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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나는 나의 기억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수면에서는, 수많은 낱말들이 둥실둥실 먼 곳으로 휩쓸려 갔다가 도로 휩쓸려 오기를 반복한다. 떠오른 낱말들은 부딪혀 부서지기도 하고 서로 결합하기도 한다. 멀어진 기억과 가까운 기억들이 서로 손을 잡았다가 놓치기를 반복한다. 문득 파도에 깎여 내 두 발 밖에 딛을 곳이 없는, 기억의 섬에 선 내 앞으로 몇 장의 낱말카드들이 떠밀려 온다. 비읍, 아, 리을, 다시 아, 그리고 미음.

 말이 없는 조그만 아이를 새로 데려온 것은 오 년 전의 일이었다. 강의 손을 잡고,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나를 향해서 다가오던 처음의 아이는 내 눈에 한없이 작고 어려 보이기만 했다. 몸에 한참 맞지 않는 큰 사이즈의 옷이 아이를 더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데에 한 몫을 했다. 아이가 입고 있었던 것은 옷이라고 부르기에는 턱없이 모자랐고, 차라리 더러운 천 조각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나의 눈은 헝클어진 다갈색 머리카락, 잿빛 눈동자, 드러난 하얀 목과 어깨를 지나, 커다란 옷의 비어 있는 왼팔 부분이 바람에 흐느적거리고 있는 모습을 향해 차례대로 움직였다. 말간 얼굴을 한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물끄러미 그 쪽을 쳐다보고 있었던 나와 눈을 마주치자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강의 등 뒤에 숨어 버렸다. 강은 허리를 굽히고 다정하게 웃으며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앞으로 네가 지내야 할 곳이야. 유난히 마른, 겨울 나뭇가지 같은 아이의 손가락들이 강의 손을 힘주어 꽉 쥐었다. 빈 왼팔이 흔들릴 때마다 등 뒤 한 쌍의 날개가 함께 흔들렸다.

 

 8번. 그 날 아이가 부여받은 번호였다. 그리고 새 번호를 받는다는 일은, 1번부터 7번까지의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가 했던 모든 과정을 또 다시 8번에게 되풀이해야만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강은 가끔 아이들의 앞에서 이야기꾼이 되었다. 늪에 사는 악마 이야기를 알고 있니? 강이 그렇게 말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보통 고개를 저었다. 그것들은 늪 한 가운데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누군가가 가까이 오면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도록 발목을 붙잡아 버린단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이 늪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갈 수 없게 되는 거야. 차오르다가, 차오르다가, 이만큼 차오르면, 모든 풍경이 깜깜해지고 부서져 버리는 거지. 그 부분을 말할 때 강의 손가락은 아이의 배에서 가슴, 가슴에서 정수리로 움직였다. 그러면 아이들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거나 두려움에 떨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너를 지켜 줄 수 있으니까. 강은 자신과 눈높이가 맞는 높은 의자에 아이를 앉히고, 조그만 손을 쥔 채로 그렇게 속삭이고는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강에게 빠져들었고 그의 말을 믿었다. 나는 대체로 강이 마법을 부리는 동안 그의 옆에 서서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애들은 애정에 약하거든. 평범한 애들보다도 더 심하지. 사랑을 받고 싶어한단 말이야. 딱딱한 도마를 칼로 자르는 게 쉽겠나, 틈을 벌리고 애원하는 부드러운 복숭아를 자르는 게 쉽겠나. 강은 파이프를 입에 물고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연기를 내뿜으며 조그맣게 미소지었다. 그 애들은 열쇠야.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 열쇠를 맞는 문고리에 끼워 넣는 것 뿐이고. 내 눈에 그가 말하는 열쇠는 늘 녹이 슬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은 항상 그 열쇠를 맞지 않는 문고리에 억지로 끼워넣으려고 했다. 그러면 그것은 망가지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곤 했다. 1번에서 7번, 그리고 8번으로 또 다시 이어질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강이 아이들을 버리거나 망가뜨리려고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다. 한편으로는 존경하기까지 했다.

 

 안녕.

 

 그리고 그것이 내가 8번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그 첫 마디를 건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오랜 시간이란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먹인 다음, 이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도록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8번의 경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강이 그 아이를 위해 새로운 왼손을 만들어 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달 반 정도가 지나고 난 후에야 다시 만나게 된 아이의 얼굴에는, 적어도 이전보다는 핏기가 돌고 있었다.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들은 그대로였지만, 비어 있던 왼 팔에는 몸에 맞추어 견고하게 만들어진 의수가 끼워져 있었다. 강의 솜씨일 것이다. 강은 아이가 유난히 낯을 가리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아이는 살짝 고개를 젓거나 혹은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주사기가 왔다 갔는지 팔에 대고 솜을 누르고 있는 마른 손가락이 희었다. 

 

 나는 최승현이야. 너를 부르는 이름이 있니?

 …….

 

 잿빛 눈동자가 나를 말갛게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의 시선처럼. 나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내 옷의 주머니에서 반듯하게 개어진 손수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8번에게 내밀었다. 8번이 발견되었을 당시에 그 주변에 떨어져 있었던 물건이라고 했다.

 

 거기 있는 게 네 이름이니?

 

 손수건의 귀퉁이에는 세 글자로 된 이름이 서툰 바느질로 박혀 있었다. 권지윤.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팔을 지혈하던 손을 떼어내 손수건을 내민 내 팔을 조심스럽게 끌어갔다.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손목을 간질거렸다. 나는 아이가 손목 위에 글씨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나라는 단어였다. 

 

 누나 이름이구나.

 …….

 너는?

 

 아이는 다시 내 팔을 쥐고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권지용. 나는 아이가 내 팔 위에 남긴 그 이름을 입 속으로 굴렸다. 한 번, 두 번, 그 이름을 곱씹을 때 마다 하얀 한 쌍의 날개가 조그맣게 흔들렸다. 눈을 아찔하게 만드는 백색이었다. 거뭇하게 주삿바늘 자국이 난 팔과 손바닥 위로 전해지는 아이의 말들. 무엇이 됐든 8번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름을 물었던 것이 벌써 5년 전의 일이었다. 아이는 연둣빛 새싹이 땅을 밀어 올리고, 온 들판이 살아 있다고 발버둥치며 봄으로 물드는 계절에 이 곳으로 왔다. 그리고 내 팔 위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지용에게 한 쪽 팔이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였다. 그것보다 내가 먼저 알게 되었던 것은 지용의 가족이 모두 실종되거나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가 지나온 곳들을 추적한 강의 단어들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모두 아이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C객체들이었다. 사람들은 초기에 날개를 가진 객체들을 천사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호의를 가지고 대해 주었던 사람들도 많았던 모양이지만, 그들을 붙잡아 두기만 하면 행운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구석에서부터 퍼지기가 무섭게 객체들은 모두 사냥당했다고 한다. 그건 결국 터무니없는 헛소문이었지만, 어찌 됐든 간에 결과적으로 C객체들 또한 털이 달린 꼬리나 귀를 가진 A객체, 뾰족하고 날카로운 손톱이나 단단한 피부를 가진 B객체, B2객체들과 똑같은 마지막을 맞은 것이었다. 사냥당하지 않은 일부는 도망쳤고, 그 중의 3분의 2는 도망 중에 죽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무리 중 하나가 8번의 아이, 지용이었다. 지용이 왼팔을 잃은 것은 도망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는 그들을 잡기 위한 덫에 걸렸고, 그 곳에서 죽어가던 와중 강에 의해 발견되었던 것이다.     

 

 반 년이 지나자 지용은 의수에 완벽히 적응했다.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고, 조그만 물건을 잡고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들에게 적응하기까지는 수 년이 걸렸다. 나는 아이가 여전히 자신과 같은 성질을 가지지 않은 사람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점검을 하기 위해서 의수를 떼어낼 때마다 잘려 나간 자신의 팔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지용에게로, 떠밀려 오는 기억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실제로 7번까지의 다른 아이들만큼 강의 말을 믿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강에 대해서는 자신을 구해 준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한편 아이가 온 뒤로 거의 하루 종일 온 시간을 자신의 공간에 틀어박혀 지내다시피 하게 된 강은 아이의 피 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성분들에 대해서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실핏줄이 터져 붉은 눈으로 아이를 향한, 혹은 그 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감추지 않았다. 그것은 가끔 내게 추악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의 마른 팔에 주삿바늘 자국이 하나씩 늘어 갈수록 점점 더 그 생각은 불어났다.

 

 아이는 이곳에서 모든 계절을 보냈다. 가끔은 내가 가져다 준 책을 읽기도 하고, 나와 함께 건물 뒤의 작은 정원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이곳에서 지용에게 허락되어 있는 오락은 책과 산책 뿐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지용이 나와 함께 산책을 나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지용에게 함께 나가 볼 것을 제안했지만, 지용이 결정을 내린 것은 딱 일 년 하고도 반이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내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햇빛 아래로 나선 아이는 그제서야 조그맣게 웃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순진하고, 우울하고, 어린 두 눈동자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말 없는 감정에 젖었다. 그 감정을 죄책감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나는 순진함이 나의 죄를 얼마나 더 무겁게 만드는지를, 아이의 눈을 볼 때 마다 다시 실감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 수 있게 된 것이었는데, 지용은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항상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여 많은 것을 내게 물었고, 끊임없이 내 손바닥과 팔 위에 속삭였다. 마치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줄곧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거르지 못한 숨가쁜 말들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나는 기꺼이 지용의 말을 들어 주었고 가능한 한 모든 것에 대답을 해 주었다. 그 모든 순간들을 거치는 동안 지용은 몸으로 직접 맞는 계절을 사랑하게 되었다. 꽃이 지면 봄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정원에 수만 송이의 꽃이 물들면 내 소매를 끌어당겨 밖으로 나갈 것을 재촉했다. 나갈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는 공간은 작은 정원뿐이었지만 그 곳에서 아이는 언제나 기쁘게 온 계절을 반겼다. 

 

 정원의 꽃길 사이로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모습을 등 뒤에서 바라볼 때면, 돋아난 하얀 날개가 정말 아이를 천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 때의 나이가 열 여덟 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용의 나이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발육 정도나 날개의 크기를 보고 짐작을 할 뿐이었다. 봄에 물든 뺨을 상기시킨 채로 소리없이 웃는 얼굴은 아름다웠다. 물이 잔뜩 올라서, 건드리면 즙을 톡 터트리는 여름 과실 같았다.

 

 이곳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나요?

 

 지용이 나에게 했던 물음 중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아이의 손가락이 손바닥 위를 한참 간질거리고 나서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있었지.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아이는 내 팔을 끌어가 또 다시 뭔가를 적어내려갔다.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요?

 

 지금은 없어. 그렇게 대답하면서, 나는 지용이 이 곳에서 지내고 있지만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자신이 8번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1에서 7번까지의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 또한 몰랐다. 그들이 결국 어디로 가게 되었는지 몰랐다. 그것을 모르는 채로 꽃을 꺾고, 눈을 맞고, 낙엽을 주웠다. 소매를 걷고 내 손바닥 위에 글씨를 적는 데 집중을 하는 마른 팔 위에는 주삿바늘 자국이 너무 많았다. 지워지지 않는 거뭇거뭇한 흉터로 남은 자국들이다. 어디로요? 어디로 갔는데요? 아이가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 하지 못했다. 

 

 나는 외로웠어요.

 …….

 그래도 아직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기뻐요.

 …….

 아저씨.

 

 그들은 남아 있을까. 그 말이 나와 아이 모두에게 가혹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지용이 웃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두려워지면 두려워질수록,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저씨는 제가 제 가족들을 다시 만날 때 까지

 

 여기까지 적은 지용은 잠시 동안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고 다음에 올 단어를 고르는 것처럼 눈을 굴렸다. 

 

 계속 나랑 같이 있어 줄 건가요?

 

 고민 끝에 움직인 손가락이 한 물음은 그와 같았다. 나는 투명한 아이의 눈이 나를 향해 깜박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지용은 예쁜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 위로 고개를 기댔다. 나는 익숙한 무게감을 느끼며 떨리는 손을 펼쳐 그 안에 들어있던 꽃반지를 보여주었다. 조그맣고 하얀 풀꽃의 줄기를 엮은 보잘것없는 선물이었지만 그것을 본 아이는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고, 곧바로 자신의 손에 가져가 끼웠다. 고맙습니다. 아이는 꽃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으로 그 다섯 자를 적었다. 그리고 자신의 팔을 내 목에 감은 다음 나를 가득 껴안았다. 온 몸으로 전해지는 따뜻함. 데일 정도로 뜨거운 느낌이었다. 눈처럼 하얀 날개가 나를 감싸고, 나는 두 팔을 들어올려 안겨 오는 마른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강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사랑받기를 원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기꺼이 무너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뛰고 있는 맞닿은 심장은 자신에 대한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사랑을 원하면 원할수록 나는 고통스러워졌다. 나는 여전히 나를 짓누르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강은 지용의 피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건 대체로 A객체나 B객체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연구였지만, 강은 이전의 연구들에서보다 지금 훨씬 더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혈액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것들을 끊임없이 노트 위에 휘갈겨 적는 것이 그가 빠져 사는 일이었다. 강은 이종 연구에 관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과학계의 저명한 인사였다. 몇 년 전 강이 처음으로 발표한 파충류과 이종의, 그의 분류 체계로 하자면 B2객체에 대한, 연구 보고서가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그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강은 정부로부터 새로운 종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해 달라는 격려와 지원을 받았다. 나는 그 지원의 일환으로 요청되어, 정부에서 강에게 보내진 조수 중 하나였다. 그 때 발표의 대상으로 강이 연구한 피가 바로 1번의 피였다. 1번은 내가 이곳에 들어온 날 죽었다. 내가 한 첫 번째 일은 손수 1번의 사체를 화장해 장례를 치러 주는 강을 바로 옆에서 돕는 것이었다.

 그들의 습성, 특징, 얼마나 인간과 비슷한지,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 동시에 두려워하거나 징그럽다고 여기기도 했다. 처음에 이종은 사람들에게 신기하면서도 두려운 존재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이종에 대한 의견은 수백 가지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들에게는 인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종은 동물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람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 이종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들은 자신의 집 앞에 이종이 걸어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이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이종에 대한 무차별적인 가혹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종을 애완동물이나 서커스용 광대로서 길들이기도 했다. 물론 이종을 옹호하는 입장도 있었다. 그들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이종을 숭배하거나, 이종은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강의 발표 후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강은 그 어떤 입장에도 기대지 않은 채, 다만 그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 이종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그의 입장은 그것이었다. 그 문장은 강이 새로운 발표를 할 때마다 하지 않은 적이 없는 말이었다. 2번, 3번, 4번, 그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강의 명성은 더 높아졌지만 강은 그 죽음들에 대해서 깊은 슬픔을 표했고 꼭 장례를 치러 주었다. 강은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그들을 존경해.

 

 실험용 쥐. 실험용 토끼. 나는 숫자로 이름 붙여지는 그들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8번. 지용의 맑은 미소, 아름다운 날개, 그 아이가 조심스럽게 내 손바닥 위에 전하는 단어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 갈비뼈를 뻐근하게 누르는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그 아이가 쥐나 토끼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C객체에 대한 분석을 마무리한 요즘 강은 조금 다른 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철저한 비밀로 이루어지는 작업들이었다. 바로 그 새로운 연구가 자신의 생각만큼 잘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인지, 강은 가끔 심한 히스테리를 부렸다. 그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나를 비롯한 몇 안 되는 강의 조수들이었다. 나는 그가 가져와 달라고 하는 것을 가져다 주거나, 체크해 달라고 하는 것을 체크했다. 그 연구는 아주 오랜 기간동안 신중하게 이루어졌다. 강은 새 연구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가 모두 찢어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가 또 찢는 것을 몇 번 씩이나 반복했다. 연구 끝에 그가 얻어낸 것은 기묘한 색을 띠고 있는 약간의 액체였다. 붉은 기가 도는 검은색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 액체는 지용이 이 곳에 온지 5년만에 얻어낸 성과였다. 강은 뛸 듯이 기뻐하며 그것을 내 얼굴 앞에 들이대고, 이게 열쇠야. 열쇠. 그렇게 말했다. 열쇠. 그는 끝내 그 열쇠라고 부른 물질에 대해 아무런 보고서도 쓰지 않았다. 다만 그가 휘갈겨 적었던 수많은 노트들이 모든 과정을 담은 채로 연구실 구석에 내팽개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조수 하나가 죽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강을 돕는 일을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시체를 발견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아니, 사실은 두 번째 사람이었다. 첫 번째는 아마도 그와 함께 연구실에 있었던 강이었을 것이다. 연구실의 문을 연 나는 온통 깨지고 박살이 나 있는 난리통 가운데에 주저앉아,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강과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쓰러져 있는 조수를 발견했다. 시체 가까이에는 빈 주사기가 굴러가고 있었다. 그의 등 부분은 마치 무엇인가가 셔츠를 뚫고 나오려고 했던 것처럼 엉망으로 찢어발겨져 있었다. 정신없이 일을 수습하고 나서 시체를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때, 나는 그 찢어진 셔츠 아래 등 부분에 남아 있는 두 개의 커다란 흉터를 발견했다. 두 개 모두 반듯한 일자 모양이었다. 마치 날개뼈를 뚫고, 몸 속에서 무언가가 살을 찢고 튀어올라온 것처럼 흉하게 남은 흉터였다. 그것은 지용의 날개가 돋아나온 등을 떠오르게 했다. 강은 조수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겨우 치워 놓은 연구실을 다시 박살냈고 어느 때보다 심한 히스테리를 부렸다.

 

 장례를 치른 지 일 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그 날 아침에 강은 지용에게 직접 찾아갔다. 보통은 조수에게 시키는 일이었다. 그는 조용히 웃으며 지용의 조그만 얼굴을 쓰다듬다가, 소매를 걷어 주삿바늘을 꽂았다. 좀 더 많은 샘플이 필요해. 척수, 골수, 뇌 조각. 지용의 방을 나오면서 강은 핏발이 선 눈으로 그렇게 속삭였다. 나는 지용의 방문 앞에 서서 그가 뛰는 것처럼 연구실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일곱 명의 아이들을 내몰았던 곳으로 8번 또한 함께 보내고 말 것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지용아.

 

 새벽이었다. 나는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정원으로 나왔다. 꽃이 지고 잎이 말라붙는 계절이었다. 많은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낸, 손을 맞잡은 손가락들이 여전히 마르고 희었다. 처음 보았을 때 몸 이곳 저곳에 나 있었던 생채기들은 이제 모두 나았다. 몸이 자랄 때마다 새로 만들어 준 의수가 시계추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아이의 이름을 불렀을 때 한 쌍의 잿빛 눈동자가 내게로 와 꽂혔다. 나는 그것을 마주했다. 우울하고, 맑고, 순수한 눈동자, 그 어린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나는 나를 확실히 했다. 

 

 여기를 떠나.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의아한 표정이 얼굴로 따라붙었다. 아이는 쥐고 있던 내 손을 다소 급하게 끌어당겨 손가락으로 글씨를 휘갈겨 썼다.

 

 어딜요?

 정원 바깥으로 돌아 나가면 작은 뒷문이 있어. 나무 덤불을 헤쳐 보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산을 넘어가면 쉬지 말고 계속 걸어. 이종 보호소에는 가지 마. 찾기가 쉬울 테니까. 어디든지 안전한 곳으로 가. 그리고 그 손수건의 주인을 찾아.

 전 안 갈 거예요.

 지금 안 가면 평생 못 가.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니까,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손가락으로 말을 하려는 아이의 두 눈에 그렁그렁 물이 맺혔다. 그 표정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얼굴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의문, 원망, 슬픔, 모든 것들이 어지럽게 허공을 쏘다녔다. 눈동자에 맺힌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기어코 너를 울리고 말았다. 눈물을 소매로 슥 훔친 지용이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눈물을 닦은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혀 내 손목으로 떨어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아이의 피부처럼 데인 듯 뜨거운 눈물이었다.

 

 계속 나랑 같이 있어 준다고 했잖아요.

 

 지용은 잠시 동안 고개를 숙이고 글씨를 쓴 손바닥 위에 고개를 묻은 채 흐느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과 축축한 눈물과 간질거리며 닿아 오는 다갈색 머리카락, 마치 조그만 새끼 짐승이 코를 부비는 것처럼 간절했다. 

 

 따라갈게.

 …….

 네가 가면 나도 나갈 거야. 내가 너를 찾아가지 못하면 그 때는.

 

 수많은 물음을 담은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그 물음들에 답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네가 나를 찾아 줘.

 

 나는 지용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그 속에 항상 들어 있는 하얀 손수건을 꺼냈다. 권지윤이라는 이름이 박힌 그 손수건이었다. 손수건을 지용의 손 안에 집어넣고 억지로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어서 가서 그 사람을 찾아. 등을 떠미는 손에 아이가 힘없이 밀려갔다. 발을 떼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는 눈이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왜 가야 하는 거예요. 가기 싫어요. 보내지 말아 주세요. 목소리가 없는 아이가 그 말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손에 억지로 쥔 손수건을 바지 주머니 속에 도로 집어넣은 지용의 등을 다시 떠밀었다. 가.

 

 안녕.

 

 좁은 내 발 밑, 기억의 섬에 부딪혀 부서진 낱말카드들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파도에 밀려 온 낱말들이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내게 처음으로 띄워 올렸던 카드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카드들이 자리를 잡았다. 안, 녕, 메아리와 같이 멀리서 오는 목소리, 들리지만 어디에서 누가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귀를 채웠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인사다.

 

 아니다. 그것이 아니었다. 들린다고 생각했던 것은 목소리가 아닌, 목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신음소리였다. 나는 그 곳에서 뒤돌아 섰다. 나에게서 멀리 있는 소리들, 바라보지 않아도 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아니기를 바랐다.

 울음이 뚝뚝 떨어지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정원을 가로질러 가는 발 밑에 풀꽃의 마른 잔해가 밟혔다. 발소리도 없는 길에서 흰 눈 같은 날개가 조용히 바람에 흔들렸다. 

 

 안녕. 바람 소리 같은 그 신음은 점점 멀어지다가 이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 전국이 대체로 흐리고 밤늦게 비가 오는 곳이 있겠습니다. 중부지방은 모레 아침부터, 남부지방은 모레 오전부터 차차 비가 갤 것으로 예상됩니다. 바다의 물결은 전 해상에서……

 

 수 년이 지났다. 또 다시 봄이었다. 살아 있는 것들이 팔을 뻗고 아우성치는 계절. 

 

 지난밤 켜 두고 잠들어 버린 텔레비전에서 날씨를 알리는 기상 캐스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손을 더듬어 리모컨을 찾아낸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연구소에서 나온 지 6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조그만 분교의 선생님이었다. 이름을 최승현에서 최인조로 바꾼 것은 그 일을 시작할 때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도망자 신분이었던 나는 원래의 이름으로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 동료였던 박을 만나 부탁한 끝에 내 손에 들어온 몇 장의 종이에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만들어져 있었다. 들어 있는 사진은 최승현인 내가 맞았지만 이름이나 생년 월일 등은 모두 뒤바뀌어 있었다. 이름 최인조. 직업 선생님. 연구원, 혹은 누군가의 조수로 일했던 기록은 지워져 있었다.

 내가 연구소에서 강의 노트들을 들고 도망쳐 나온 것은 그가 8번을 잃은 것에 대한 분노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지용을 보냈던 정원의 뒷문으로 빠져나온 나는 산을 넘어 내려오자마자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사람, 박을 찾았다. 그를 찾은 뒤에는, 들고 나온 노트들에 강의 필체로 적혀 있는 내용과 함께 모든 사실들을 고발했다. 강이 무슨 실험을 하려고 했는지, 그가 결국 추구하고 바랐던 것은 무엇인지, 그런 사실들이 낱낱이 세상에 밝혀졌다. 그 문제들이 한동안 인터넷과 텔레비전에서 이슈가 된지 한달 후, 한 경찰이 이미 싸늘하게 식은 강의 시체를 찾았다. 그의 시체는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셔츠의 등 부분이 마구잡이로 찢어져 있었고, 등에는 일 자 모양으로 난 두 개의 상처가 흉하게 벌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 조수의 시체에 있던 상처와 같은 모양으로. 강의 옆에 떨어져 있던 주사기를 조사한 사람들은 강이 자살을 시도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그 방법이 상당히 미스터리하다고 생각했을 뿐 언론에서는 더 이상 강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두 시체의 날개뼈 부근에 난 십일자 모양의 상처, 그리고 오버랩되는 아이의 하얀 날개. 강이 말했던 열쇠가 바로 그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라는 일은 그런대로 나의 적성에 맞았다. 겨우 허리 높이만한, 혹은 그만큼도 안 되는 조그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게 했다. 전교의 학생 수가 채 열 명도 넘지 않는 학교였지만 나는 나의 생활에 만족했다. 이미 내 어깨 위에 쌓여 있는 죄책감들을 더 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종들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여러 가지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종을 혐오하는 사람, 인권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이종은 우리와 단지 조금 다를 뿐 같은 인간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무리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였다. 실제로 여론은 후자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종들을 위한 공간이 생기고, 그들을 위한 학교가 생겼다. 이종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거나 괴롭히는 일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들을 애완동물로 기르고 서커스에서 보이기 위해 사육하는 일 등도 모두 불법이 되었다. 강이 죽고 난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일어난 일들이었다. 

 

 내일 수업을 할 자료를 찾아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문득 베란다 바깥 우체통에 뭔가가 비죽 삐져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벌써 우체부가 다녀간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베란다를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빨간 우체통을 열었을 때,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조그만 쪽지 하나였다. 누가 보낸 것일까. 이 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그 때 나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접혀진 쪽지의 겉면에는 '최인조에게' 가 아닌 '최승현에게' 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손이 조그맣게 떨리기 시작했다. 보낸 사람의 이름과 주소가 없는 쪽지를 펼치자 그 속에 들어 있던 하얀 깃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드럽고 익숙한 깃털이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과 미소와 눈동자가 눈 앞을 스쳤다. 그 깃털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자 아래에 가려져 있던 글씨들이 드러났다.

 

 찾아왔어요.

 

 무언가 뿌연 것이 눈에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네가.

 

 나는 언젠가 너에게 꽃반지를 만들어 주었던 그 때로 다시 되돌아간다. 너는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쪽지 속 그 깃털을 소중하게 손 안에 쥐었다. 왔구나. 

 

 안녕. 파도가 잔잔해졌다. 인사를 하는 바람이 불었다. 고개를 넘고 언덕을 넘어 저 멀리에서부터, 나에게 마른 풀꽃의 냄새를 싣고 온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냄새가 시작된 곳 어디엔가 네가 서 있을 것임을, 나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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