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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녀가 부잣집으로 팔려가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됐다. 나라 문을 개방하자마자 이게 무슨 일인지 양놈들의 저주라고 개탄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조(時潮)에 올라타는 게 살아남는 길이나 마찬가지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고목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회의를 거듭해도 내놓을 만한 답은 나오질 못했다. 한 청년이 가슴을 치며 우리가 맨손으로 여자들을 지킵시다, 했지만 열의도 그 때뿐이었다. 다들 침묵만 지키던 중 과부인 서시가 자리를 뜨려하자 광택은 덜 익은 감자를 쥐어주며,

 

 “혼자 먹으라구.”

 

 했다. 이놈아. 낮부터 무슨 낯부끄러운 짓이냐! 김 노인이 지팡이로 광택의 불룩 튀어나온 배를 찌르며 고함쳤다. 광택은 저가 무슨 짓을 했냐는 듯, 감자 준 게 그렇게 큰일이오?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는 듬성듬성 돋아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영감님은 낮 말고 밤에는 해도 된다는 말씀인가? 되레 말대꾸까지 하니, 김 노인은 거북이 등껍질 같은 자신의 이마를 치며 아이고, 아이고 탄식만 반복했다. 감자를 받아든 서시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서시의 지아비는 백정으로 몇 백 년만 먼저 태어났어도 평민이었을 테지만 조선시대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천한 신분이었다. 코에서는 쉴 새 없이 뜨거운 콧김을 뿜어댔고 이빨은 누렇기도 얼마나 누렇던지 까만 입술과는 선명한 채색대비를 보였으며, 난도질당한 돼지의 껍질을 입에 처넣은채 슬쩍 웃으면 그만큼 무서운 광경도 없었다. 하지만 인품은 예덕선생 못지않았기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다. 덩치는 뻥 좀 치면 백두산만 하여서, 마을 사람들은 단지 최 참판 댁의 고기를 책임지고 있다, 라는 의미로 평소에 최 씨로 불리는 그에게 백두라는 호를 붙여주었다. 그런 그가 경국지색의 아내를 맞이했을 때에는, 그 때 백두는 스물아홉이었다, 다 늙으신 아버지가 꺼끌꺼끌한 손을 떨며 마을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 잔치를 벌였다. 좁은 앞마당에서 백두가 직접 살육한 소, 돼지 등 짐승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여자들은 맛있게 손질하여 고운 접시 위에 올려두고 넓은 상 하나를 펴 술 몇 병을 얻어와 들이켜고. 흥에 취해 술에 취해 노랫소리가 마을 밖으로까지 널리 퍼지니, 그렇다. 우리 아들이 장가를 들었어요, 하기에는 잔치가 과하다 싶지 했다.

 

 “틀림없이 백두가 임신시켰을 거야.”

 “아무리 백두가 짐승같아두 그런 짓 할 놈 아니여요.”

 

 항간에는 이런 소문이 돌기도 했다. 개중에는 백두의 착한 심성에 서시가 반했을 거라고 추측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으로 끝날 뿐. 백두가 서시를 억지로 임신시키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없는 살림에 잔치를 벌여 무리를 하는 거다, 음탕한 행동거지로 그 살던 마을에서 쫓겨나 이리저리 떠돌다가, 백두 놈이 거둬서 서시가 은혜를 갚기 위해 함께 사는 거다 등등. 어쨌든 말이 무지하게 많았지만 서시는 백두와 잘 먹고 잘 살면서 2년이 지나 딸 하나 그리고 또 몇 해가 지나 아들을 하나 낳았다. 젊은이들이 서시에게 휘파람을 불며 은근한 제안을 해도 그녀는 뿌리 깊은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정조를 지켰으며 또 시댁에 최선을 다 했다. 백두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는 그 울음소리가 천지를 뒤흔들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큰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잘 사는 것을 보아하니 금슬에 있어서는 최고였으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언제까지나 하하 호호 할 수 없었으니,

 

 “백두가 관아로 끌려갔담서?”

 

 마을의 누군가에 의해 누명을 쓰고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됐다. 누가 순한 그를 난데없이 범죄자로 만들었는가? 백두의 사망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아무도 그가 진짜 죄를 저질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죄형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기, 공갈, 협박 정도였고 후에는 여자를 억지로 취했다는 죄목까지 추가됐다. 백두는 어눌한 말로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했으나 당시 서시에게 관심이 있었던 이 사또는 백두에게 형벌을 가했다. 장에 간다고 나갔으면서 며칠 째 감감무소식이라, 남편이 걱정돼 백두를 찾아 나섰던 서시는 그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져 관아로 달려갔지만 이미 일은 끝난 후였고 뱀처럼 능글맞은 이 사또만이 징그러운 아랫도리로 서시를 맞이했다. 서시는 이 사또의 팔을 물었고 오리 울음소리 같은 비명을 지르는 이 사또를 내버려두고 집으로 도망친 그녀의 하얀 이에는 피가 묻어났다. 동시에 미처 다 챙겨 입지 못 한 그녀의 속곳도 피로 물들어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것만큼 백두의 일은 별다른 조사 없이 마무리 지었다. 이 사또는 서시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수청을 들을 것을 제안했고 박 방원은 첩이 돼주기를 권했으며 이때다 싶어 득달같이 달려드는 젊은이들은 금은보화 모아 서시의 마음을 회유했다. 그 중 하나였던 광택도 그녀의 마음을 잡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서시는 부른 배를 백두가 쓰던 칼로 쑤셔 자결을 택했다.

 이 사또의 꿈에는 언제나 서시가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채 나타나 그의 목을 조르면서, 그렇게 원하던 수청, 내 또 들어드리다, 하며 그의 아랫도리를 움켜쥐더니 곧 어디서 칼을 들어 자르려고 했다. 그 칼은 서시 자신의 배에 찔러 넣었던 것으로 아직도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꼼짝 못 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다 겨우 깨어 보면 땀으로 흥건하였고 실제로 이불위에는 핏자국이 있어 등골이 섬뜩했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눈을 감으면 해괴하게 웃는 서시가 보여 죽기 직전 까지 갔던 그는 결국 임금에게 허락을 구하고 비(碑) 하나를 세워주었는데, 그것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안착한 높고 웅장한 비였다. 선선한 바람을 맞이하며 서 있는 비문(碑文)에는 보통 열녀비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으나 조금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서시 잠들다. 이번 생에 못 다한 운명은 다음에 나누도록.]

 

 라는 사족이 달려있다는 것.

 

 후에 밝혀진 바로는, 평소 서시에게 관심이 있었던 광택이 그 부부를 질투하여 백두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한다. 이 사또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기에 일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는 백두를 괘씸하다 생각하여 백두의 시체를 제대로 처리하지도 않고 그대로 까마귀들의 먹이가 되도록 이름 없는 광야에 내버려두었다고, 나중에 찾아가니 백두의 시체가 누워있던 곳은 모양대로 홈이 파여 있었고 잔디조차 자라지 않더라, 하는 목격담까지 내려왔다. 광택은 남겨진 서시와 백두의 아이들을 어쩔 수 없다는 듯 저 멀리로 팔아버렸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부잣집으로 보내는 게 낫다면서 엄마를 닮아 빼어난 미모의 여덟 살짜리 딸을 육십 조금 덜 먹은 내관 집으로 보냈다. 혼자 남겨진 어린 아들은 그 집의 노비로 들어가게 했다. 무슨 권한으로 아이들을 마음대로 팔아먹느냐, 네가 그러고도 후생에 인간으로 태어나려 하느냐, 하는 질타에 광택은 기름으로 반질한 얼굴을 들이댔다.

 

 “나만큼 서시를 좋아한 놈이 있소?”

 

 광택은 살해당했다. 들리는 말에, 용으로 태어난 서시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의 머리를 집어삼켰다고 한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지만 또 그렇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실제로 광택은 몸통만 남겨진 채로 발견됐고 그의 머리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자손들은 조상의 흉포함을 닮아 일제의 편에 서서 호사스럽게 살았다고 한다.

 

 

 

 

 

 

 

 “고전 소설의 내부를 뜯어보면 이렇게 무서운 내용들이 많아.”

 

 지용이 <다시 쓰는 서시전(傳)>의 갈래와 특징을 판서하며 말을 이었다.

 

 “현대어로 해석하면서 작가가 덧붙였거든. 그래서 순화한 내용도 부분적으로 있어.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보낸다면 사회적으로 좀 논란이 예상될 거래. 이 작품도 내용을 조금 수정한 거구.”

 

 배경이 하동 쪽인데, 실제로 그 곳에 가면 서시비(碑)가 있기 때문에 실존한 인물을 모티브로 그렸다, 라는 말이 많지만, 선생님은 이건 정말 말 그대로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존재하던 비석자체를 바탕으로 그린 작품일 수도 있으니까.

 

 지용은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 스스로도 찝찝하다 생각했다. 열 개의 반에서 똑같은 작품을 가지고 똑같은 내용의 수업을 함에도 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서시가 자결하는 부분에서는 눈앞에 아득해지기도 했다. 감정이입이 잘 되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문학 선생이라는 직업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위로하려고 했다. 작자 미상에 배경은 조선시대고 한 세기가 지난 작품이다. 뒤숭숭한 기분도 곧 없어질 거라, 그렇게 생각했다.

 

 “퇴직하신 진 선생님의 자리를 채워줄 분이예요.”

 

 교감이 키가 큰 남자를 소개했다. 교무실에 모인 선생님들은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강한 인상에, 체육 교과 담당답게 체구가 만만치 않았다. 쉽게 말하면 잘생기고 건장한 남자 선생이었다. 그들은 마른 멸치마냥 비실대던 진 선생을 떠올렸다. 이사장의 사위라는 말이 있어 사립인 이 학교에 들어오기 수월했을 거라고 추측하던 중, 마침 이렇게 건실한 선생이 들어오니 그런 생각을 확신하는데 더욱 무게를 실었다. 이렇게 정정한 인재가 엄연히 숨을 쉬는데.

 

 “최승현입니다. ”

 

 반갑습니다. 나직한 첫 마디에 젊은 여선생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맨 뒤에서 졸고 있던 지용도 얼른 자리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뺐다.

 

 “서툰 게 많으니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건조한 목소리. 딱딱하게 굳은 저 얼굴. 지용은 아예 잠이 깼다. 눈싸움을 하듯 상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서울의 낯선 잠자리에 뒤척일 때 뒤에서 끌어안아주던 사람이던가. 기억이 느리게 흘러간다. 지용은 눈을 깜박였다. 농구 그만 두었구나. 그 다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승현이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이었다. 당황할 때면 나오는 저 익숙한 호흡에 지용은 어둡고 낡은 자신의 방을 생각했다. 방. 누군가에겐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갈 곳인지는 몰라도 가난한 대학생에겐 그저 몸만 뉘일 곳이었다. 그 방에 끼어든 승현의 존재란 어떤 이름표도 붙이지 못할 만큼 가치가 있었다. 애정이 고픈 남자에게 애정을 선물해주는 상대가, 그것이 설사 무생물이라 할지라도 달려들 게 되기 마련이다. 자신은 애정이 고픈 남자였다.

 햇빛 대신 고독이 드리우던 방은 불길에 휩싸이고 모습을 감췄다. 애정으로 겹겹이 쌓아 놓은 관계도 불길에 타 버릴까. 방화범은 승현이라고 했다. 

 

 지용에게 그 방은 소중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방에서 함께 자고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 소중했다.

 

 

 

 

 용서라 할 것도 없다.

 지용은 서랍을 열어 흰 봉투를 하나 꺼냈다. 1999년, 겨울. 20세기의 끄트머리.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글씨는 아직도 살아있다. 우리는 역사의 한 순간에 있습니다. 이제 21세기라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합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이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봉투를 열며 치열했던 90년도를 생각했다. 배고프고 괴로운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자신의 성공에, 성적에, 대학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던 음울하고 그러나 희망적이었던 날. 지금은 멍이 마를 날이 없어도 서울에 가면 길이 있다고, 눈물을 삼키면서 쓴 문구가 자신의 책상 가운데에 붙어 있었다.

 

 지용이에게.

 

 단정한 글씨.

 

 농구 쪽으로 아예 결정이 났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을 거다. 

 

 꽤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음에도 글씨는 너무 재미가 없었다. 마치 내일 또 보자 라는 인삿말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좋아한다.

 

 그래도 이 때만큼은 진심이었을 테지, 지용은 흰 봉투를 다시 서랍 속에 넣었다. 승현은 감성적인 남자였지만 냉정했다. 그는 쉽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헤어질 때 그는 아주 담담하게 좋아한다고 한 번 더 고백했다. 지용은 가방끈을 고쳐 매며, 응,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만난 곳은 서울이었다. 99년 제야의 종소리가 사람들 심금까지 울리고도 4년이 더 지났다. 지용의 집 앞에서 이별했다면 재회는 지용의 방 앞에서 이루어졌다. 지용은 목도리를 풀어 승현에게 둘러주었다. 어디를 가나 억압받는 일투성이었던 우리는 이제 주민등록증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고 그리운 마음은 예전만큼 그 농도가 진하지 않았다.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남겨 두기가 가장 아름답다고, 그러나,

 

 “오랜만이다.”

 

 목소리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승현은 울음을 터뜨린 지용을 안으며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용은 제 생각을 지웠다. 그리움의 농도는 기준이 없다.

 두 번째로 하는 사랑은 또 다르다. 그의 낡은 방으로 승현이 침입했다. 이방인의 등장에 방은 한순간에 달아올랐다. 지용은 밤낮으로 자신을 끌어안고 추위를 달래는 승현을 좋아했다. 승현이 저를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면 그 눈길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어렸을 때부터 본 얼굴이라 지겹지? 눈 내리는 바깥을 보며 물었다. 승현은 오히려 새롭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났다. 승현은 어느 날부터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다. 연락을 안 한다거나 혹은 마음대로 지방에 내려갔다가 온다거나 하면 지용은 그렇게 서운할 때도 없었다. 그러나 흐트러진 모습으로 다리를 주물러달라고 투정부릴 때에야 비로소 아,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구나 안심했다. 

 그는 이제, 황망히 타 버린 자신의 방을 보며 할 말을 잃고 주저앉았다. 승현이 불러 갔던 카페에는 아무도 없었고 역시 연락도 닿지 않아 힘 빠진 걸음으로 귀가하던 참이었다. 그동안 3년 동안의 시간은 검은 연기로 날아가고 있었다. 방이 없어진 것은 아무렴 해도 상관없었다. 거듭 말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이루어진 시간들이 아까운 것이었다. 집이야 또 구하면 되니까, 지용은 정신을 차리고 승현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갔다. 땀인지 눈물인지 액체가 흘러 축축한 볼에 핸드폰을 댔다. 그 때 경찰은 자신에게 다가와, 방화범이 자백했다고 알려주었다.

 같이 사시던 친구 분이라고 덧붙였다.

 지용은 웃고 말았다. 신호음이 끊기고 전화도 끊겼다. 문자가 왔다. 미안해. 좋아해.

 

 

 

 

 

 

 

 “그 나이 먹도록 결혼을 못 했다는 건, 하자가 있다는 뜻이야.”

 

 스스로 한 말에 교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 취해서 하는 말이 얼마나 신빙성 있겠는가. 여교사들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여전히 승현에게 관심이 가 있었다. 올해 서른다섯이라구, 저는 올해 서른이예요. 어머니가 빨리 시집가라고 난리이신데 어디 좋은 남자가 있어야지요. 

 지용은 속이 불편했다. 10년이 지났음에도 지워지지 않는 사실은 저 남자가 자신을 끌어 안고, 무뚝뚝하지만 사랑한다는 표현을 온 몸으로 내보내고, 또 서로의 첫사랑이라는 것. 차라리 오늘 처음 보는 타인이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니까 자네는 왜 결혼을 안 했냐 이 말이야.”

 “여자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말은 오해하기 딱 십상이라구.”

 “이제 막 선생님이 되어서, 시간이 없다는 뜻이에요.”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항상 상대방에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딱딱하게 굴던 남자에게 이제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재간이 생겼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쌓은 내공일 테지. 자신도 수많은 인간관계를 형성해왔음에도 이런 감정이 드는 건 불쾌하다. 어서 씻어서 내보내야하는데 지겹게 얽힌 서로의 운명이 가만두질 않는다.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첫 번째 만남은 너무 어렸을 때라 멋모르고 시작했고 두 번째에는 그리운 가운데 시작했다. 세 번째는, 글쎄, 보자마자 멱살을 잡을 것 같았는데 놀라움 외에는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맞아.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지용은 제 나이를 실감했다.

 

 “먼저 일어날게요.”

 

 내내 안절부절 못하던 지용은 결국 자리서 나왔다.

 자정이 넘어서 옛날 자신의 방에 도착했다. 다시는 오고싶지 않았는데 마음 가는대로 발이 이끌었다. 어쩜 10년이 지나도 길은 잊히지가 않는지, 그는 또 슬금슬금 떠오르는 기억에 머리가 아팠다. 좁은 방은 이제 허물어졌고 낯선 주택들이 들어섰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가로수들은 겨울바람에 앙상해져 있었다. 조금 더 걸어서 모퉁이를 돌면 승현과 함께 심은 관목이 나왔는데, 새로운 주인이 뿌리채 뽑아버렸는지 흔적도 없다.

 내일부터 당장 어떻게 지내야할까 고민을 해야 함에도 달이 점점 기울수록 그 의지는 달아난다. 아무렇지 않게 마주하는 것은 힘들 거다. 10년은 길지만 또 짧은 세월이라서, 승현이 저를 봤을 때 당황했던 것처럼 자신도 모르쇠로 일관하기가 불가능하다. 학교를 그만 두는 건 극단적인 결정이고 교직에 계속 있고 싶다면 차라리 전근을 가는 게 현명할 판단이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지용아.”

 

 이렇게, 또 만나버리는 운명이,

 

 “오랜만이다.”

 

 어디를 가나 따라온다는 것.

 

 

 

 

 *

 

 

 

 

 “자네가 승현이지? 다 알고 왔어. 네가 권지용과 어떤 사이인지도 다 알고 왔다구. 나는 그 놈 집에 불을 지를 거야. 죽일 거야. 그 새끼가 서울로 간 바람에 우리 남편이 쓰러져서 병신이 됐어. 다신 못 일어난대. 안 그래도 좆같은 집안도 더 망해버렸어. 잠자코 앉아서 지방에서 대학 다니고, 부모님 모시면서 살면 됐잖아. 아니면 돈 달라는 대로 줬으면 됐잖아. 감히 연락을 끊으려고 했어. 덜 맞아서 미쳐버렸나 보지? 굳이 서울까지 간 것은 의도적으로 우리를 피하려는 행동인 거 다 알아. 윤리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새끼야. 나는 지를 낳지 않았지만 우리 남편은 자기를 낳았잖아. 그런데 감히 버리고 도망가? 미친놈은 죽어야 해. 아니, 오히려 내가 미친놈이라고, 너 지금 그렇게 생각하겠지, 역시 끼리끼리 놀아. 그런 건방진 생각은 집어치워. 너도 함께 죽이려는 거 참았으니까. 됐어, 내가 구구절절 상황 설명할 필요 없지. 네가 불을 질렀다고 자백해. 네가 죽였다고 말 해. 안 그러면 너와 그 놈의 관계 다 말해버릴거야. 그리구 아주 남창이라고, 고향에 있을 때 아무한테나 다리 벌리면서 놀았다고 악질 중에 악질 소문을 낼 거야. 소문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그걸 다 감당할 수 있겠냐구. 그 놈이 그 학교에서 장학금 받고 다닌다며? 우등생으로 평판이 나 있을 텐데 남자 애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그런 더러운 소문을 달고 계속 사회생활 할 수 있을까? 응? 그 성격으론 자살을 했으면 했지 멀쩡히 살아가기 힘들거야. 사랑한다면 가만히 내 말 들어. 난 보통 영악한 여자가 아니야. 그 새끼가 절망 속에 죽는 것보단 아무 것도 모른 가운데 죽는 게 낫지 않아? 난 계속 당신 쫓아다니면서 협박할 거니까 경찰에도 신고해보고 다 해봐. 죽을 때까지 괴롭힐 거니까.”

 

 

 

 

 

 

*

 

 지용은 눈을 떴다. 어제 입은 차림 그대로였다. 열어놓은 창을 통해 바람이 불어왔다.

 용서. 이제 막 말을 배운 아이처럼 쉼 없이 말을 토해내던 승현은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예전만큼 딱딱하지 않으며 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남자는 저를 처절하게 바라봤다. 지용은 묵묵히 가로등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말했다. 너를 살리고 내가 어떻게든 그 여자를 막으려고 했는데, 며칠 후에 사고가 나서 죽어버렸더라. 미안하다. 그렇게 될 거,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그 때 당시에는 그게 너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가 서로의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굳이 널 떠났다.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게 널 배려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나지 않는다면 이대로 살아가려고 했다. 누구에게도 마음 주지 않고 죄값을 치루며 혼자 살아가려고 단단히 마음먹은 참이었다. 그런데 또 만난다면, 세 번째로 만난다면, 다시는 세 번째 이별이 생기지 않게끔 내가 단단히 동여맬 거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가로등이 꺼졌다. 갈 곳 잃은 지용의 눈이 바닥을 향했다. 아득한 어둠 속에서도 승현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는 몇 분 동안 말이 없었다.

 

 “이렇게 만났어. 기막힌 인연이야 우리.”

 

 지용은 식은땀을 닦으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몇 걸음 떼다가 눈물로 축축한 눈을 감고 다시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새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일부러 지우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얼굴이 어땠고 어떤 심보를 가지고 있었는지 희미했지만 피가 나도록 매질을 가하던 모습은 트라우마처럼 뚜렷이 남아 있었다.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이제는 어떤 격앙된 감정조차 일지 않는다.

 지용은 승현의 이야기를 남 사정을 듣는 것처럼 흡수했다.

 어떤 무속인이 그랬다. 영혼들은 계속 우주를 떠돈다. 영겁이 지나도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그 영혼들의 운명인데, 그것은 한 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이 새로 안착한 육신이 어떤 형체를 띄든 간에 주어진 인연대로 살아가기가 당연하다고 했다. 지용은 어렴풋이, 승현과 제가 영혼이 없어질 때까지 안고 갈 운명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서시전이 꿈으로 재생되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고전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 속에 서시의 슬픔이 묻어나 있을 거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방해꾼들이 너무나 많아 편히 사랑할 수 없었고 비극적인 끝을 맺은 서시와 백두가, 꿈에서는 그저 처절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나왔다. 지용은 마치 제 이야기와 마주한 것처럼 가슴을 움켜쥐었다. 

 하동에 가기로 했다. 서시비를, 직접 보아도 나쁘지 않겠다고. 

 

 

 

 

 

 

 

 [날짐승으로 태어나든 길짐승으로 태어나든 동성동본(同姓同本)으로 태어나든 동성(同性)으로 태어나든 감정 없는 사물로 태어나든 하늘 위에서 태어나든 땅 아래서 태어나든 나무로 태어나든 해로 태어나든 개울이 흐르는 골짜기로 태어나든, 하물며 작은 벌레 따위로 태어나든 간에, 둘의 연분(緣分)은 이어지리라. 서시 잠들다. 이번 생에 못 다한 운명은 다음에 나누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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