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혀니 와쪄-?"
오냐, 건성으로 대답하곤 손에 쥔 까만 비닐 봉지를 식탁 위로 내려놓는다.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내 엉덩이를 토닥토닥, 아니, 좀 농도 짙게 주물주물.
"사오란 거 다 사왔쪄요? 승현이 우리 아들 다 컸네-"
"아아 존나 덥다-"
그대로 소파로 직행해 엎드려 늘어졌다. 주방에서 무언가 하는거 같더니 어느새 내 옆에 와선 덜 마른 손으로 엉덩이를 또 조물조물.
"네 다 사왔쪄요, 엄마, 해야지. 센스 없긴."
엄마놀이도 젖 없는 사람이랑은 안 해, 하니 버럭 화를 낸다. 벌개진 얼굴로 씩씩 콧김을 뿜더니 이내 조금 고민하는 말투로 수술할까? 란다. 무서워서 농담도 못하겠네. 너무도 당연한 농담에도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리고 날 쳐다보는 게 귀엽기 짝이없다. 날 만나는 몇 년 동안의 내공은 어디로 쌓았는지 아직도 내 장난에 능하지 못한 순딩이다.
"쪼크, 쪼크. 난 그래도 가슴없는 권지용이가 좋네요."
그제서야 표정을 풀고 베시시한 복숭아가 된다. 칭찬이나 애정표현을 해줄 때면 짓는 귀한표정. 행복에 겨운 듯 눈은 반으로 접고 볼은 발그레해지는 게 꼭 복숭아 같아서 내 멋대로 붙인 별명이다. 정말 혼자 보기 아깝다고 늘 생각은 하지만 저 표정에 반할 사내새끼들을 생각하니 역시 안되겠지,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요 이쁜이는 나만 봐야 한다.
밥을 먹고 에어컨을 켰다. 배부르고 시원하고 딱 좋은 나른한 기분에 소파에 앉았더니 내 위에 몸을 겹쳐온다. 습관처럼 내게 기댄 녀석의 어깨를 살짝 감싸안으니 몸에 긴장이 풀려 소파에 푹. 에어컨 바람에 살랑거리는 머리칼이 턱을 간질여 머리를 다듬어주니 응? 하는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약은."
"먹었어."
"운동은."
"너 없을 때 했어. 아까."
"병원은."
"다음주 화요일 예약."
"하고 싶은 말 없어?"
"사랑해."
옳지. 착하네. 다듬어놓은 머리카락을 다시 헝클어 놓았다. 아 뭐야- 짜증내면서도 못 이기는 척 다시 복숭아 표정. 가끔 보면 잘 훈련시킨 강아지 같다. 손 달라면 손, 뽀뽀하라면 뽀뽀. 만져주면 한없이 좋아하고 주인 없이 못사는 것마저 쏙 빼 닮았다. 생긴 건 고양이에 더 가까운데 하는 짓은 마냥 강아지다. 애정결핍인가 싶을 정도로 애교도 많고 정도 많다. 그만큼 외로움도 잘 탈 텐데, 늘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게 내 한이라면 한이다. 그래서인지 본인도 사랑 받고 싶어하고 사랑을 퍼 주려 하는 게 눈에 훤히보인다.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널 보고 있자면 태어나서 평생 쓸 운을 너를 만난 것에 다 쓴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 적도있다.
누군가에게서 개들에게 거울을 보여주면 우울증에 걸린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가 주인과 똑같은 인간인줄 알기에 정체성을 깨닫고 나면 자괴감에 빠진다나 뭐라나. 어디까지나 속설이지만 당시 이 얘기가 마냥 남 얘기 같지만은 않아 너무도 속상했다. 우리 집 강아지도 그런 이유였던 걸까. 분명 서로 다르지만 개개인의 매력이 있는 거고, 그만큼 사랑해주는 게 보호자로서의 도리 아니던가. 네가 보는 거울 속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넌 충분히 사랑스럽고, 사랑 받을 존재라는걸 알려주는 것, 그것이 내가 그 동안 짊어왔던 의무감이고, 모든 보호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 아니었나.
처음부터 좋기만 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거다. 극심한 자기 혐오 및 다중인격. 같이 찾아간 병원에선 그런 무서운 말로 녀석을 진단내려버렸다. 그럼에도 지용이에게 먼저 동거를 제안한 건 나였다. 매일 헤어지는 게 싫을 만큼 사랑했던 건 물론이거니와, 처음사랑을 한 날 스스로 낸 그 상처들을 보고서도 녀석을 외면 할 순 없었다. 욕심이 났고, 그만큼 녀석이 좋았다. 내가 그를 바꿔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사랑 받을 가치가 충분한 존재란 걸 가르쳐 주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생각과는 달리 그 마음의 상처는 깊었었다. 우리 집에 들어오고 나서도 몇 번의 자해와 자살시도가 있었고, 다행히도 매번내가 발견했기에 멈출 수 있었지만 나 역시도 그로 인한 정신적 타격이 상당했다. 더 보여줄 수도 없이 애정과 관심을 쏟아 부었고 사랑을 확인시켜줬지만 거울 속 권지용은 녀석의 성에 차지 못했나 보다.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이 아팠고, 어깨가 무거워져 갔다. 그래도 한편으론 내가 녀석이 사랑하고 의지하는 애인이 될 수 있음에 행복했다. 나만이 할 수 있단 그 특별한 사명감, 그게 가장 큰 위안이 됐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권지용은 두 명이었다. 사랑스런 밝은 아이. 사랑스럽지만 아픈 아이. 내 앞에선 밝고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집에 들어왔을 때 침대와 벽 사이에 뒤돌아 웅크려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면 미어지는 가슴은 어쩔 수 없더라. 그래도 최근 들어선 그 횟수와 시간이 줄고 있었다. 웃을 때도 울 때도 화낼 때도 내 가슴이 부서져라 때릴 때도 많았는데, 불안하리만치 녀석이 성숙해졌다. 내가 일을 하러 집을 비운 동안 지용이가 뭘 하는지 궁금해졌지만, 카메라 같은 것을 설치해두고 확인할 만큼 녀석을 의심하고 싶진 않았다. 녀석도 내가 몰래 그런 짓을 했다면 썩 좋아하진 않았을 거 같단 생각에 덮어둔 호기심이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일은 재미있어? 사람들은 잘 해 주고?"
처음 하는 질문 같았다. 지용인 자신과 떨어져 있는 내 삶을 궁금해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저와 있는, 저를 대하는 최승현이 자기에겐 다라고 말했었다.
"응, 다 좋은 분들이신 거 같아."
"잘 됐네. 아 그래도 난 쫌 아쉽다~ 이 잘생긴 얼굴 티비에 한번못 비추다니. 저 봐, 저런 애들도 탑 가수라는데."
티비에 나오는 음악방송을 보던지용이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저건 나도 한다, 하며 펭귄처럼 손을 파닥파닥. 사내새끼들 다섯이 정장 입고 나와서 날갯짓인양 춤을 추는데 일관성도 하나도 없고. 지용이가 저기 껴도 손색은 없겠다-싶을 안무긴 했다.
"내가 이래서 아이돌이 싫다니까. 일로 와봐 봐. 네가 쟤네보다 비주얼이 딸려 기럭지가 딸려 목소리가 딸려 작곡 능력이 딸려. 노래만 잘했어도 싱어송라이터-해서 데뷔하면 끝장 나는 건데 캬-"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벅차게 잡아 끌어다 티비 옆에 놓고 나와 아이돌을 번갈아 본다. 말세야 말세-. 내 노래를 하나하나 다 들어본 지용이는 진작에 밀어줄 소속사가 있어야 했다며 신세한탄을 했다. 꿀릴 거 하나 없는데 세상이 인물을 못 알아 본다나 뭐라나. 나도 몇 십 곡 쌓아놓고 지용이랑 취미 삼아 듣기만 하는 게 아쉽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치만 아무래도 취미인 만큼 전문성이 떨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얘기만 주구장창 써놔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부끄럽기도 했다. 지용이야 좋다 좋다 하지만 뭐 예의상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콩깍지의 힘도 없잖아 있을거고. 여튼 노래 가지고 돈벌이를 하기엔 부족해도 많이 부족하다 싶은 감이 있었다.
"Love song? 나를 위한 사랑의 세레나랩인가-"
언제 작업실로 갔는지 재생을 누르려는 녀석의 손을 잡아챘다. 무의식 중에 아귀 힘이좀 쎘는지 적잖이 놀란 듯 토끼 눈을 뜨고 날 바라본다.
"아, 미안. 그건 미완성이니까 다 만들면 들려줄게."
뭐야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건, 말 하면서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삐진 거 아니지? 너 줄 노래 맞아. 근데 완벽히 끝냈을 때 들려주고 싶어서, 하며 달래주자 진작에 이해했다는 듯 웃어 보인다. 애를 키우는 엄마 느낌이 이런 것 이려나. 손대면 터질라 조심성을 요하는 지뢰 같은 아이. 혹시 실수로라도 감정에 스크래치를 낼까 묻고 또 묻는다. 괜찮은 거지, 화난 거 아니지, 녀석도 이젠 본인의 상태를 어느 정도 수용해서 귀찮게 자꾸 확인해도 자존심 상해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 들어와 숨기고 싶은 꼴을 몇 번 내보일 적엔 화도 많이 냈었는데. 이것 저것 집어 던지고 보지 말고 말 걸지도 말라며 나를 엄청 밀어 냈더랬다. 그걸 또 곧이 고대로 받아들인 나도 꽤나 상처받았었지. 이젠 서로서로 상처에 무뎌진 걸까 이해심이 깊어진 걸까. 전보다 원만해진 일상에 이제 긴장의 끈을 조금 놓고도 싶었다.
"나 기다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애써 웃지만 눈에는 서운함이 묻어 나왔다. 지금 녀석이 말하는 기다림은 단순히 이 노래 한 곡이 아닌 그 간 혼자 보낸 시간을 말하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안해. 형이 진짜 진짜 미안해."
"괜찮아. 나 먹여 살리느라 그러는 건데 뭐. 돈 버는데 어쩔 수 없지. "
"많이 컸네 내 강아지."
"뭐래."
"응. 예뻐."
또 나왔다 복숭아! 한 주먹 감인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뽀뽀를 쪽 해주니 실실 웃는다. 이번엔 지가 먼저 무릎 위에 올라 앉아 쪽쪽. 같이 산 이후로 부쩍 애정표현도 늘고 사랑스러워졌다. 누가 훔쳐갈까 무서워 외출도 조심스러운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좋아 죽겠단 표정으로 두 팔 벌려 꽉 안긴다. 기분 좋은 숨 막힘. 유난히 더운 여름이라 곧 땀도 삐질 삐질 나겠지만 떼어놓긴 싫어 가만히 있는다. 그냥 오늘은 이렇게 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내 살 네 살 맞대고. 심장 뛰는 박자까지 맞춰가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에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잠에 들긴 한 건지 시계바늘이 잠들기 전과 얼추 비슷한 위치에 있다. 새로 바꾼 침대에 이불을 개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여름에 멈춰있는 내 시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섭게 떨어진 낙엽들이 왠지 모르게 꼴 보기 싫었다. 눈이 오기 전엔 이곳을 꼭 떠나야지. 짐도 어느새 많이 줄였고 가구를 재배치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어떻게든 흔적을 지워보려 했지만 역시 직접 떠나는 것만큼 효과적 이진 않겠지. 녀석의 모든 물건은 작업실에 감추듯 몰아넣었다. 그것마저 다 없애버리면 처음부터 없던 사람이 되어 버릴까 봐. 난 녀석이 망각되는 게 싫었다. 모순적이게도, 그의 흔적을 보는 건 더욱 싫었다. 익숙한 향기에 그 허리를 감싸려 팔을 뻗게 됐고, 혹 그 온기가 남아있을까 손을 맞대어 보게 되었다. 머리론 지워냈지만 몸이 기억한다는 건 너무나 잔인한 일이었다. 자꾸만 찾고,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게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녀석을 다시 본다면 아마 날 혼내겠지. 네가 아파 봤자 얼마나 아파 봤다고 그러냐고. 그래, 넌 왜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던 걸까. 아무래도 내가 부족했지. 왜 그리 예쁜 너를 해치려고 하는 무언가에서 널 지켜주지 못했을까. 나는 너에게 무엇이었을까. 혼자 싸우기도 바쁜 네 삶에 내가 있긴 있었을까, 라고 나쁜 의심도 해본다. 날 사랑했을까. 왜 그 반만큼도 네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을까. 내가 주는 사랑이 너를 겁나게 만들었던 걸까. 웃는 날이 는 만큼 나 몰래 우는 날도 늘고 있었나 보다. 미안해 지용아. 네가 요리를 못하고도 내가 사온 재료가 잘못된 거라며 날 혼내던 그 날처럼 혼내줬음 좋겠다. 너에게 맞아서 가슴이 정말 부숴져 버려도 좋을 만큼 보고 싶다.
큰 숨을 몰아 쉬고 작업실 문을 열었다. 네가 앉아있던 의자. 가끔 작업하다 지치면 널 끌어와 눕곤 했던 침대. 번갈아 끼던 헤드폰. 네가 마지막으로 헤집어 놓은 가사 책 더미. 그 제일 위에 꺼내 놓은, 끝끝내 너에게서 숨겼던 노래 가사. 의사양반이 너 하고 싶은 건 꼭 하게 냅두랬는데. 어쩌다 보니 항상 네가 싫어하는 것만 시켰다. 조금 더 시원한 침대 가장자리는 내 고집으로 차지해버렸고, 번갈아 하기로 한 저녁은 네가 한 게 대다수였고, 하루에 기본 여섯 시간은 기다리게 하고, 널 위한 노래마저 기다림을 요했다. 주인을 잃어버린 세레나데. 보다 더 완벽하게 다듬어서 보여주리라, 했는데 이젠 그 주인은 가버리고 없었다. .
재생 버튼을 눌렀다. 분명 설레고도 사랑스러웠던 멜로디는 온데간데 없고 듣기 싫은 소음만이 남아 있었다. 한 사람을 위했던 사랑 노래가 순식간에 이리도 무의미 해진 게 허무했다. 먼지가 자욱한 공기를 뚫고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에 네 샴푸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손을 뻗어 봤지만 널 만질 순 없었다. 노을 진 빨간 하늘에 네 생각이 났다. 잘 지내고 있니. 무표정한 하늘은 아무 대답이 없다. 예쁜 넌 구름 뒤에 숨은 예쁜 별이 되었겠지. 보고 싶다. 한 발자국이면 너와 만날 수도 있을 거 같다. 아름다웠던 우리. 내게 사랑을 가르쳐준 너. Hell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