평소였다면 당연히 거절하라고 했을 거다. 그 큰 집안을 건드리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니까. 그러나 이건……. 워튼 가문을 완전히 박살낼 수 있는 수순이다. 실패하지만 않는다면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테지. 아, 의뢰금은 남고.

 

 “받아도 될 것 같은데.”

 ─어, 그래도 돼? 그래도 워튼인데, 수사 강하게 안 나가도 괜찮은 거야?

 “대신 의뢰금 15%는 내 거야.”

 

 결론은 깔끔했다. 끊긴 전화를 내려놓고 V.I는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내려간 시선으로 다시 그 황갈빛 표면이 보였다. 저걸 보낸 사람과 이번 D-lite의 의뢰인은 같은 사람인 건가? 만약 그렇다면 대체 무얼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이 서류철의 발송인을, V.I는 알고 있었다. 워튼 가에 호의를 가지고 있었음 있었지 반감을 가질 만 한 이유가 없는 사람인데. V.I는 두 손바닥을 맞댄 채 이마를 기대었다. 워튼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 * *

 

 

 

 GD는 한 삼 일을 앓아 누웠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그렇게 열병에 취해 시달리는 동안 너의 누이와 매부는 한 번도 널 찾지 않았다. 그들은 어쩌면 정말로 네가 그 체온에 녹아 사라지길 바랐을 수도 있다. 그 가시 돋힌 공기에 숨이 막혀 나 또한 너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이 개인적인 생활을 시작하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데운 차를 들고 네 침대 옆을 지켰다. 그 때가 가장 고요한 시간이었다. 

 창문은 늦은 가을 바람을 막아내지 못했다. 서늘해진 공기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너는 열로 아린 몸을 참지 못해 이따금씩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때 마다 주위의 공기가 조금씩 달구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 그렇게 말하면 너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까. 아니면 화를 낼까.

 

 “내일은 여기에 있지 마. 한동안 돌아오지 않아도 좋아.” 

 “개새끼가 또 말 놓지…….”

 “요양할 겸 시골에 잠시 내려가는 것도 괜찮고.”

 “…….”

 

 충혈된 눈이 나를 향한다. 읽힌다. 어째 저 눈을 마주하면 괜히 분했다. 제 감정은 부스러기 하나도 내비지치 않으면서 내 마음만 조금씩 긁혀내려 그 조각들이 훔쳐지는 기분이라서. 

 

 “무슨 일인데.”

 “아무 일 없어. 너 피곤해 보여서 하는 말이야”

 “지랄 마. 니가 목을 맬 정도로 날 좋아해도 그딴 말 할 새끼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알아.”

 “…….”

 “내가 무슨 상황에 있든 니 눈 안에 담겨 있어야 안심하는 새끼잖아, 넌.”

 

 너의 말에 폐부가 물에 잠기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말로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게 다 사실이라서 더 그랬다. 알고 있었어? 가만히 그렇게 묻자 네가 픽,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

 

 “모르면 병신이지….”

 “…….”

 

 숨이 막힌다.

 

 네 앞에서는 위선을 떨 수가 없었다. 거짓도 고할 수가 없다.

 너는 마치 그렇게 모든 것을 깨우친 것처럼 올곧이 나를 향하고, 붉게 달뜬 숨결을 내쉬어

 

 “기분 존나 나쁜 시선…….”

 

 나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 집구석에서 배운 거 눈치밖에 없거든. 네가 그 언젠가 내게 했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너에게 거짓말을 할 생각은 바이 없었지만, 나는 다만 용서하기를 바란다. 너에게 일절 상의도 없이 정한 내 이기적인 독단이지만 이 독단으로 나는 너를 살릴 것이다. 그것의 중압감에 뇌간 연수가 짓이겨지는 한이 있더라도.

 네 누이와 매형이 너를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쪽을 죽일 거야. 문을 잠그고 난 후 네 귓가에만 닿을 정도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 너는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고정된 시선에 약한 기류가 흘렀다. 그러나 그 이상의 기복은 없었다. 화를 내거나 슬퍼하기에 너는 너무 지쳐 있었다. 

 그게 내일 집을 떠나라는 이유야? 나보다 더 작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너는 살이 쭉 내린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젖혔다. 손틈새로 숨결이 버석 내렸다.

 

 “미친 새끼…. 너 그냥 죽어 버려.”

 “…….”

 “넌 니가 여기 왜 있는지도 잊었지.”

 “…….”

 

 네 침대를 향한 발소리가 자박이며 내는 소리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네 목께까지 덮은 청회빛 솜이불을 잡아 내리자 얼굴을 감쌌던 마른 손이 스륵 내려가고 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너는 내 누나랑 매부 지키라고 있는 거야. 이 집 주인. 내가 아니라.”

 “…….”

 “…목줄 매인 개새끼면, 그거나 잘 해.”

 

 말하는 목소리가 찢긴 나비 날개마냥 파드득 떨렸다. 침대 위로 놓인 손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피까지 굳어 너덜너덜해진 손 끝이 이불을 꾸욱 움켜쥐었다.

 

 목줄 매인 개새끼라. 

 

 “말 안 해서 미안한데.”

 

 길들여진 개새끼도 사람을 물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윽.”

 

 양 어깨를 누르자 눌린 신음이 잇새로 흐르다 멈췄다. 열병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이 누른 손 아래에서 뒤척인다. 침대에 무릎을 대고 네 얼굴을 가까이 마주했다. 십여 센치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눈이 마주치자 이제야 조금 더 동요한다.

 

 “나 너 똑 따서 빨아먹을라고 여기 들어온 거야.”

 “…뭐?”

 “우리 집 앞에 피었던 꽃은 따먹으면 엄청 달았는데. 너도 그럴 것 같았거든.”

 “……미친 새끼.”

 

 그것이 미친 개라면 더 위험하고.

 

 “예뻐서. 개새끼도 예쁜 거 좋아해.”

 

 고개를 좀 더 꺾어 발갛게 달뜬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열이 퍼진 몸보다 입술이 조금 더 뜨거웠다. 흐으……. 한숨을 닮은 신음이 터졌다. 데일 것만 같았던 입술이 열린 건 그 다음이었다. 

 

 

 

* * *

 

 

 

 다음 날, 동이 튼지 얼마 되지 않아 워튼 저택 전체가 뒤집어졌다. 경찰로부터 워튼 가주 내외에게 불구속 입건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공문을 전달한 V.I라는 형사는 별다른 공범 혐의가 없는 GD의 수사 협조가 가장 절실하다며 그에게 서에 출석하라는 소환장을 전달했다.

 단순 읽기조차 힘들 만큼 빼곡이 쓰여 있는 상세 혐의 내용은 집 안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기밀들이 주를 이뤘다.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던 워튼의 가주는 이를 으득 갈았다. 탑의 짓이군. 그 은혜도 모르는 개새끼가…! 청소부에게 탑의 행방을 물은 그는 탑이 새벽 일찍이 어딘가에 업무를 보러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여보, D-lite에게 연락해. 그리고 그 새끼 머리통을 날려버리라고 전해 줘. 되도록 아무도 모르게.”

 

 GD는 제 방 문 앞에 서서 가만히 그 대화 내용을 듣고 있다가, 말소리가 끊기자 등을 돌려 손에 들고 있던 소환장을 펼쳐보았다. 위 사건에 관하여 조사할 사항이 있으니 11월 4일 18시 해당 서에 출석하시기 바랍니다. GD는 외출용 코트에 팔을 끼우고는 소환장을 다시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머리 썼군. 저 인간들 다 뒈지면 칭찬이라도 해 줘야겠어. 하는 조금은 기분 좋은 생각도 하면서.

 

 

 

* * *

 

 

 

 “어어…….”

 

 살인청부 일은 일이 주에 한 번이면 많은 거다. 특히 자신같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는 더 그렇다. 그 와중 간만에 격일로 일이 들어왔다 해서 얼씨구 좋다구나 했던 게 겨우 오 분 전이었는데. 대성은 의뢰인과 의뢰내용을 확인하고는 그만 기함할 뻔 했다. 

의뢰인은 현 워튼 가문의 안주인, 장남 GD의 누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의뢰 내용은…… 탑을 죽여달라니.

 피 냄새를 맡으셨나. 아니면 들킨 건가. 이틀 전 들어왔던 청부살인의 내용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주체와 객체만이 바뀐 그 의뢰에, 대성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얼이 나간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머리털 나고 총 잡아본 이후로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대성은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입에 머금었던 연기를 내뱉자 눈 앞이 희뿌옇게 메웠지었다가 사방으로 그득그득 퍼졌다. 마악 도래한 겨울을 닮은 빛깔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시야가 조금 더 깨끗해져 대성은 한 번 더 파이프를 빨았다.

 

 죄송합니다만, 마나님. 순서는 지키셔야 할 것 같네요.

 

 

 

* * *

 

 

 

 문을 동여맨 유일한 잠금장치는 손장난 몇 번으로도 쉽게 풀렸다. 대성은 자신이 이 곳에 침입하기 직전 저택 앞을 지키고 있는 경비대를 돌려보내던 탑을 떠올렸다. 아마도 이 잠금장치도 탑이 먼저 손을 써 놓았을 거다. 이 집안에 그 정도 권리를 행할 수 있는 자가 이런 짓을 꾸몄단 말이지. 

 저택의 밤은 너무나도 고요해서, 내딛는 발걸음 소리마저 그대로 흡수할 정도였다. 대성은 얼굴을 반쯤 가린 중절모를 더 깊게 눌러 쓰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니스칠이 된 원목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인기척이 느껴져 숨을 죽이니 마주한 문 너머로 희미한 피아노 소리와 바람 소리가 뒤섞여 들리는 듯도 싶었다. 

 안주인인가. 대성은 숨을 크게 들이 마쉬며 코트 안에 숨겨 놓았던 총을 고쳐쥐었다.

 

 철컥. 라이플이 장전되는 소리가 손을 타고 전해져 왔다. 총구에서 스믈스믈 올라오는 쇠비린내는 시체 냄새를 닮아 있었다.

 

 타앙.

 총 소리가 공허를 찢어냈다.

 

 

 

* * *

 

 

 

 이 모래 언덕에 들어오기 직전 워튼 가에서 보낸 듯 한 총잡이와 한 차례 총격전이 있었다. 검정 색 중절모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잘은 보지 못했지만 동양인의 눈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때의 접선으로 왼쪽 허벅다리에 총알이 박혔다. 

 GD에게 열병이 옮은 것 같았다. 온 몸에 열이 번지고 호흡하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가문을 박살낸 시점에서 이미 그들이 자신을 가만 놔두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빨리 내게 보복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줄은 몰랐다. 시팔. 진짜 엄청나게 아쉽네. 조금만 더 꾸물거렸어도 깔끔하게 그 쪽만 죽어주시고 끝났을 텐데. 그럼 난 GD와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고. 아,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좀 아까웠다.

 후, 하고 내뱉는 한숨 소리 틈새로 자동차 엔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자신의 자동차에서 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더 이상은 굴러가지도 않았으니까. 거기서는 또 다른 피 냄새가 났다. 철컥, 하고 총이 장전되는 소리 비슷한 것도 들린 듯 했다. 아까 전 그 총잡이인가 보군. 지평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모래 언덕에 그 이외의 인기척은 없었다. 

 모래알을 담은 바람이 땀과 핏물로 끈적해진 피부에 들러붙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출혈이 심했는지 눈 앞이 아찔해져 탑은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면 또 다시 네 형상이 그려져 심장이 짓눌리는 듯 괴로웠지만.

 어쩌면 나는, 그렇게라도 네가 보고 싶었던 것 같았으니.

 

 잠시나마 내 목줄을 잡아준 너에게 감사한다.

 생에 남은 소원이 하나 있다면, 나에게 잘 가라는 꿈결 같은 인사를 전해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꿈이어도 괜찮다. 

 단지 그것 뿐이다.

 

부디, 그대의 앞에 무한한 축복만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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