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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살의 나이에 세계의 정상에 오른 뮤지션, 권 지용. 그는 그의 22번째 생일인 오늘 8월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이번 신곡이 자신의 마지막 곡”이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는 삶은 여유롭게 즐기며 살 것” 이라며 간접적으로 은퇴 소식을 전해 많은 팬들을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다. 한편 권 지용의 신곡이자 은퇴곡으로 알려진 곡의 제목은 ’Forty‘로, 감성적인 가사를 담은 어쿠스틱......’

 

 벌써 기사 올라왔네, 유유히 건물을 빠져나와 회사에서 보내준 거무죽죽한 벤이 아닌 검은 Chairman의 조수석에 오르며 핸드폰으로 기사를 확인한다. 

 기분은 좀 어때? 옆에서 부드럽게 차를 몰며 저에게 말을 거는 T에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바라보며, 시원섭섭해요. CD를 꺼내든다. 그게 뭐니? 이번에 쓴 곡이요. 내 마지막 음반. CD를 살랑살랑 흔들다 하는 말은, 이번에는 내가 가사를 썼어요. 그 말을 듣던 T는 커브를 돌며 찡그리듯 웃는다.

 

 “들어보고 싶네. 집에 가면 불러줄래?”

 

 집 말고 다른데서 불러줄까요?

 

 “저기, T.”

 

 우리 둘이 같이 떠나요, T. 단 둘이.

 

 기자회견을 포함한 그 어떤 인터뷰로도, 혹은 그 어떤 멋진 노래로도, 본인에게 전하지 못할 말을 또 다시 속으로 삼켰다. 아, T를 알고 지낸지 3년이 다 되어 가면서도 나는 그가 나의 고백에 어떤 반응을 할 지 몰라 겁내고 있다. 사랑한다고 수 없이 말해왔음에도 ‘함께’ 떠나자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모순적인 놈.

 

 “응?”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승현을, 그러니까, T를 처음 만난 건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하고 유명해지기 직전인 열여섯의 가을, 회사 근처 구석진 곳의 작은 카페였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여자친구(아마 누나였던 것 같다.)에게 차이고, 혼자 씁쓸히 커피나 쪽쪽 빨아 마시고 있을 때, 왠지 모르게 내 앞 테이블에 앉은 한 어른이 눈에 띄었던 것이 시작이였다. 나는 아직도 그 때의 T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검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있었고, 하얀색 줄무늬가 그어진 검은색 스웨터, 어두운 톤의 청바지, 굽이 낮은 운동화.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 손으론 커피 잔을, 다른 한 손으론 펜을 쥐고 공책에 무언가를 계속 적어가다가도 어떤 때에는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인지 인상을 찌푸리곤 하는 그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에 대한 묘한 무언가가 느껴졌던 것 같다. 그 후부터 나는 매일 카페를 찾아가 똑같은 자리에 앉아 곡을 쓰기 시작했다. 앞 테이블에는 항상 그 어른이 앉아있고, 나는 기타 코드를 빼곡이 적은 공책에 써 내려갈 가사를 생각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었다.

 

 그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건 여전히 그 곡에 가사를 쓰는 것에 전념하던 열여섯의 차디 찬 겨울. 나는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그의 얼굴과 옷을 봤으나, 아직도 그의 이름이 뭔지, 직업은 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곡, 무슨 노래니?”

 

 한 마디라도 생각 날 수 있게 멜로디를 흥얼거리던, 그런 내게 갑자기 그 어른이 말을 걸어왔다.

 

 “네?”

 “방금 부른 노래 말이야.”

 “제가 쓴 곡이에요.”

 

 비록 가사도 없는, 노래라고 하기에도 멋쩍은, 그런 곡이였지만 그가 ‘노래’ 라고 부르는 것이 내심 좋았다. 네가 썼다고? 놀라는 눈치로 나를 보던 그가 내 앞 테이블에서 맞은 편의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내 이름은 최 승현이야.”

 “나는 권 지용이에요.”

 

 그리고 그는 내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최 승현, 시인. 가명은 T(사실 TOP으로 하려고 했다는데.. T가 훨씬 나은 것 같다), 26살. 10살이나 나는 나이 차이가 주춤, 하고 내 발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것들을 떨쳐낸, 그 후부터, 어쩌면 내가 뮤지션인 것과 T가 시인인 것은 우리 둘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사랑은 순조로웠다. 한 달 동안 서로의 눈치를 보던 우리는 결국 내가 열일곱이 되던 그 해에 연애를 시작했다. 

 T가 쓰는 시는 따뜻했다. 사랑에 관한 시도, 그저 그런 인생에 관한 시도 많았지만 나는 그 어떤 시도 사람을 울리지 않는 시는 없었다고, 그리고 T는 자신의 말투 그대로 시를 쓰기 때문에, 가사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이 쓴 시가 너무 좋아요. 노래로도 만들고 싶어.”

 

 뜨거운 차를 마시며 시를 쓰던 그가 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을 껌뻑이며 한참 동안 나를 보더니, 슬쩍 웃으며,

 

 “그럼 만들어줄래? 분명 좋은 노래일거야.”

 

 그를 향해 웃어주며 나는 예전에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 결국 손을 놓아버렸던 그 곡이 생각났다. T는 나와 함께한 3년 동안 꾸준히 시를 쓰고 책을 냈지만, 나는 그 곡을 포기한 후 아직 단 한 곡도 쓰질 못했고, 앨범 또한 내지 못했다. 

 

 그래, T의 시를 가사로 쓰자.

 

 나는 바로 평소에도 밤마다 읽고 잠들 정도로 좋아하던 T의 시들을 고르곤 기타를 잡았다.

 그리고 그 곡을 낸 나는 데뷔 후 4년만에 상승 곡선을 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거리 어디에서나 T의 시가 멜로디에 맞춰 들려오고, 사람들 모두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살면서 T를 본 순간을 제외하고 이토록 흥분될 때가 있었던가. 그 후로 항상 연예계의 중심엔 나와, 내 노래들과, 나의 이야기가 있었다. 회사에는 잡지사의 에디터들이 매일 전화를 돌리고, 가는 곳엔 항상 팬들이 나를 반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리고 행복감과 더불어 욕심도 함께 늘어난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점점 T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대형 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CF며 인터뷰며 밀려있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지용씨의 히트곡, ‘나비.’ 가사가 정말 시적이에요.”

 “시 맞아요. 아는 사람이 써준 시로 노래를 만든거에요.”

 

 그리고 나는 이제 T가 없이도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잘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까지 하루 종일 움직여도 내 몸이 모자랄 정도의 일정들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면서도, 나는 T의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를 향해 박수를 보내는 많은 것들에 눈이 멀었던 내가 겨우 정신을 차린 건 21살의 11월 4일, 겨울. T의 생일이였다.

 T의 시를 가사로 만들어 나를 상승 곡선에 올려준 그 노래가 유행이 지나자, 나에 대한 환호성을 급격히 작아졌다. 새롭게 유행을 탄 다른 가수들은 내가 받았던 모든 것을 자신들이 받아내고 있었다. 멍청하게도 나는 여유로운 나날동안 T를 볼 생각조차 없이 새 곡을 만들기 위해 매일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T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이 받기 전까지는. 

나는 같은 회사의 동료가 그 말을 전해주자마자, 겉옷도 입지 않고 그대로 회사를 뛰쳐나와 택시를 탔다. 정신없이 병실 앞에 도착하자 내가 그동안 T에게 저지른 일들이 떠올라, 막상 문을 벌컥 열 수가 없었다. 

 

 만약 T가 이제야 찾아온 나를 보고 차갑게 대하면 어떡하지? 나에게 실망했으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한참을 서성이다 문을 열었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의 침대, 그리고 그 위에 앉아있는, 나의 연인 T.

 

 “왔니?”

 “T...”

 

 한 팔에 온통 붕대를 감고, 얼굴에는 무수히 많은 상처를 남기고도, 전혀 아픈 기색없이 나를 반겨주며 평소와 다름없이 웃어주는 T를 보자니 무언가 무너지는 느낌이였다. 

 

 “미안해요, T. 너무 늦게 왔어요.”

 “괜찮아. 이리와서 앉으렴.”

 

 자신의 생일임에도 선물 하나 없이 온 나에게 T는 늘 그랬듯 다정했다.

 내가 없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나에겐 실망하지 않았는지, 다친 곳은 아프지 않은지, 나는 물어보면서도 계속 울었다. 그러면 그는 말 없이 가만히 나를 토닥일 뿐이였다.

 

 나는 도대체 여태까지 뭘 한걸까. 그래, 내가 어떻게 당신 없이 살 수 있겠어. 나한텐 당신밖에 없는데, T.

 

 

 

 

 

 창 밖의 풍경들을 보며 열 여섯 때나, 지금이나 노래라 하기에도 멋쩍은 내 노래에 대해 말을 꺼냈다.

 

 “T, 내 노래요. 제목이 뭔지 알아요?”

 “Forty, 아니니?”

 “맞아요. T에게 어울리는 제목이에요. Forty, For T......”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랑노래지.

 나는 당신이 나에게 실망한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내 고백에 어떤 반응을 할 지 몰라 두려웠고, 더 감추고 싶었고. 

 T가 나를 보며 깊게,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용아. 우아한 첼로 연주곡인 바흐의 Sarabande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작디 작은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너를 봤을 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어. 왜 이제서야 널 발견했을까, 하고 후회했었단다.”

 “후회하지 말아요.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위한 곡도 만들었잖아요.”

 

 창 밖을 보며 담담한 척 했지만 마음은 이렇게 심란할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몇 번이나 되새겼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어찌나 힘들었는지. 아주 오래전부터, 나도 기억이 안 날 그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조심스레 꺼냈다.

 

 “우리 둘이 같이 떠나요, T. 단 둘이.”

 “그러자, 지용아.”

 

 그리고 한동안 차 안은 고요했다. 

 T의 집 앞에 도착해 차가 멈춘 후에도 우리 둘은 아무렇지 않았다. T도, 나도. 우리 둘 다 서로를 보며 평소와 다름 없이 웃고 있었을 뿐.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T를 우연히 본 처음 그 순간부터, 이런 장면을 바라왔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나를 향한 환호와 기대, 팬들의 사랑, 명예, 그리고 이런 나의 눈과 귀를 막았던 나의 욕심과 이기심, 결국 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행복할거야, T의 옆에서.

 

 손을 뻗어 차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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