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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 요즘 내가 뭘 들었는지 알아?

 글쎄 우리 G랑 내통하는 놈이 주변을 들쑤신다는 거 있지? 어떻게 생각해?

 

 …….

 

 

 더러운 꼴 보기 전에 제 발로 나가는 게 좋다고 봐.

 

 

 

* * *

 

 

 

 아껴서 이 정도로 해주는 거야. T는 일이 없을 때마다 그 상황을 곱씹었다. 체감 상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니, 5개월이면 많이 지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나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을까. 너는. T는 그의 미소가 좋았다. 활짝 웃은 채 아이처럼 다가오지만 가끔 보이는 색기가 한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의 생각을 하니 우울해 졌다. 그립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온지 어언 5개월. 그리움의 깊이는 점점 짙어졌다.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이루어진 헤어짐의 대가는 꽤나 잔혹했다. 한껏 피워내던 G에 대한 생각을 가르고 들어온 것은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였다. T는 몽롱한 표정을 바로 잡으며 추억의 덩어리에서 헤어 나왔다. 발신자는 H. G의 수하로 일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으로서 그는 G의 친구 겸 파트너였다. 나름 친분은 있었던지라 가끔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간혹 그의 얘기 중 G의 일상이 나올 때도 있었기에 그와의 통화는 T에게 남은 G에 대한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받은 수화기 속 H의 목소리는 다른 때보다 조금 상기되어있었다.

 

 “T, 목소리 들려?”

 “아주 잘 들려. 왜?”

 

 G랑 애들 몇 명 데리고 지금 미국으로 가는 중이야. 예상치도 못한 H의 말에 T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다. 왜? 주린 입은 긴 말을 하지 못했다. 선보러 나가는 아가씨라도 된 냥 T의 가슴은 세차게 요동쳤다.

 

 “보스가 임무를 줬어. 조직 내 마리화나양이 부족하다나 뭐라나. 브로커가 미국 내에 있나봐.”

 “…….”

 “귀찮은 건 질색인데…. 총괄이 G라 약간 걱정도 된다.”

 “……언제쯤 도착해?”

 “모르겠어. 오늘 9시 30분 비행기야.”

 

 알겠어, 고마워. H와의 짤막한 통화를 마친 T는 핸드폰을 내려놓을 틈도 없이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 9시 30분 비행기라…….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국제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가 시간상 일치했다. G는 아마 이 비행기를 탔을 거야. 예상도착 시각까지 확인하고 나니, 더욱더 물 밀 듯 현실이 밀려왔다. G를 만나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인사는 어떻게 할지. 우연스럽게도 광대한 땅덩어리 중 공항은 T의 거주지인 워싱턴에 있었다. 혹여나 미국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가야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까 약간의 긴장을 했던 T는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기쁜 마음을 표출했다. 내일 새벽 3시 도착이니 시간은 넉넉했다. 정갈한 마음으로 욕실에 들어간 T는 비죽비죽 모나게 자란 수염을 매만졌다. 기분 탓에 길쭉하게 자란 코털도 정리하고, 쥐가 갉아먹은 듯 한 앞머리도 잘라냈다. 전문가처럼 자르지는 못했지만 나름 사람의 형상을 하게 된 데에 있어 흐뭇해진 T는 아침에 감은 머리를 다시 한 번 감았다. 정돈을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T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한 손으로 머리를 털며 다른 한 손으론 왼쪽 귀에 피어싱을 꼽은 T는 거울로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꼈다.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안 넣던 머리도 나름 넣고, 옷장을 연 T는 즐겨 입는 붉은 스트라이프 티를 꺼내 입었다. 쌀쌀한 가을 날씨로 인해 얇은 패딩 조끼까지 걸쳐 입으니 모든 것이 완벽했다. 준비를 다 끝낸 T는 아직 시간이 넉넉했음에도 불구하고 협탁 위의 차키를 집어 들고는 현관을 나섰다. 

 

 밤 날씨는 제법 쌀쌀맞았다. 마치 토라졌을 때의 G처럼. 담배를 몇 번 뻐끔거리자 G가 피어올랐다. T는 지나가는 길에 빵집에서 둥그런 공갈빵을 샀다. 다디단 것을 좋아하게 생길법한 외모와는 다르게 G는 심심하고 밍밍한 것을 좋아했다. 원체 입이 짧아 큼지막한 빵을 샀다가 낭패를 보면 안 되는 이유도 있었다. 한 입 베어 무니 빵이 눅눅하게 젖어 들어갔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입이 조금 심심했기에 빵은 그럭저럭 좋은 맛이 났다. 천천히 늦장을 부리며 도착한 공항은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인산인해였다. 공항을 찬찬히 둘러보다 발견한 전광판에는 작은 글씨로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13번 게이트. 서둘러 달려간 13번 게이트에는 가족을 찾는 사람들, 혹은 여행객을 찾는 여행사 가이드들로 북적거렸다. 로맨틱하게 꽃다발을 사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찌푸린 얼굴로 얕은 잠을 자는 노숙자도 있었다. T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기다림은 기나길었다. 비행기가 도착해 승객들이 내리는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문은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들뜬 가슴은 흥분을 멈추지 않았다. 외부에서 서서히 공항으로 스며들어오는 냉기가 찼다. 하나둘씩 들어오는 사람들 중 G의 얼굴을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하다못해 H의 얼굴이라도 보여야 정상이었지만 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은 오랜 비행시간에 찌든 얼굴들 뿐 이였다. 설마 이 공항이 아니었던 걸까. 공항을 잘못 검색한 것일까. 마지막 남은 희망을 버리고 돌아서려는 찰나, 투박한 발소리가 들렸다. 단언컨대 이것은 흔한 짐승의 직감으로, H다. 그가 틀림없다. 

 

 “H, G는 어디 있어!”

 

 역시는 역시였다. H는 양 손 무겁게 짐을 든 채, 한 번 더 열리는 자동문을 통해 들어왔다. 반가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G는 어디에 있니. H는 T의 얼굴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고갯짓을 했다. 저기, 곧 올 거야. 말을 마치고 돌아선 H의 등은 고된 비행으로 인해 추욱- 처져있었다.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문을 가르고 들어오는 인파의 중심에 G가 있었다. 새끼, 타국에 왔다고 수하들을 줄줄이 달고 오다니. 쓸데없는 섬세함에 T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T는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그가 나올 출구로 향했다. 근처에서 경계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G와 눈을 마주쳤다. 놀랐구나, G. 하염없이 확장되는 그의 동공에 T는 뿌듯함을 느꼈다. 나름 멋진 소설 속 남주인공처럼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G,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멋있었다. 이 얼마나 깜짝 놀랄만한 만남인가. 허나 힘껏 흔들던 오른팔은 내릴 타이밍을 놓쳐 점점 저려왔다. T는 머쓱하게 오른팔을 내렸다. 이쯤이면 오빠가 멋있어 눈물을 흘리며 달려와 품에 안겨야 할 텐데. 계획과는 다르게 G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또다시 G와 눈을 마주쳤지만 그는 못 본척 잽싸게 고개를 돌렸다. 마음이 허해졌다. 이건 틀림없는 무시였다. 고개를 돌린 G는 수하들을 따라 차로 향했다. 분명 몇 발자국 앞에 G가 걸어가고 있었고 그리운 향기도 그대로인데 그는 T에게 일말의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몸을 지탱하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땀이 많은 체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혹스러움에 등에선 식은땀이 났다. 미세하게 저려오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수많은 번호들 중 하나에 통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주기적으로 울렸다.

 

 “여보세요.”

 “H, G한테 뭔 일 있냐?”

 “개소리야. 걘 그때와 다름없이 지랄 맞아.”

 “아니, 그런 거 말고. 기억상실증 이라든지, 그런 거 인마. 얘가 공항에서 눈을 마주쳤는데 아는 척을 안 해.”

 

 말을 하고보니 서글픔이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쌍방적인 사랑이 아닌 본인 혼자서 애처럼 좋아한 것은 아닐까 하는 극한 상상까지 들었다. 소리를 죽이고 웃는 중인지 수화기 너머 H의 끅끅거림에 T는 좋지 않던 기분이 더 거지같아졌다. 아씨, 말을 해, 시발아.

 

 “보스가 G 따로 불러서 하는 말이 미국에 있는 T와 혹시라도 접촉이 닿으면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했어.”

 “…….” 

 “걘 또 그걸 미국에 발 닿자마자 이행하냐. 비행기 안에서 너 보고 싶다 제일 찡찡 댔던 게 G야.”

 “…….”

 “안 그래도 비즈니스석이 아니라 짜증나 죽겠는데, 애새끼가 계속 옆에서 그러니 짜증나서 한 대 쳤는데 계속 토라져있더라.”

 

 혹시 G가 거기 있으면 눈가 잘 봐봐. 울었어, 걔. 

 

 혼자 생각한 추측은 상처만 낳았다. 야! 야! T 뭐해! 갑작스럽게 답을 멈춘 T를 향해 수화기 너머의 H는 고함을 질렀다. 약 육십초 남짓 악을 지르던 H는 제 풀에 꺾여 전화를 끊었다. 상처 입은 G의 얼굴을 떠올린 T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상처 입은 것은 나인데, 왜 너는 내 머릿속에서 한껏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니. 상처받은 G를 밀치고 들어온 것은 한 통의 문자 음이었다. 발신자는 H.

 

[ The 제퍼슨 호텔. 4시에 체크인. 803호]

 

 T는 다급한 손놀림으로 시동을 걸고 호텔로 향했다. 상대의 의사가 어떻게 되던 G를 안고 싶었다. 부드러운 그의 살결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평소보다 약 3배 정도 밟은 탓에 제퍼슨 호텔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쫓기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호텔로 허겁지겁 들어갔다. 803호 들어간 지 얼마나 지났어요? 연사로 계속되는 T의 질문에 호텔 지배인의 대답은 일관적 이었다. -그분들에 관한 정보는 일체 금기라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T는 차오르는 화지기에 그의 멱살을 잡고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애써 감정을 다스린 T는 지배인을 밀친 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딩동- 소리와 함께 열리는 상자 안에서 8층을 눌렀다. 초조한 마음에 껄렁한 자세로 여느 비행청소년들과 다름없이 다리를 달달 떨었다. 로비부터 8층까지 가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성급한 마음에 주먹을 쥐고 엘리베이터의 문을 쾅쾅 쳤다. 8층에서 입을 연 엘리베이터를 등지고 나온 승현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맨인블랙 뺨치는 자태로 8층을 휘젓고 다니는 양복쟁이들은 어림잡아 15이상으로 보였다. 그들의 자태에 잠시 위축된 T는 곧바로 자세를 갖추고 803호 앞으로 향했다. 문 앞에 있는 수하들은 T도 아는 얼굴들 이였다. 

 

 “Teddy, 부디 비켜줘. G를 만나야겠어.” 

 “재량껏 불러봐. G를 부르는 것은 내 권한 밖의 일이야.”

 

 우리의 만남에 있어서 장애가 너무 많았다. T는 길가에 내쳐진 개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Teddy는 그 표정을 보며 토기가 올랐다. 까짓것 내가 직접 부르면 되지. T는 그를 밀치고 문을 쾅쾅- 두들겼다. G!! 내가 왔어!! 문을 열어줘!! 한밤중의 소란에도 위엄한 자태를 고수하는 문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T는 부셔질 것 같은 가슴을 움켜잡았다. 문이라는 장벽 하나가 우리를 이리 아프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눈앞의 장벽이 부셔져라 두드렸고, 발목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장벽을 차댔다. 쾅쾅- 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노력에 대한 보답이라도 되는 듯이 싸매있던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역시 G였다. 샤워를 마친 후 머리를 말리는 모양인지, 수건을 감싸 쥔 채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몇 분 전 통화중에 들었던 H의 말 때문에 그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작은 얼굴 속 그의 눈은 하얀 피부와 대비되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열린 문틈을 비집고 발을 끼워 넣었다. 당황한 G는 수건을 떨어뜨리며 몸을 주춤거렸다. 문고리를 붙잡고 있는 G의 몸을 방안으로 다짜고짜 밀어 넣은 T는 수하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 

 

 “G, 다 들었어. 보스 명이라며.”

 “조용히 해. 미친놈아.”

 “제발. 그 새끼 신경 쓰지 말고 이 시간을 나와 함께 즐겨. 응?”

 

 당황한 기색을 지우지 못한 G는 난데없는 그의 고백에 주변에 널려있던 속옷을 T의 입에 우겨넣었다. CCTV 있어. 보스가 보고 있단 말이야. 제발 조용히 해. 귀를 타고 고막으로 흘러들어오는 그의 목소리는 달콤하기 짝이 없었다. 막 씻고 나와서인지 말 속에 물기를 머금은 듯 했다. 입 안을 가득 채운 속옷이 자존심을 구겼지만, 그것이 G의 것이라 생각하니 금세 기분이 풀렸다. 그 길 그대로 물건을 집에 가져가고 싶었다. G는 변태처럼 헤실헤실 웃는 T를 보곤 허탈하게 실소를 지었다. T, 일단 나가. 여기는 너무 위험해. 방문을 열어주는 게 아니었다. 발기한 개처럼 짖어대는 통에 스트레스를 받아 홧김에 문을 연 것이 잘못이었다. 고집이 자신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 않은 그를 설득시킬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됐지만, T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되지도 않는- 설득이 먹힌 듯 했다. 아님 내 처지를 이해해 주는 건지.

 

 “좀 있다, 1시쯤에 호텔 정문 앞으로 나와.”

 

 G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T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5개월만이잖아. 밥이라도 먹자. 데리러 올게. 흔들리는 G의 눈동자를 무시하며 몸을 돌렸다. 애써 멋있는 척 방을 나선 T는 주차장으로 향하며 방금 전 상황을 되뇌였다. 마음 같아선 박력 있게 그의 양 팔을 붙잡고 키스를 하고 싶었다. 아니 하라면 더한 것까지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는 G의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에 그는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T는 애꿎은 벤츠의 유리창을 쳤다. 좆같은 서열 관계를 부시고 싶었다. 망할, 보스 그 후레자식. 지금 자면 1시 안에 일어날 수 있을까. 창밖으로 터 오르는 햇빛 덕분에 내심 걱정이 앞섰지만 그와 가진 오랜만의 식사이니 기분 좋게 일어날 것이라 확신했다.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이 왔다. 

 

 

* * *

 

 G와의 식사는 생각보다 더욱 황홀했다. 나름 있는 남자인 척 하기위해 준비한 골드카드도 후회 없이 긁었다. 워싱턴에서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에 단 둘이 앉아있으니 그야말로 천국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예전에 가졌던 그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와 앉아있으면 언제나 설렜고, 또한 언제나 새로웠으며, 언제나 수줍었었다. 그런 그와 마주본 지금 눈앞의 상대는 좌불안석이라도 된 양, 핸드폰과 벽지만 반복적으로 쳐다보았고, 그런 그와 대면한 T는 그야말로 어색 그 자체였다. 어색함은 스테이크를 써는 그 순간 까지도 계속되었다. 막말로 고기 앞에서는 그 어떤 분위기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G의 고풍스런 분위기는 여느 유물처럼 견고했다. 만나면 반가워서 무슨 말이라도 건넬 줄 알았건만 이 상황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차라리 G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저 스테이크 한 조각이 부러웠다. 물론 T가 노력을 안했던 것은 아니다. 만나자마자 건넨 인사에 돌아온 대답은 응. 뭐 먹으러 갈래라는 질문의 답도 응. 로봇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G는 일관적이었다.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야말로 거지같은 상황이었다. 막말로 사랑하는 G를 한 대 쳐버리고 싶었다.

 

 “G 진짜 오랜만이다.”

 “응.”

 “잘 지냈어? 조직 내는 어때? 내가 없으니 일처리가 안 되어 눈물을 흘리진 않고?”

 “응.”

 

혹여나 자신이 질문을 잘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몇 개월 만에 만나 하는 질문과 다를 것이 없었다. T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비속어에 잠시 화장실 좀- 하곤 자리를 피했다.

 

 “시발."

 

 이 정도로 무시를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매일 밤 꿈속의 G는 눈물을 흘리면서 달려왔는데 현실 속 그는……. 눈물은 개뿔, 입이라도 열어주면 소원이 없겠다. T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다 침을 뱉었다. 5개월 전보다 모습이 괴상해져 그가 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거울 속 자신을 보고나니 걱정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유가 알고 싶었다. 갑갑한 것은 질색이었다. T는 금연 문구가 붙은 화장실 안에서 담뱃불을 붙였다. 연기를 흡입하는 찰나에 사이렌이 울렸고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T는 담배를 붙잡은 팔만 덜덜 떨어대며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소리를 들은 음식점 관리인이 화장실에 왔고 T는 나이 26을 먹고 기껏해야 다섯 살 정도 차이나 보이는 관리인에게 호되게 혼났다. 레스토랑에서 쫓겨나는 동안 기분은 땅으로 치닫았다. 그 짧은 순간에 그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있어야할 테이블엔 아무도 없었고, 그가 남긴 쪽지에는 미안하다는 네 글자가 전부였다. 

 

 조직에 있을 당시엔 이런저런 마약도 많이 접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힘듦의 연속이었다. G와 내통이 터져 제 발로 나왔을 당시에는 쌓아둔 돈도 어느 정도 있었고, 유산으로 받은 통장도 몇 개 있었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있어 딱히 장애가 없었다. 조직 내에서 보스의 애첩이라 소문이 나있었다. G는. 여성의 느낌도 나고 남성의 느낌도 그리 진하지 않은 터라 말을 섞어보면 대화 중간 중간 상처를 꽤 느낄 수 있었다. 지난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해보려 했는데 이딴 곳에 와 똑같은 굴레를 걷고 있다며 투정을 부린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말동무나 친구로 시작했던 일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고 분위기에 이끌려 T는 그를 안았다. 미세하게 열려있던 창문 틈으로 G의 신음이 세어나간 탓일까. 그 날 이후, T와 G의 관계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소문이 T의 귀에 되돌아왔을 때 보스는 이미 사건을 알고 난 후 였다. 평소에 일처리 능력도 뛰어나고, 업무에 있어서 완성도도 훌륭했기 때문에 보스는 T를 아꼈다. 최선의 선택으로 T는 쫓겨났고, H에게 들은 바론 G는 험궂은 일을 당했다고 했다. 그랬기에 G는 보스를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원체 약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흡입되는 마약은 정량 이상이었고 G의 몸은 하루하루 썩어들어 갔다. 비밀연애를 할 당시에는 반 협박으로 그의 몸에 흡입되는 마약의 양도 대폭 줄여놓았었고 몸 상태도 어느 정도 회복시켜 놓았건만, 지난 5개월 동안 보스는 G를 아예 자신의 개로 길들여 놓은 듯 했다. 화가 치밀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술을 병째 들이키며 골목길에서 G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렀다. 미친 사람처럼.

 

 아침에 확인한 휴대폰에는 어제와 똑같은 번호로 부재중이 찍혀있었다.

 

 

* * *

 

 

 이틀 동안 연속적으로 찍힌 부재중은 T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우연스럽게 한 번 정도 찍힌 것은 이해하겠다만 같은 번호로 이틀 연속 이어지는 부재중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거기다 더 의문이 드는 것은 부재중으로 찍힌 번호는 국제전화였다. 국제전화에 대해 무지한 터라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 알 수 없었지만,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보스. 이틀이나 국제전화로 T에게 친근감을 표할 사람은 그 밖에 없었다. T는 당장 호텔로 향했다. 분명 G가 T와 접촉했다는 것을 보스가 알아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융통성 없는 사람답게 앞뒤가 꽉 막혀 고지식했다. 시발, 지난 동료애로라도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가. T는 부재중으로 찍혀있던 번호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한참을 지나도 신호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울리는 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G가 지나치게 소심해 진 이유도 이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괴성을 질렀다. 아악! 조직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보스의 개처럼 살아야 하는 것인가. T는 괴로움에 담배를 집어 입에 물었다. 검지와 중지가 타르에 젖어 누렇게 변했음에도 담배는 잠시나마 삶의 향기를 지워줬기에 중독은 계속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 손으로 통화 버튼 누르는 것을 얼마나 반복했을까, 신호음이 끊기고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건너에서 들려왔다. 

 

 “드럽게 전화 안 받던 새끼가 웬일이지?”

 

 받자마자 자기 할 말부터 하는 걸 보니 그가 확실했다. 더군다나 고막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목소리는 그의 전유물 이였다.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떨려왔다. 개월이 지나도 노예의식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T는 허탈감에 수화기를 떨쳤다. 멍멍거리며 짖어대는 그의 목소리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문뜩 들려오는 G라는 단어에 정신을 차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내가 어떻게 G가 너랑 만난걸 알았을까? 

 

 스미는 그의 목소리엔 날이 서있었다. 베베 비꼬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들려오는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G의 심장부근에 도청기가 있어. 물론 그가 말했던 대로 호텔 곳곳에는 CCTV가 있고.”

 

 난 그걸로 G를 감시했고, 넌 그 사슬에 그대로 걸린 거지.

 미친 새끼. 인간이 아니야, 넌, T는 머리끝까지 파멸감이 들었다. 그 작은 애한테 해를 입힐 곳이 어디에 있다고……. 몸 안에 도청장치를 넣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살을 찢고 기계를 강제로 집어넣는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행동이었다. 스파크라도 터진 듯 벌벌 떨리는 몸을 이끌고 통화를 하는 동안 G가 묵고 있는 호텔 앞으로 도착했다. 이대로 가다간 그가 위험할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은 미친놈의 품에서 벗어난 몸뚱이였지만, G는 아니었다. 만일 거대한 해가 생긴다면 그 피해는 분명 G가 모두 가지고 갈 것이 분명했다. 

 

 “만나서 이야기하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어디십니까?”

 “안 그래도 지금 미국 땅을 밟았네. 나 역시도 만나서 몸으로 이야기할 생각이었다네.”

 

 예상외의 대답에 T는 당황했다. 현재 미국 땅이라니, 판단을 벗어난 대답이었다. 제퍼슨 호텔 앞에서 조금만 기다리게. 기다리는 시간이 심심하다면, 하늘로 가기 전에 불쌍한 네 어미를 붙잡고 눈물이나 흘리고 있으라구. T가 유추한 결과 그가 제퍼슨 호텔에 오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G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 만남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을.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음이 급해진 T는 무작정 계단을 타고 8층에 올랐다. 두세 칸씩 오르느라 숨은 턱턱 막히고 헛구역질까지 나왔지만 그는 목적지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803호 앞에 멈춰선 그는 몇 번 숨을 고르더니 온 동네가 사라지도록 악을 질렀다. Teddy는 그런 그를 제지했고, T는 아쉬운 마음을 담은채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G!! 듣기만 해! 전에 우리 했던 약속 기억나?”

 

 어쩌면 내가 오늘 그 약속 지킬지도 모르겠어.

 눈에 먼지가 들어가기라도 한지, 눈 주변이 시큼거렸다. 로비에 도착함과 동시에 T는 재킷 속에 숨겨놓았던 총들을 모두 장전시켰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총구를 타고 광활하게 울려 퍼졌다.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약속된 골목으로 들어간 T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 * *

 

 

 -T, 만약 우리의 관계로 인해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지면 어떡할 거야?

 -그런 걸 갑자기 왜 걱정해. 바보야.

 -그냥…….

 

 -내가 그딴 거지같은 상황 안 오게 만들어줄게. 넌 내조나해, G.

 

 

* * *

 

 

 

 비록 짧은 순간 이였지만, 다시 만난 후에도 나는 너를 좋아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부디 너는 내 생에서 계속 숨 쉬어 주길 바랄뿐이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예상대로 보스는 저 멀리서 차를 타고 미끄러져 왔다. 문에서 내린 그는 손에 리볼버를 들고 주변에 안면이 있는 조직원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지난 날 저 곳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그들과 일을 했을 자신을 생각하니 T는 저절로 구역질이 났다.

 

 “T, 오랜만이군.”

 “그렇습니까?”

 “어리석은 새끼. G를 넘보지 않았으면 명줄은 붙어있었을 텐데”

 

 단호한 그의 말에 T는 한껏 그를 비웃어 주었다. G가 제 입으로 당신의 것이라 하덥니까? 약에 한껏 취하게 만든 뒤 억지로 쥐어짜낸 말은 아니고? 살살 비꼬는 듯 한 T의 말에 보스는 화가 끝까지 치솟았다. T가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보스는 총구를 T에게 겨눴고, 방심하고 있던 T는 그보다 한 발 느리게 총을 꺼내들었다. 사람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 워싱턴의 비좁은 골목에 험한 기류가 두 남자 사이를 배회했다. 고됨으로 연속되는 일상에 지친 T는 한시라도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인생에 있어 죽음이 두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기고 나니,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는 듯 했다. 호텔룸 안에서 G는 곤히 자고 있었으면……. G가 떠오름에 T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자신이 죽이지 않으면 G의 고통은 계속된다. 한시라도 G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탕-

 

 “T!”

 

 허공으로 소리 없는 발악이 이어졌다. G? T는 애써 생각을 멈췄다. 환청이 들려오다니,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 비참해졌다. G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탕-하는 상대의 총성은 온갖 생각이 지워진 이후에야 귓속에 울려 퍼졌다. 눈앞에 나타난 G는 T의 몸을 안으며 뛰어들었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형체감에 T는 현실을 그제서야 직시했다. 아아……. 품 안의 G는 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백색 가운이 그의 피에 의해 시뻘겋게 물들어 가는 것이 모순스러웠다. 분명 너는 나에게 무관심한 채 호텔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야 하는데……. T는 약이라도 한 사람처럼 덜덜 떨리는 손으로 G를 흔들었다. T……. 미세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틀림없는 그의 것이었다. G는 쿨럭이며 피를 토했다. 찰나의 순간 본 보스 또한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새로운 애첩을 만들 수 있는 그는, 괜찮은 척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손을 탈탈 털며 승리한 자의 표정을 지은 보스는 끌고 왔던 차에 올라타 유유히 사고현장을 떠났다. 시발. T의 손마디가 점점 심하게 떨려왔다. 핏물이 번지는 속도는 그에 비례했고, G의 가운은 형용할 수 없이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그만……. 가운의 색이 바뀌면 바뀔수록 현실을 암시해주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G의 숨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채 허덕거렸다. T는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주변에는 개미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았다. 

 

 “T…….”

 “…….”

 “사랑한다 해줄래…?”

 

 작은 몸은 피를 토하며 헐떡거렸다. T는 그를 들쳐 엎고 무작정 뛰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들려주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병원을 찾아야해. 아직 못한 게 많단 말이야. 등 언저리가 점점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G, 제발 그만. 내가 아파하는 게 보이지 않니. T는 입술을 깨물며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넋 놓고 엉엉 울고 싶었지만, 등 뒤의 G가 들을까 소리를 죽였다. 목을 감싸고 있는 그의 손에서 힘이 점점 빠져들어 갔다. 안 돼, G. 살아남아. 

 

 “……T.”

 “…….”

 

그의 숨이 점점 가빠져왔다. 입을 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고집이 강하니, G.

 

 “ 미안해…모르는 척 했던 거……. 용서해줘….”

 

 미세한 신음소리와 함께 목을 감싸던 손의 힘이 사라졌다. 작은 두 손은 넋두리를 잃은 채 허공에서 팔랑거렸다.

 T는 끝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불안감과 공포심은 점점 그를 휘덮었고, 절대적 감각이 추한 몸뚱이를 지배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T는 G를 안아들었다. 너는 왜 내 앞에서 눈을 감은 채 웃고 있는 거니. 희망을 버린 적은 없었다. 반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새로운 불씨는 잠입함과 동시에 처참히 꺼졌다.

 

 “…사랑해…….”

 

 T는 온기가 사라진 입술에 입을 댔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정신없이 푸른 살결을 유영하는 입술에서는 짠 맛 났다. 사랑해……. 주인 잃은 T의 고백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무력해진 외침이 힘없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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