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상한 느낌에 눈꺼풀을 번쩍 들어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잠들기 직전에 갈아입고 잔 팬티가 축축하게 다 젖었다. 지용은 짜증이 치민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새 것으로 갈아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편한 자세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그의 엉덩이는 좀처럼 일어날 줄을 몰랐다. 젖은 팬티를 빨래하러 화장실로 들어가다 또 다시 퇴근하던 아빠랑 마주치면 어쩌나 싶어서다.
돌겠네, 진짜.
지용은 두 팔을 침대위로 짚은 자세 그대로 천장을 바라보곤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자는 동안 꿈을 꾸지 않으려 안하던 자위까지 하고 잤지만 헛수고다. 역시 밤을 내리 새야했을까. 3시 50분쯤을 가리키는 탁상시계를 본 지용은 뭉그적뭉그적 일어나 느릿한 움직임으로 젖은 팬티를 벗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소리를 죽여 조용히 속옷서랍을 열어 새 팬티를 꺼냈다. 젖은 팬티는 지난번처럼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학교 가는 길에 버릴 생각이었다. 열심히 알바해서 샀던 C사의 드로즈는 이게 마지막 것이었다. 꽤 오래전에 입었던 트렁크 팬티를 꺼내며 지용은 눈물을 삼켰다.
“...좆같다 진짜.”
또 한 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서 침대로 돌아와 몸을 뉘었다. 벌써 몇일 째 수차례 반복되는 이 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다. 남들도 다 하는 몽정이라지만, 이럴만큼 욕구가 쌓인적은 없었는데.... 이건 꼭 발정난거 같잖아. 지용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서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게 다 그 새끼 때문이야. 으득 하고 이가 갈렸다. 마음속 목소리가 자책에서 원망으로 바뀐다. 지용은 스스로를 위로하듯 연이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새끼만 없었어도 이렇게 까진 안 됐을 텐데. 그래, 맞아. 그 녀석, 최승현. 전부 최승현 때문이야.
최승현.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모르는 게 이상한 이름이었다. 무엇 하나만 뛰어나도 곧잘 유명세를 타게 되는 학교에서 무엇 하나 빠짐없이 다방면에서 뛰어난 학생이 모두의 관심을 받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학교 안에서만큼은 연예인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멀쩡하다 못해 입이 떡 벌어지는 비주얼에 학교 일이라면 뭐든 적극적이고 운동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중간 이상의 실력을 가진 녀석. 사납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사교성도 좋아서 학교와 학년에 상관없이 폭넓은 인맥을 자랑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 근방 뿐 아니라 한강 다리 건너 양아치들도 최승현은 알지만 건들지 않았다. 중2병 돋는 오토바이 사고나 집단 패싸움등은 그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 이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최승현이 가진 많은 장점들 중 하나였다.
줄여 말하자면 대단한 놈이었다. 최승현은. 계집애들 좋아하는 순정만화나 현실성 제로의 드라마에 나올 법한. 딱 그런 케릭터였다. 때문에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지용에게는 그저 멀고 먼 범생이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최승현에 비하면 지용은 쌩양아치2. 공부도 뭣도 안해 학교 제 시간에 나오는게 기적인 그냥 양아치 무리에 껴있는 그저 그런 학생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었다. 그 날. 그러니까 얼마 전 처음으로 최승현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지용은 어쩌면 아직도 학교에서 내리 퍼 자던 양아치일지도 모를 일이다.
반끼리 축구경합을 하던 유독 더웠던 4월 말. 1학년들은 1학년끼리 토너먼트 식으로 시합을 했는데 지용의 반인 10반과 영배의 반인 4반이 붙던 날이었다. 원체 학교 일정에는 관심도 없었고 땀 빼는 일을 싫어했던 지용이었기에 축구시합은 짜증나는 일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남녀 합반이라 남학생들은 모두 선수로 뛰어야 했기에 주섬주섬 애들끼리 맞춘 흰색 맨유팀 축구복을 입으면서 지용은 내내 칭얼댔다.
경기를 뛰기 전 담임이 스탠드에 애들을 앉히고 나눠준 이온음료 뚜껑을 박력있게 딴 지용은 여자애들의 상태가 조금 이상한 걸 눈치챘다. 죄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입은 멍청하게 벌린 채 누군가를 좇는 시선을 발견했다. 시선은 상대팀인 4반에 몰려있었다. 뭐야, 뭔데 그래. 하고 음료수를 마시며 무심하게 그 쪽을 따라가던 지용은 훅, 하고 마시던 그것들을 죄다 뱉어버릴 뻔 했다.
시발 존나 잘생겼어...
그것이 지용이 처음 한 생각이었다. 잘 빠진 기럭지에 새까만 흑발을 왁스로 고정시켜 드러난 이마는 4월의 뜨거운 햇빛에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아니, 얼굴 전체에서 광이 나는 것 만 같았다.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흔한 축구 유니폼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순 없었다. 간지가 흐르다 못해 물 불어난 하천마냥 범람하여 자신을 덮치는 듯하였다. 순식간에 심장을 어택당한 지용은 방금 전 여자애들처럼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4반쪽을 응시했다. 하트가 잔뜩박힌 시선을 영배가 눈치 챘는지 자기 반 애들이랑 몇 마디 나누더니 지용을 향해 운동장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다가온 영배가 무안할 정도로 지용의 눈은 그 잘생긴 녀석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영배는 지용과 지용이 바라보는 쪽을 휙휙 몇 번 번갈아 쳐다보더니 지용의 어깨를 몇 번 퍽퍽 쳐대었다. 그럼에도 지용은 아예 넋을 노은 듯 반응이 없었다. 쯧쯧. 혀를 차던 영배가 지용의 코를 밉지 않게 꼬옥 힘을주어 꼬집었다. 날 좀 바라보렴, 친구야.
“아, 아퍼! 뭐야 너!”
“넌 뭐야. 너도 최승현 좋아함?”
“최승현?”
지용의 한껏 격양된 목소리가 급하게 튀어나왔다. 휙, 다시 고개를 돌린 지용이 바쁘게 눈을 굴려 잘생긴 녀석을 찾아내었다. 제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운동장 한 구석에서 몸을 풀고 있는 녀석을 콕 집어낸다. 운동장 구석엔 애들이 몰려 잘 모를 수도 있건만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영배는 지용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우리학교 아이돌인 최승현을 모르다니. 학교를 겉핥기식으로 다니는 지용이 이 때 만큼은 정말 한심했다.
“엉. 최승현을 몰라?”
이름마저도 잘생겼어! 옆에서 영배가 학교 좀 제대로 다니라느니 와서 좀 깨어있어라 같은 잔소리는 이미 한눈에 폴인럽한 지용의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으며 불알친구인 영배는 눈치도 빨라 진작에 들켜서 지용이 승현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영배에게 컬쳐쇼크랄 것도 없었다. 물론 잔소리 사이에 들리던 영배의 우웩 소리에는 지용이 성질대로 확 영배의 정강이를 까버렸지만.
그 짧은 시간내에 지용의 닦달에 못 이겨 최승현이 얼마나 대단한지 탈탈 신상을 털어준 영배는 진이 빠져 전후반전 내내 지네 반 여자애들이랑 시시덕거리면서 앉아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시합동안 지용은 승현이 신경쓰여 제대로 뛸 수 없었다. 스탠드에 앉아서 꽥꽥 응원을 하는 여자애들 마냥 상대팀이던 승현이 너무 섹시해서 딱 죽을 맛이었다.
어느 운동이건 가리지 않고 잘 한다던 게 거짓말이 아니었나보다. 스트라이커를 맡은 녀석은 포지션 답게 수비수를 다 제끼고 자꾸만 유효골을 차대었다. 왼쪽 미드필더를 맡은 자신과는 부딫힐 일이 거의 없을 만큼 중앙을 뚫었지만 승현의 공을 수비수가 걷어내는 동시에 미드필더인 자신도 뛰어야 했기에 급속도로 숨이 가빠왔다.
헉헉거리며 공이 뜬걸 본 지용이 패스를 하려고 발을 놀리는 순간 확 하며 자신의 뒤에있던 돌맹이를 밟아 중심을 잃었다. 시발, 최승현이 보고있는데!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그게 다였다. 아픈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엉덩이를 찧을 각오를 하는 지용의 뒷통수로 단단한 것이 지용을 받쳐주었다. 누군가의 숨결이 땀으로 잔뜩 젖은 지용의 앞머리를 간질였다. 단단한 무엇은 가슴팍인냥 숨이 앞머리를 간질일때마다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위로 젖힌 지용은 그대로 정신을 놓을 뻔 하였다. 최승현이었다. 그렇게 뛰어다니는데도 땀 하나 흘리지 않은 고고한 모습의 최승현이 제 뒤를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건조한 모습과는 다르게 거친 숨소리가 지용의 귓전을 울렸다.
“괜찮아?”
헉! 낮은 목소리마저 취향이었다. 패닉상태인 지용은 얼떨떨하고 멍청한 모습으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승현이 다리에 힘이 풀려 반쯤 주저 앉은 지용을 일으켜 세웠다. 다정하게 흙먼지도 털어주고 땀에 젖은 앞머리도 넘겨주었다. 어떻게 자신이 스탠드로 돌아왔는지 모를정도로 지용은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이후로, 밤마다 아끼는 팬티들을 몽땅 적셨다.
지용은 승현을 꼬실 자신도 생각도 없었다. 승현의 주변에는 저 좋다는 참한 여자애들이 널렸는데 학교 잘 안나오는 발랑 까진 남자애를 설마 좋아하겠어. 그냥 조금 더 말해보고 싶고 자주 만나고 싶고 될 수 있다면 친한 친구가 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꿈을 그딴식으로 꾸니 지용한테는 엄청난 혼란이었다. 그만둬, 이 음란한 두뇌새끼야... 자기전에 기도 겸 명상까지 해봤는데도 먹히질 않았고 달밤에 체조하듯이 운동을 하고 들어가도 꼭 새벽에 일어나 팬티를 갈아입어야만 했다.
꼭 밤만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대낮인 수업시간에도 평소처럼 늘어지게 잘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최승현으로 가득 차있어서 깜빡 자버렸다가는 팬티를 버릴게 뻔했다. 달라진 수업태도에 들어오시는 각 과목 선생님들은 웬일이냐며 칭찬아닌 칭찬을 해주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어제는 몽정 안하는 방법을 검색했었다. 나오는 것들이라곤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괜찮다는 것 뿐이었다.
현실에서의 소망이나 바라는 일들이 무의식적으로 새어 나오는 게 꿈이라는 것이 얼핏 생각났다. 더 이상은 한계였다. 어떻게 해서든 밤을 좀 편하게 보내고 싶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필요없어. 지용은 수업이 끝나자 마자 4반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4반에서 아는 애라곤 영배밖에 없어서 복도 쪽 창문에서 4반을 훑었다. 일이 쉽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용의 얼굴에 조금 전 까지는 없던 웃음꽃이 피었다. 영배가 승현과 나란히 앉아서 시시덕거리고 있는 꼴이 조금 질투났지만 둘이 친하다면 자신도 친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최승현 사교성 짱짱이라잖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당하게 앞문을 열고 들어갔다.
“영배야, 나 체육복좀.”
막상 들어왔지만 뭐라 말해야 될지 몰라서 대충 체육복좀 빌려달라고 말을 얼버무렸다. 권지용 등신새끼. 아까까지 꽉 차있던 자신감이 승현과 눈이 마주치자 입구가 풀린 풍선마냥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날라가버렸다. 일부러 도도한 표정을 지어낸 지용의 얼굴이 다시금 붉게 물들었다.
“권지용 친구없냐. 체육복 빌리러 왜 여기까지 내려와.”
주섬주섬 체육복을 건내주는 영배가 안그래도 창피함을 뒤집어쓴 지용에게 잔뜩 쪽을 준다. 확, 하고 붉다못해 시뻘개진 얼굴이 씩씩 거리며 체육복을 받아들었다.
“흥, 나 아니면 누가 니 체육복 길이가 맞겠냐?”
확 쏘아주고는 체육복을 품에 안고 곧장 뒤돌아 나와 버렸다. 뒤에서 영배가 야! 하며 소리쳤지만 더 크게 들린 것은 그 옆의 최승현이 낮게 웃는 웃음소리였다. 그 소리가 꼭 자신을 비웃는 것 만 같았다. 씨잉... 망했어. 이게 다 똥배새끼 때문이야! 빨개진 지용의 볼 마냥 말랑 거릴 것 같은 엉덩이가 씰룩거리며 반을 나가는 것을 보고 낮은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하루 종일 딴 세상 사람이었다.
멍하게 뭔가에 홀린 것 마냥 넋을 논 승현의 상태는 지용을 처음 봤던 올해 2월과 변한 것 이 없었다. 이사를 끝마친 승현이 재학할 고등학교를 알아보러 다니는 중에 보았다. 까만 스니커즈에 마른 다리를 감싼 까만 스키니진과 그와 같은 색의 후드티를 입고 빨간 조끼패딩을 걸친 지용을 말이다. 귀에 여러 개 박혀 있던 피어싱을 반짝거리며 교복점에서 나오는 모습을 본 승현은 그 교복점으로 들어가 기어이 같은 교복인 Y고 교복을 사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내고왔다. 왜 그랬냐고 물어본다면, 승현은 그냥... 감이 좋았다.
중학교 졸업 전 정학을 받아 생활기록부에 빨간 줄이 그인 바람에 고등학교 입학이 안되면 어쩌나 걱정 했지만 피 실험체인 자신의 뒷처리를 너무 잘 해준 테디 덕분에 무리없이 원서를 너을 수 있게 되었다. 연구소에서 마련해준 집 또한 Y고와 가까워 꽤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승현은 생명 공학 기술로 만들어진 하나의 실험체였다. 핵을 제거한 도베르만의 무핵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의 핵을 이식하여 핵치환을 시켜 만든 수많은 실험체중 하나였다. 생후 4-5 개월, 인간의 나이로 다섯 살 때 앞니를 갈기 시작하던 승현은 귀와 꼬리를 들어낸 인간의 외형으로 신체를 바꿀 수 있었다. 체온 39℃, 맥박 1분에 80-120회, 호흡 분당 15-25회의 실험번호 87-TOP-1104는 12개월, 열넷의 나이에 완전히 귀와 꼬리를 가릴 수 있게되었다.
실험의 목적이야 물론 손쉬운 용병의 대량생산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성체가 되면 군용으로 지뢰나 적을 탐지하게 되거나 경비용으로 경호원이나 공항에서 마약을 탐지하는 용도로 쓰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만들어진 수인에 대한 대우가 썩 좋지 못하였다. 성체가 되기 전까지 훈련, 규율이라는 이름하에 가해지는 폭력은 기껏 만들어진 실험체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갔다.
그리고 그 일방적으로 받아내던 폭력은 살아남은 87-TOP-1104가 ‘최승현‘ 이란 이름을 받고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그대로 학생들에게 쏟아졌다. 승현이 중2가 되었을때 그 근방 아이들중 그 누구도 승현의 이름을 모르는 아이는 없었다. 물론 승현을 감히 건들 수 있는 아이도 없었다. 사냥개인 도베르만의 유전자는 승현의 행동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승현의 별명은 미친개가 되었다. 단어 그대로 승현은 미친것마냥 휩쓸고 다녔다. 그러다 용인할 수 없는 사고를 쳤고 정학을 먹게 된 것이었다. 그 쪽 지역에선 더 이상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가 없었기에 이사를 오게 된 것이었고 과정상 여태까지 자신을 체크해온 연구원인 테디와 함께 살게 되었다.
지용을 따라 Y고에 입학한 승현은 이미지 세탁이 필요했다. 그리고 곧 그는 그렇게 했고 알고 지내던 애들은 승현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수용했기에 다들 그 의 뜻대로 모르는 척을 해주었다. 그렇게 만든 이미지는 애석하게도 학교에 통 관심이 없던 지용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저와 같은 반인 친구 영배와 친해진 것 또한 계획적이었다면 계획적이었다.
이미지 메이킹을 한지 거의 두 달이 되가는 4월 말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승현이 학교 내에서 하는 운동경기에 모두 주력 선수로 뽑혔다. 그리고 10반과 축구 시합을 하던 날, 널널한 축구복 사이로 들어난 다리가 그렇게 매혹적일 수 없었다. 햇볕이 뜨거운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는 단순한 동작조차 승현의 눈에는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따닥, 하며 음료수 병을 따는 소리가 승현의 귓가를 쟁쟁하게 울렸다.
자신이 만들어진 실험체란 것에 감사 한 적은 한번도 없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청각이 좋은 승현의 귀로 지용의 칭얼대는 소리까지 빠지지 않고 죄다 들어왔다. 영배가 곧 지용의 곁으로 다가갔고 승현은 몸을 풀다 그대로 발기할 뻔 했다. 종알거리며 자신이 누구인지 케묻는 지용에게 영배가 몽땅 얘기를 해주는데 그게 그렇게 흥분 될 수 가 없었다.
겨우 참고 경기에 임하는데 예민한 후각이 자꾸 지용을 쫓았다. 달큰한 살내와 경기가 지속될때마다 점점 더 진해지는 땀냄새가 승현을 돌아버리게 만들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발정기도 아닌데 여기서 지용을 잡아먹어버릴지도 몰라. 승현의 이성이 뜨문 뜨문 멈췄다.
어..? 어? 자신의 포지션으로 돌아오던 승현이 돌을 밟은 지용을 본 건 한 순간 이었다. 자신이 자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와 지용을 뒤에서 받혔다. 가까워지니 강해지는 지용의 냄새에 승현은 딱 죽을 맛 이었다. 이러다간 진도도 더 못나가고 좋아서 죽겠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괜찮냐, 라고 침이 뚝뚝 떨어질것만 같은 욕망을 억누르며 다정한 가면을 쓰고 말이다.
그리고 며칠 후 지용은 꽤나 자주 자신의 반으로 되지 않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내서 영배를 보러 왔다. 물론 그 거짓말 이란건 항상 지용 스스로가 들통내버리고는 돌아가곤 했지만 그것마저 그렇게 귀여워 보이더라. 지용이 자신을 좋아 한다는 것은 축구가 끝나고 영배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데도 항상 도도한 표정을 지으면서 얼굴 도장을 찍는게 귀여워 아직 말도 먼저 걸지 않았었다.
그렇게 2주 뒤, 자신의 중학교 때 친구인 이혁수로부터 단톡으로 연락이 왔다. 단톡에는 자신과 혁수말고 지용도 같이 있었다. 술, 마시지 않겠냐고. 혹시 권지용 모르냐고. 권지용이란 애가 있는데 이상하게 듣진 말고 너 좋아 죽으려고 한다고 말이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카카오톡 이모티콘까지 찍어 보낸 혁수가 부탁을 해왔다. 그 아래로는 안녕하는 이모티콘이 지용에게서 날라와 있었다. 권지용 이 앙큼한 것. 도도한 고양이인줄 알았더니 영락없는 주인 잃은 강아지다. 그럼, 주인 잃은 강아지 같은 개가 달래주러 가야겠지 뭐.
낮게 웃은 승현은 알았다고 혁수에게 답장을 보냈다. 저도 답지 않게 'ㅋ'을 남발하며 말이다.
“혁수야아! 진짜 부탁이야! 응? 응?”
지용이 확실히 지쳐보이는 혁수의 옆구리를 간질이며 파고들었다. 혁수는 자신보다 더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중학교때 강전을 당해 다리 건너로 이사를 가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지용과는 아직까지 연락하는 친구중 하나였다. 그런 혁수와 승급전을 하려고 피시방에서 만난 주말, 붙어있는 자리가 나지 않아 할 일 없이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대기를 하던 도중에 지용은 발견하고야 만것이다. 이혁수의 카톡 친구목록에 버젓이 떠있는 승현의 이름을! 프로필, 상태 메시지마저 간지나는 승현을!
그때부터 혁수는 지용에게 시달리다 못해 탈탈 털리고 또 털렸다. 그 날, 너 얘랑 친구야? 얼마나 친해? 부터 롤 하는 내내 나 걔랑 좀 만나고 싶은데 말야. 하고 쫑알 쫑알 귀찮게 방해해준 덕분에 승급은 개뿔 심해 저 밑바닥으로 랭크가 가라앉고 말았다. 다이아에서 브론즈까지 랭크가 떨어진 암담한 표정의 혁수를 개의치 않은 지용은 아직까지도 있는 애교 없는 애교를 부려가며 혁수를 괴롭혔다.
떼 쓰는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까지 끈덕지게 달라붙는 지용은 또 처음이었다. 메이플 1900원 케시 아이템마냥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자꾸만 애절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불러대는 통에 혁수는 처음에만 불쌍했을 뿐이지 이젠 진저리가 났다. 안된다니까... 너 이 새끼가 얼마나 무서운 새낀지 알긴 알아? 다 널 위해서 그런거야. 그러니까 그만 좀 해....
“왜 안된다는 건데!”
지용이 빼액 소리쳤다. 결국은 지 성질을 못 이겨 꼴딱 숨이 넘어갈만큼 헉헉 거리는 꼴은 동정할 만 했으나 절대로 부탁을 들어 줄 순 없었다. 연락하면 내가 죽는다니까. 혁수는 아직까지 그 두려움을 기억했다. 절대 안되지. 지금 승현이 올바른 고등학교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화려한 과거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 싸이코 미친개 최승현을 기억하는 혁수는 절대 안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너, 그러면, 너, 내가, 민희한테 너 바람핀 적 있다고 다 불어버릴거야!”
그렇지만 그 다짐쯤이야 쉽게 무너뜨리면 되는거고. 지용은 기어이 혁수에게서 승현과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지용이 원하는 데로 다음 주 금요일 저녁, 지용의 집에서 그냥 술 몇잔 먹자는 그것을.
그 주 금요일 저녁. 잔뜩 기대에 부푼 지용은 조금 쌀쌀한 집안에도 불구하고 얇은 옷가지들을 입었다. 조금 얇지만 이게 제일 이쁜걸. 약간은 박시한 흰 티셔츠를 바지 속에 집어넣으며 귀에 꽂혀 있던 피어싱들을 죄다 뺐다. 혹시 모르니까 제일 얌전한 검은색 피어싱으로 한 개만! 들뜬 지용과는 다르게 혁수는 초조해 하며 손톱을 물었다. 얘랑 나랑 같이 피떡되서 어디 묻히는 거 아니겠지.. 걱정과는 다르게 승현은 젠틀한 모습으로, 능글맞은 웃음은 옵션으로 달고 지용의 집으로 입성했다.
지용은 너무너무 설레여서 말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이게 바로 스타를 처음 만난 팬의 심정일까? 좋아하는 연예인은 없지만 왠지 그럴 거 같다고 생각하며 지용은 승현을 맞이했다.
베이직한 면바지와 체크셔츠를 입은 승현은 벌써 대학생 티가 나고 있었다. 어쩜 옷입는거 마저도 내 취향이니... 감동한 지용을 제쳐두고 집안으로 들어간 승현이 혁수와 마주했다. 겁을 집어먹은 혁수가 당황하며 약속이 있다고 얼버무리더니 쌩하니 나가버렸다. 지용의 부모님은 바쁘신 터라 지용의 집엔 부끄러워하는 지용과 지용 때문에 발정기에 도달한 승현. 단 둘 뿐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작한 술은 어느샌가 빈 병이 하나 둘 늘어갔다. 단톡방에서 나와 개인톡을 꾸준히 한터라 어색한 분위기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게다가 지용과 승현은 취미나 취향이 꽤나 잘 맞았다. 또한 승현은 보기보단 재미있는 아이였고 얘기를 나누는게 지루하지 않았다. 술 때문인지 지용은 승현에게 말도 제법 잘했다. 그게 기쁘고 또 설레는 지용은 술 마시는 속도가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그리고, 결국 먼저 취해버렸다.
말꼬리가 점점 늘어지는 지용을 승현이 빤히 쳐다 봤다. 시선을 느꼈는지 지용 또한 빤히 승현을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눈을 먼저 피했을 지용이지만 술이 들어가다 보니 대담해진 지용이 계속 아이컨택을 해왔다. 그리고, 먼저 달려든건 지용이었다.
술을 마셨지만 긴장감에 바짝 탄 입안으로 아까까지 조잘거리던 혀가 쑥 들어왔다. 승현의 입 안을 몇 번 휘젓더니 잔뜩 얼은 승현의 혀를 농염하게 감아올렸다. 그 소름돋는 기분 좋음에 승현의 손이며 발이 꼼질하게 쫙 펴졌다. 이 진도 까지 바란건 아니었는데... 혈압 200Hg, 맥박 150회로 증가, 호흡 수 증가. 정상 범위 초과.
위험하다! 꼬리뼈가 스멀거리며 간지러웠다. 자신에게 연구원이 붙은 이유는 더도 덜도 아니고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흥분하게 된다면 자신의 본 모습을 들키고 말테니까. 승현의 흉부가 거칠게 들썩였다. 지용이 팔로 승현의 목을 감싸왔다. 발 끝부터 몰려오는 ‘성적 흥분’이 더 이상 승현의 이성을 통제하지 못하게 하였다.
방금 전 까지 놀고 있던 손이 확 지용의 어깨를 잡아챘다. 찰나의 순간으로 맞닿았던 입이 떨어지고 시선이 얽혔을때 지용은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한 짐승의 그것인 두눈과 똑같은 짐승의 것인 두 귀를.
이번엔 지용의 입속으로 혀가 들어왔다. 반항을 할 줄 알았던 지용은 잠잠했다. 그래서 승현은 더 깊게 지용을 탐했다. 지용의 뜨거운 혀를 뽑아버릴 것처럼 휘어 감았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방안에 울렸다. 입천장을 쓸고 지용의 혀를 건들고, 지용의 혀의 아래 부분까지 샅샅이 훑었다. 얼굴을 떼고 지용을 급한데로 아무 방이나 열고 들어가 침대로 밀어 자빠뜨렸다. 숨이 부족했던 지용이 벅찬 숨을 몰아 내쉬었다.
지용의 위로 승현이 올라탔다. 그 어떤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지용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듯 했다. 다만 제 위에 있는 것이 승현이라는 것에 자꾸만 볼이 빨개졌다. 지용의 눈을 뚫을 듯이 보며 승현은 다시 입을 맞췄다.
지용은 조금씩 흐느끼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생소한 감각이 자꾸만 지용을 들뜨게 만들었다. 애써 참는 듯한 그 소리에 승현은 더 몸이 달았다. 입술을 뗐더니 침이 길게 늘어졌다. 혀로 그것들을 훑으며 지용의 귀 뒤로 고개를 처박았다. 자신을 그토록이나 미치게 만들었던 지용의 몸 냄새가 진하게 났다. 냄새를 깊게 마시던 승현은 짐짓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로 지용의 귀에 속삭였다.
“나 원래 개새낀데. 나 되게 못되고 막 그래. 나 연기 하고 있었어. 알아?”
그러니까 지금 그만둬도 돼. 지용은 이해할 수 없는 승현의 말들을 들으며 아까 본 짐승의 귀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자신이 술을 마셔서 그런건지 아니면 진짜 승현이 개인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니 정말로 이건 수없이 많이 꾸던 몽정중에 하나일지도 몰라. 번들거리는 입술을 혀로 훑으며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밤새 구름위를 달려보자 승현아.
“올라타줘. 난 좋아. 간절히, 응... 너를 원해.”
승현은 웃으며 지용의 귀 옆으로 가볍게 키스해댔다. 그리고 느껴지는 혀의 감촉에 지용이 두 팔로 승현을 가득 안았다. 두 눈을 꼭 감았다. 승현은 지용의 목덜미에 끈질기게 입술을 놀렸다. 승현의 숨결이 닿고 혀가 닿을 때 마다 지용은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생경한 감촉에 다른 의미의 눈물이 자꾸만 차올랐다. 다정하게 말하던 아까와는 완전 딴 사람같았다. 저돌적이고 맹렬했다.
지용의 옷 속으로 손을 더듬거리던 승현은 밀착했던 몸을 들어 올려 자신의 셔츠단추를 끌렀다. 지용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옷을 훌렁훌렁 잘도 벗어제꼈다. 부담스럽지 않은 근육이 몸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지를 벗는 승현이 보이자 지용은 꿈이 아님을 확신 할 수 있었다. 개의 것으로 보이는 꼬리가 귀와같이 승현에게 달라 붙어 있었으므로.
지용은 딱 죽을 맛이었다. 자신의 주량을 넘어서서 들이 부은 탓에 쓰려오는 속도 속이지만 무엇보다도 뒤가 아려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난생 처음해보는 섹스였다. 그건 승현도 마찬가지인지라 어떻게 해줘야 될 지를 몰라 어젯밤은 정말 딱 승현만 즐기고 끝났다. 지용은 내도록 아파했고 반 쯤 발기했던 지용의 것은 승현이 지용의 배에 사정할 때 까지 가질 못해서 결국 승현의 펠라를 받고야 사정했다.
그래도 지용은 승현이 너무 좋았다. 이젠 더 좋아진거 같다. 아침이 되어 제정신일때에도 보이던 귀랑 꼬리에 대해 설명을 들은 지용은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는지 그 것 마저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도베르만에 대해 초록창에 검색해본 지용은 사진을 보고 기함을 토했다. 이렇게 잘 어울리는 이미지는 또 처음이었다. 섹시하고 탄탄한 모습은 영락없는 승현이었다. 승현의 품에서 밍기적 거리던 지용이 버릇처럼 핸드폰을 확인했다.
“승현아 오늘도 자고갈래?”
“..엉?”
왜. 욕구 불만이야?
아니, 아니거든! 그냥 오늘도 안들어 오신다고 하길래..
부모님?
응.
“무슨 일 하시는데?”
“그냥 회사 운영하셔. G그룹. 많이 바쁘신가봐.”
G그룹?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이름에 승현이 고개를 기울였다. 목덜미를 긁적이던 승현은 곧 잘 사는 것 같은 지용의 집안을 둘러보고는 생각을 멈췄다. 이정도로 사는 집이면 꽤나 큰 회사겠지. 하암. 늘어지게 하품을 한 승현이 이불을 빠져 나가려는 지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버둥거리던 지용이 곧 잠잠해지고 키스에 응했다. 아침이 너무 길다.
지용의 집에서 나온것은 일요일 늦은 오후였다. 얼굴이 반질반질해진 승현은 먹은 것이 없었지만 배가 불렀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졸리지 않았다. 최상의 컨디션.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승현이었지만 봄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다. 설렁설렁 집안으로 들어간 승현은 열받은 테디와 마주해야했다.
“야, 너 연락도 안되고.”
“미안, 그럴 일이 있었어.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보는 연구원들이 승현의 집으로 둘 셋 정도 와있었다. 인사를 하고, 흐흐 음흉하게 웃어대며 방으로 들어가는 승현을 쫓아 테디가 혈압을 재는 커프스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 정기적으로 승현의 상태를 체크해 보고서를 제출하는 테디는 어젯밤 상사로부터 단단히 깨졌다. 보고가 올라왔어야 될 승현의 상태가 올라오지 않은 것이었다. 덕분에 위에서는 연구원 두어명을 보내 진상을 확인하도록 했고, 연구원에게 잔뜩 깨진 테디는 툴툴거리면서 승현의 꼬리를 요구했다.
“...어? 야 너 혈압이 왤케 높아?”
응? 하고 되묻는 승현을 테디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추궁했다.
“너... 뭐하고 들어왔냐.”
눈에 띄게 움찔거리는 승현을 붙잡았다. 이럴만큼 혈압이 높아져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목숨의 위협을 받을 만큼 극한 상황까지 몰려 개의 형태로 변했다거나 다른 이유의 것으로 흥분하여 개의 형태로 변한것. 둘 중 하나뿐이었다. 승현의 컨디션은 최상의 것. 전자일 이유가 없었다. 후자인, 교미뿐이었다.
승현이 불안한 눈빛으로 테디를 비롯한 연구원들을 훑었다. 딱딱하게 굳은 테디의 표정은 당황함을 그대로 들어내었다. 꽉 물린 테디의 잇 사이로 목소리가 새나왔다.
“너, 어쩌려구 그래...”
자신만 있었다면 숫자를 조작해서 보고하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늘은, 왜 하필 오늘.. 승현을 그저 실험체로 보는 다른 연구원들도 있었다. 승현이 어릴때부터 맡아 책임져오던 테디랑은 달랐다. 그들은 승현이 보통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 분명 잡아갈 것이 뻔했다. 혈압을 확인하여 적던 연구원들이 멈칫하더니 시선을 교환했다. 테디가 망연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승현만이 동물적인 직감으로 위험하다는것을 감지했다.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신의 방을 빠져 나왔을때 승현은 어깨위로 느껴지는 따끔함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등교를 하고 출석 도장 찍듯이 4반으로 내려온 지용은 한동안은 승현을 찾지 못하였다. 영배에게서 3일째가 되가는 승현의 결석을 들은 지용은 추욱 쳐지고 말았다. 학교도 못 나올 만큼 많이 아픈가... 승현의 반의 담임을 닦달해 알아낸 집주소를 보면서 지용은 갈까 말까 수 많은 고민에 휩싸였다. 물론 당연히 간다는 결론이 낫지만 고민은 계속되었다. 죽집앞에서는 무슨 죽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한참을 서성였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몰라 약을 사는데도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전복죽 하나만을 포장해서 승현의 집 앞까지 왔다.
초인종을 눌렀을때, 기대하던 승현이 아닌 왠 이상한 남자가 문을 열어주는 것에 기분이 팩 상했다. 형제라기엔 너무 닮지않은 그 사람에게 죽을 내밀며 집으로 들어선 지용은 그곳에서도 승현을 찾을 수 없었다.
“승현이는 어디있어요?”
맹랑한 꼬맹이가 승현이를 찾는 꼴이 더욱 테디의 머리를 아프게했다. 대충 짐작이 갔다. 너가 최승현이랑 논 그 꼬맹이구만. 지금 그 새끼 걱정할 때가 아니야. 걔랑 관계를 맺은게 너인걸 알면 너도 무사하진 못할걸.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겨우 삼켜내고 테디가 일상적인 물음을 던졌다.
“너, 이름이 뭐냐.”
권지용이요. 흥, 하고 콧방귀를 껴대던 녀석은 승현의 방을 뒤적거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권지용.. 권지용이라고? 식탁위에 죽을 놓고 쇼파에 힘없이 기대있던 테디가 승현의 방으로 들어가 지용의 팔을 잡아채었다. 너... 어쩌면 혹시. 당황한 지용을 무시한체 그대로 지용을 끌고 나와 차에 태웠다. 옆에서 뭐냐고 등짝을 때리는 지용은 신경 쓸게 못되었다. 어쩌면, 제가 아는 권지용이 맞다면 승현도 지용도 둘다 살 수 있었다. 테디는 급하게 악셀을 밟았다.
깜빡.
점멸하는 형광등이 희미하게 방안을 밝혔다. 끄응. 승현이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의 근육들이 끊어진것 마냥 제것 같지가 않았다. 며칠이나 되었나.. 얼마나 독한 마취제를 쓴거야.. 바짝 마른 혀로 입술을 축이니 갈증이 더했다.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있는 페트병을 집어 들었다. 물을 잔뜩 집어삼킨 승현이 그제서야 제 몸을 확인했다. 목에 감긴 목줄이 익숙했다. 그러고 보니 방 또한 낯설지 않은 방이었다. 와... 여길 다시 와보네. 승현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떨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앙 물었으나 더해오는것은 원초적인 공포뿐이었다.
부드럽게 문이 열렸고 승현 혼자뿐이던 방에 똑같이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양사장... 승현에게 심어진 공포심은 그에게서 기인한 것들이었다. 연구를 지원하는 회사의 사장인 양사장은 승현이 자견일때부터 훈련이라는 이름하에 폭력을 휘둘러왔다. 승현에게도 그랬고 승현이 아닌 다른 실험체에게도 그리하였다. 뒤에는 집에서 봤던 연구원들이 서있었다. 연구원들에게서 자료를 건내받은 양사장은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너, 개를 훈련시킬 때 지켜야 할 3대 원칙이 뭔 줄 알아?”
양사장이 가까이 다가왔다. 확 구석까지 몰린 승현이 이를 드러내었다. 잔뜩 날을 세운 송곳니가 그르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양사장의 눈에 비쳤다. 우리 승현이 다 컸네. 주인한테 이를 보일 줄 도 알고.
“TOP."
불린 이름에 개패듯이 맞았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목줄의 끝을 그러 쥔 양사장이 목줄을 당겼다. 억세게 버티는 승현을 보니 웃음이 가셨다. 명령을 안듣는 개는 필요없지. 확, 거세게 잡아당긴 목줄에 승현이 컥컥거리며 끌려왔다. 때를 놓치지 않고 양사장의 구둣발이 승현의 옆구리로 들어왔다.
“첫째는 단호한 명령이고, 둘째는 즉각 교정이야 TOP. 셋째는 너한테는 필요없는 충분한 칭찬이지.”
무차별적인 발길질에 이를 악문 승현이 버티려고 했으나 그럴 힘이 없었다. 머리를 맞았을땐 그런데로 참을만 했으나 마지막으로 배를 차인 승현은 방금 마셨던 물을 코와 입으로 다시 다 토해내야 되었다. 몇 번 더 승현을 찬 양사장이 의자를 끌고 와 승현 앞에 앉았다. 목줄을 당기자 승현이 버틸 힘 없이 딸려왔다. 모습은 거의 개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이미 나간지 오래였다.
“말해봐. 너, 누구랑 교미를 했는데.”
그 때 까지 생기를 잃은 눈동자가 번뜩이며 빛났다. 양사장의 손에서 목줄을 가로챈 승현이 힘껏 양사장을 밀어 넘어뜨렸다. 쿠당탕. 너저분한 방 안으로 시끄러운 소리들이 잔뜩 울려퍼졌다. 넘어진 양사장의 위로 올라탄 승현은 목을 물어뜯을듯이 이를 들어내었다.
“너, 걔 괴롭히면 나, 진짜 도는 꼴 볼꺼야.”
양사장은 예상했다는 듯이 승현을 밀어내고 일어섰다. 쉽게 밀린 승현은 그 움직임에도 배가 당겨와 허리를 동그랗게 말아 숨을 골랐다. 양사장이 시계를 풀었다. 셔츠의 손목단추를 풀러 커프스를 걷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승현은 여기서 온전히 나갈 수는 없다는 것을 예상했다. 다가오는 양사장을 보면서 눈을 감은 순간, 승현은 지용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의아해하며 눈을 떴을때, 정말로 지용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지용이 엉엉 우는것을 확인하고 테디가 양사장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것까지 본 승현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테디와 함께 차를 타고 오는동안 지용은 다급해 보이는 테디에게 자신이 누구 아들인지 세세하게 설명해야 했다. G그룹 아들. 그 별거 아닌것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지는 잘 몰랐으나 곧 테디가 해준 승현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지용은 잠자코 있었다. 어디 병원에 입원이라도 한건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입술을 깨무는 테디에게는 더 이상 뭘 물어볼 수 없었다.
병원은 아니었으나 이상한 건물을 들어와 급하게 자신의 ID카드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테디를 쫒아갈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승현은 실험체였다. 혹시 정말로 안좋아서 다시 연구소로 돌아온걸까? 날 못 알아 보면 어떡하지. 울상이 된 지용이 테디의 자켓끝을 꼭 붙잡았다. 여기저기서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꼭 우는 소리와 같았다. 흰 연구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과 테디를 뚫어져라 보는것이 불편하고 또 무서웠다.
마침내 승현이 있는 방의 문을 열었을때 지용은 기어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형편없이 부어 피딱지가 앉은 승현의 얼굴이 그렇게 처참할 수가 없었다. 억울하게도 울어 제끼던 지용은 승현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당황해 하며 승현을 받아들었다. 이상한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 지용을 계속 쳐다봤으나 지용은 그런 것 까지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곧 테디가 그 사람에게 말을 건냈다. 지용에 대한 내용들이 대부분인 그것은, 지용과 지용 아버지의 회사인 G그룹에 관한 것들이었다.
승현을 옮겨와 집안에 눕히고서야 지용은 눈물을 그쳤다. 테디는 겨우 눈물을 멈춘 지용을 붙잡고 사실을 말해야 하나 약간 망설였다. 거실로 나와 자신과 마주앉은 지용에게 결국 모든 진실을 다 털어놓은 테디는 지용의 반응을 기다렸다. 지용은 몇 분의 정적 끝에 입을 뗐다.
“나는, 아빠가 그런 일을 서포트 해주는 지 몰랐어요.”
“모르는게 당연하지. 대외적으로 밝힌 적도 없으니까.”
또 그렇게 몇분간의 정적이 흘렀다. 테디는 주섬주섬 겉옷을 입고 핸드폰을 챙기고 널려있는 서류들을 챙겼다. 지용이 그런 테디의 동선을 훑으며 물었다.
“뭐해요?”
지용을 돌아본 테디가 뺨을 긁적이다 툭 내뱉듯이 말했다.
“TOP, 아니 최승현 이제 니가 챙겨. 내 할 일은 끝난거 같다.”
말을 마친 테디는 챙긴 서류들을 훑어보다 몇 개를 지용에게 건냈다. 받아든 지용이 안을 확인하자 승현에 관한 것들이었다. 성견이 되기 전까지의 기록들도 있었고 그 당시의 사진또한 첨부되어 있었다. 실험 번호라고 써져있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으나 사진속의 승현은 꽤나 귀여웠다.
“최승현 일어났나보다. 나는 이만 가볼게.”
무어라고 인사를 하기도 전에 현관을 열고 나가버린 테디에게 지용은 고맙다고 들리지 않을 말을 전했다. 승현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두근대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와서 지용은 한참을 방 앞에서 서성댔다. 겨우 마음의 준비를 끝마친 지용에게 승현이 말했다.
“너 냄새 나. 얼른 들어와.”
냉큼 방으로 들어온 지용이 걱정스럽게 승현을 쳐다봤다. 뾰루퉁 나온 지용의 입술을 엄지와 검지로 눌러 잡으며 승현이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였다. 맞은건 넌데 왜 니가 날 걱정해. 하고 지용이 앉아있던 승현을 다시 뒤로 눕혔다. 넌 무조건 안정이야.
“TOP."
지용이 나긋하게 이름을 불렀음에도 승현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했다. 몇 번 더 그 이름을 불르던 지용이 생긋 웃었다.
“이젠 내가 맨날 불러줄게. 애칭으로!”
승현의 가슴팍으로 뛰어든 지용이 탑,탑 소리를 연발했다. 그래도 너라면 두렵지 않을 거 같아. 근데 막 누르진 말아줄래. 나 지금 엄청 아프거든. 억- 하고 죽는 소리를 승현이 내자 지용이 얼른 놀라 떨어진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 물어보는게 귀여워 크큭 소리내서 웃으니 장난인걸 알았는지 쎄게 어깨를 쳐온다. ...이건 진짜 아프잖아.
확 자세를 뒤집은 승현이 그르렁 거리며 지용을 팔 안에 가두었다. 뭐가 그리 웃긴지 아직도 깔깔대는 지용에게 진득하게 입을 맞추며 생각했다. 앙큼한 고양이든 강아지든 이렇게 귀엽다면야 언제든지 주인이 되게 해주겠다고. 자신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고. 뜨거운 피로 쉬지않고 달려 누구도 말릴 수 없도록 사랑을 키우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