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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아닌데 또 네 생각이 났다. 이젠 잊을 때도 된 거 아닌가. 사실 그럴만한, 그럴듯한 추억도 없는 게. 그래서 떠올리는 것도 주책없는 실수인 게. 한번, 두 번, 그렇게 열댓번, 수십 번, 수백 번. 아 수백 번은 오바여도- 뻔히 앞으로 계속될 일이라 그렇게 쳐도 무방하다 못해 당연할 지경이다. 몇 번째인지 세고 싶진 않다. 셀 가치도, 의욕도, 의미도 한참 전에 잃어버렸기 때문인데, 실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도 털어 놓을 무게도 아니지만. 그것보단 난 널 떠올리는 게 더 힘든 ‘일상’이 되었다는 게 말 한마디 내뱉는 것도, 이렇게 한 글자 쓰는 것도 마음이 한번 두 번 열댓별 패이고 가슴도 열한번두번 아흔 번 망가져-하나씩 누구에게도, 가히 너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런 게 쌓인다.

 

 이건 내 19살,24살,29살 지금의 이야기다.

 

 그 학창시절의 권지용은 어땠냐면

 어릴 때부터 낯을 가려왔던 탓인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사람도 아니었고, 친구도 한명한명 깊게 단단히 친해지는 스타일이라 차곡차곡 쌓여왔지 그리 마당발도 아니었다. 친구들에겐 잘생겼다 귀엽다 …….가끔은 예쁘다 까지도 들어봤지만 결정적으로 이성에게 인기가 정말 없는 탓에 친구들처럼 연애, 커플 그런 자신감은 없었던 시절이었고. 내 사람들 사이에선 귀여움 받고 머리도 좀 있어서 공부도 하고 똘끼도 장난 아니라 날 모르는 애들은 깜짝깜짝 놀랄 만큼 놀기도 하고 그럭저럭-

 아아, 그리고 작가가 꿈이라 일기를 썼었다.

 고등학교 2학년쯤인가, 미리 살짝 말하면 앞으로 계속 나올 그 애를 만났는데. 어차피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고등학교 2학년쯤-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우리반이였는데 한 학기 넘도록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 말을 안 하다가. 그때 시작이 됐다.

 처음 만난계기는 다른 게 아니라 새벽에 한참 숙제를 하다가 문득 너무 외롭고 심심해서 반톡에 '다 자니?'하고 물으니까

 최승현한테 바로 답장이 왔었다. 아, 나 쟤 어색한데. 씹을까하다가 왠지 얘길 이어가고 싶어서 무슨 여자애처럼 꼬박꼬박 아 그랬어? 그랬구나, 다 받아주다보니

 한참 반톡인것도, 최승현이랑 지금 처음으로 얘길 길게 하는줄도 잊고 나도 최승현도 평소에 말도 많지 않은 사람임에도 한참 같이 얘기하다가 최승현이,

   ‘야 애들 아침에 깨서 톡알림 때문에 못 잤다고 화낼라ㅋㅋ' 아, 그러게.그걸 생각 못하고 떠들었나 그만 잘까 잘자. 보내려는데 최승현한테 갠톡이 왔다. 어, 나는 당연히 놀라서

 

'어ㅋㅋㅋ 갠톡을 할줄은 몰랐네'

 

'왜 나 잠 안온단말야 너 잘거임?'

 

'ㄴㄴ나도 잠 안와 너 나랑 갠톡하는거 처음인거 알아?'

 

'어..그러네..벌써 2학긴데 왜 너랑 아무 말도 안했지 진작 할걸‘

 

‘ㅋㅋ 그럴걸. 아, 하던 얘기마저 할까? ‘

 

 하고 둘이 계속 쿵짝쿵짝 꼭 예전부터 알았어야했던 사람들처럼 대화를 내내 이어갔다   매일 보는 사람이라 그런가. 매일 얘기하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지금 생각하면 좀 더 미리 서로를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흘러가는 이야기는 타본 적도 없지만 꼭 썸 타는 이야기 같이 흘러갔다.

 

'이상하게 들릴 진 모르겠지만'

 

'응'

 

'난 왠지 널 보면 모찌가 생각나' 

 

'모찌?ㅋㅋ 찹쌀떡?'

 

'ㅇㅇ 모찌모찌ㅋㅋ'

 

'아 뭔가 웃긴데ㅋㅋㅋ'

 

'왜 웃겨 이게ㅋㅋㅋ'

 

 그렇게 서로 드립도 치고, 딱딱하지만 편한 구석이 있는 최승현 말투에 혼자 소녀처럼 나도 모르게 속으로 까르륵 대가며 핸드폰 화면을 껐다 켰다- 바쁘게 굴었다. 내 모습을 보지도 못할 상대방이지만 새초롬하게 턱도 괴고 찹쌀떡 같이 생긴 게 어떤 거지 볼도 괜히 쿡쿡 찌르고 쭉쭉 늘려보고.. 새벽이라 좀 돌은 것 같다

 

'아 너 내 전화번호 있나?'

 

'아니 없는데.'

 

'010-1891-0174'

'저장하시오'

 

'저장하였다'

'너는 내 번호 있니?'

 

'아뇨'

 

'010-6088-9186'

'네 전화번호부의 먼지가 되겠지'

'먼지에 보태 쓰렴.'

 

'ㅋㅋㅋㅋㅋ아니야 권지용 너랑 톡하는 거 되게 편하다'

 

 꼭 생일빵 맞은 거 같이 이상했다. 편하게 해주려고도 했지만 처음 얘기하는데 무슨-싶기도 했고. 갑자기 징그럽게 왜 그러지 씨발하면서도 그런가 흐흥-싶기도 하고

 

'어우 지용씨 나 너무 졸려 새벽 2시 42분이야 막 눈이 감겨요..'

 

'아..그럼 자요'

 

'응 잘자 내일..봐?'

 

'어 내일..봐!'

 

 43분에 자러간다고 43분 될 때까지 빨리 되라 주문까지 걸었는데 시간이 더럽게 안 갔다. 그러곤 딱 ‘어 43분ㅃ’ 하고 자러 갔는데 보내고 나니 좀 휴가 가기 전에 친구한테 강아지를 맡기고 나온 뒤의 기분이랄까. 누구의 의지도 아닌 짧고 긴 헤어짐? 아 뭐라는 거야.

 나도 모르게 자고 일어났다. 손으로 대충 알람을 끄고 시계 보려는데 화면에 저 톡 화면이 그대로 있는데 대체 내가 꿈을 꿨나. 무슨 둘이 말하는 게 꿀에 절어있는게 정말 징그럽고 신기해서 한참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멍했다.

 그 날 아침엔 어쩐지 설레는 꿈꾸는 마음으로 학교를 갔다. 가방엔 어제 미처 다 하지 못한 숙제가 그득그득 내 쉬는 시간 잡아먹으려고 담겨있었지만

 

‘아 숙제 진짜 어떡하지ㅋㅋ’

 

‘헐 너 여태 숙제 못 하고 나랑 톡 한거야?’

 

‘어..그렇지 한번에 두 가지일 못해서

내일 학교 가서 덜 자고 하면 돼’

 

‘아 뭐야 괜히 미안해지잖아

내 탓 같음’

 

‘아 그럼 니 탓 하는 걸로’

 

‘어?ㅋㅋㅋㅋㅋ’

 

 아 뭐 실은 상관없다. 그깟 숙제 안 해서 뭐- 좋으면 됐지.

 평소엔 쌩쌩 지나가는 사이였는데 이제 인사는 또 했다. 무슨 기대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기대 이하였다. 인사를 하는데 너무 작게 인사해서 두 번-무슨 순정만화 주인공이야 권지용?

 

 “...안녕 최승현..?”

 “어, 안녕ㅋㅋ”

 

 목소린 하나도 징그럽지 않았다. 직접 들으니 엄청 신기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갔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몇 번씩 눈이 마주쳤다. 웃기도 했고. 어느 쪽이 먼저 피하기도 했다. 톡을 하면서는 둘의 주제가 생겼고, 둘의 비밀과 밤이 생겼다.

 밤이 깊어질 때 면 갠톡으로 자리를 옮겨서 오늘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새벽 먹짤까지, 그러다가 서로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다 나오고 졸림에 홀려 얼떨떨한 말이 오고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딱 잠들고 다시 아침엔 일어나 다시 죽 훑어보고 ‘으으악 미쳤다..’를 속으로 외치며 일어나 교복을 입었다. 그 이튿날은 반톡에서 뒷담으로 시작해서 오늘 있었던 일,한달전에 있었던 일, 그리고 또 서로를 재워주고 깨워주고. 배고프다 그럼 먹짤로 배 더 비워주고. 이상형 얘기도하고 연애경험...까지

 

 그러다가는 우연히 앞뒤자리로 앉은 날이 있었다. 모두 나가놀고 있는 점심시간에 어떻게 교실에 남아서- 나는 책상에 앉고 최승현은 서서 팔을 책상에 올려놓고

 

 "아 권지용 있잖아,"

 

 오늘도 듣는 사람 기분 좋은 목소리.

 

 "그-"

 "최승현 가만 보니 너 좀 잘생긴 것 같아."

 

 뱉고 보니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는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

 최승현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잠깐 웃다가

 

 "갑자기 무슨, 난 네 얼굴이 더 좋은데"

 "..대체 그게 동정이야 위로야 갠취야 위선이야"

 

 최승현이 막 소리 내서 크게 웃었다.

 

 "그게 뭐야 푸흡"

 "...진짠데"

 

 나도 모르게 미간을 또 잔뜩 찌푸렸는지 순간 코끝이 찡해왔다

 

 "음 이것부터 말해주자면, 그중하나야"

 "동정. 위로!"

 "갠취."

 "아?"

 "친척 분들이 다 전형적인 미남미녀 그래서 내 얼굴이 딱히 잘생긴 것도 모르겠고."

 "오 그럼 너도 엄청 더 잘생겨지겠네."

 "흐, 뭐 그런가.. 사람 얼굴이 매력 있고 좀.. 홀린다고 해야 되나 그래야지 이렇게 고지식하고 고집 있게 생기면 재미가 없어요―"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 최승현의 미래를 그리게 됐다. 얼마나 잘생겼을까 그 옆의 사람은 얼마나 매력있길래 최승 현을 홀릴까. 아 나도 그럼 관리 좀 해야 되는데 누나한테 가서 팩이나 달라고 해야지

 

 

 

 

 

 

 원랜 우리 반 남자가 짝수로 주번 숫자가 똑똑 떨어졌는데 한명이 전학 가서 순서가 일그러졌다.

 출석번호 맨앞번인 대성이가 일주일 아파서 못 나와서 그 다음 출석번호인 내가 대성이 대신 했을 때, 최승현이랑 같이 하게 됐었다. 주번이란 게 그다지 두 사람의 팀워크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중요하지도 않은 팀워크가 돋보일 만큼 그래 보였다는 게 함정.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업이 끝나면 졸고 있었던, 공부를 하고 있었던, 제일 먼저 달려가 지우개를 하나씩 잡고 칠판을 빠르게 지워댔다. 쓰레기통을 비울 때면 항상 복도에서 가위바위보하며 날라 다니는 바람에 혼나고 일 잘한다고 초콜릿 받고 상점 받으면 둘이 좋아서 흐흐 웃으며 날아다니고, 담임이 일 시킬 때면 둘이 남아서 점심을 먹고, 방향도 다르면서 서로 기다렸다가 인사하고 그랬다.

 

 따로 지하철을 타도 만났다. 한두 정거장 차이 목적지와 집 근처에 내렸다. 버스를 타면 졸고 있는 게 보여서 깨워서 같이 가고..뭐..기억안난다 하도 봐서 나중엔 아무것도 안했다.

 

 

 

 

 

 그 후로 딱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18살에 연애도 못해보면 어떡해!’하는 친구의 권유에 못 이겨 얼떨결에 호감에서 푸시로 짝사랑도 했는데. ‘못생겼다’면서 차이고 좀 괜찮다싶던 애도 완전 또라이로 밝혀졌고 상처란 상처는 다 받은 것 같다. 그러면서 친구도 그렇게 떠밀어서 미안하다고  나한테 많이 미안해했다. 그래서 나도 다시 철벽을 친 것같다. 이후로 없는 걸로 오해 만들기는 딱 싫었다. 사람이 감정에 솔직해야지.

 또 몇 개월이 일 없이 흘러갔다.

 솔직하지 못했던 일도 지나서 대성이랑 얘기하다가 최승현이랑 있었던 일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데 관심있는거라며 최승현이 그럴 리가 없다면서... 확신이 서는 말이라 감정의 브레이크도 안들만큼 미친 듯이 너가 좋아지더라. 실은 그 시절엔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지 싶다 그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사랑의 마음이란 게.

 

 

 그러고 보니 내가 그동안 정말 최승현을 좋아했구나. 진짜 웃긴 일이긴 한데, 그때 내가 최승현을 진짜 좋아했다는게 진심이었다. 그렇게 돌아보니 와 이건 미친거구나- 그러구나- 이게 진짜 사랑이었나 하는 풋생각에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보는 친구들은 어땠을려나 섬뜩하다.

 최승현이랑 있으면 재밌었다. 날 그렇게 싫어하진 않은 것 같다. 싫어하는 것만 아니면 앞으로 좋아해줄 수 있겠지. 내가 가만히 앉은 풀밭위로 나비가 날았다. 나비가 날고 구름이 있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폭풍처럼 확신이 들고 파도처럼 내 확신에 휩쓸렸다. 다시 생각해도 그리 질법한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음에 스스로를 위로하겠다.

 

 12월의 어느 날 오랜만에 최승현과 둘이 남은 날이었다. 그때 또 눈이 내렸다. 안 그래도 우리 승현이 눈 너무 예쁜데. 아직도 그때 마주치던 눈이 또렷한데

 한참 얘기하다가 미소 지은 최승현의 얼굴이 내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희미한 향수인지 샴푸인지 모를 좋은 향기가 났다.

 아무렇지 않게 짧게 입을 맞추고 걔의 반응을 확인하니 아무랬다. 정말 ..내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는, 웃는데 놀라고 황당한데 어이가 없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그때 나는 우습게도 먼저 정식으로 고백을 했다.

 그 표정은 아직도 생각난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내일보자고 그랬다

 그리고 당연히 그 다음날 인사 따위 안했다 인사할 줄 알았는데. 전처럼 지내길 바라는 바램은 너무 서툴렀나. 내일보자고 진짜 내일은 잘 볼 수 있는 거라 믿었다니.

 

 내가 먼저 말을 걸고 톡을 걸어도 돌아오는 건 민망함뿐. 그 후의 내 다른 용기에도 그랬다

 휴대폰을 집었다 놨다 다시 들었다놨다했다. 이대로 끝내긴 싫은데… 놓기싫은데… 생각하다 생각하다

 그렇게 연애 아닌 나의 연애는 끝이 났다. 다시 실수인척 아무렇지 않게 보내기엔 실수가 너무 깊고 시간이 많이 늦어버렸다. 이게 뭐야 이게.

 

 물었다. 오늘은 대성이에게, 물어왔다 어제는 승리가, 내가 왜 어떻게 그랬는지. 

 차마 크게 말하진 못했다. 남고생들은 열심히 서투르게 공감을 시도했다. 괜찮다. 네가 마음이 깔끔히 정리 됐으면 그걸로 된 거다. 걔가 살면서 얼마나 그런 고백을 들어보겠냐. 너 니 말대로 이 상황에 이긴 거랑 진게 있다면 네가 이긴 거다. 네가 끝엔 보고 싶을 거다. 됐다 그럼. 울지 말고 그런 새끼 별거 아니다 나는 네가 걔 때문에 안 울었으면 좋겠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 버리고 다녀와라.

 불행히도 순정만화 권지용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싫다 말해도 욕 할 수 없는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취향이 아닌 거잖아. 존중해줘야지. 전에 톡에서 질리게 강조한 거처럼 내 인생철학은 리스펙트니까. 야 근데 최승현, 강대성이 너 보고 병신이래 니가 뭐 그리 잘 났냐고 정신 차리래....

 사실 근데 마음 그거 하나도 안 깔끔하다 졸라 이런저런 생각의 실 뭉텅이 속에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더러움이다. 왜냐하면 하나도 밉지도 않고 싫지도 않고 둘 중 아무 악역도 없었다. 내가 좋아한 최승현 의견이고 취향이고. 굳이 더 나쁜 쪽을 정하면 내가 해야 되지 않나 아- 핸드폰 바꿀 것 같아서 카스에 번호 남겨달라니까 지도 남겨놓은 이런건 미워서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번호 같은 거 안 지워 놓으면 사라질 거잖아 너. 

 

 뭔가가 강하게 잘못되어버렸다, 고민했다는데 그 찰나에 다 꼬인 것 같다. 

 

 이 실연의 과정 속에서도 이상하게 눈물은 하나도 안 나더라. 어이 거기 누나, 내가 무슨 이별을 했어? 나 불쌍해보여? ..아, 그게 그렇게 많이 티나?

 

 

 

 

 그런 의미와 이런 인연을 잊는다는건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까 시간이 약이라면 얼마만큼이 약일까

 그때의 19살이 24살로 바랠 때 까지 될 때까지 많은 시간만큼, 생각이 있었다. 할때마다 뭐 같지만 또 목말라 하게 되는게 사랑이라 하던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 비슷하지만 달랐다. 떠올릴 때 마다 뭐 같지만 또 떠올렸다.

 

 다 옮겨적을 수는 없지만 징그럽게 많이도 생각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안 그랬지. 알았다면 그때 차라리 더 울어둘걸, 이게 운명의 암시인지 내 찌질함의 정점인진 모르겠지만. 이 일을 옆에서 계속 지켜본 대성이랑 승리는 항상 탄식하며 ‘아 네가 그때 진짜 최승현 좋아했구나.’하며 그만 좀 잊으라는 조언밖에 못한다. 쟤네한테 나는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그래서 여태 애써 열심히 둘에게도 감정을 숨겨왔으매 답답하고 힘드니 이렇게 일기라도 대충 쓰는 게 그나마 다행이구나 싶다.

 나도 최승현도 졸업 후에 해외로 유학을 갔다. ‘미안해 내일보자’ 이 말로 나는 수천,수만마일을 돌아왔는데. 아니 도망친 건가. 참 떠나보낸 것 도 아닌데 또 떠났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나도 떠나오고 너도 떠나고...이거 무슨 몰래 카메라 코미디인가 싶을 정도로.

 

 처음 와서 제일 많이한 생각은, 여태 배운 영어가 한국 영어인 관계로 아 어떻게 하면 잘하지. 하면서 또 영어 섹시하게 잘하던 구 짝사랑들을 생각하니까 미치겠다. 그 중 하나가 최승현이긴 했는데.. 교복에 패딩 잘 어울리던 자식. 아 생각하니까 끔찍히도 징그럽네.

 가장 힘든 일은, 내가 최승현이란 친구를 좋아해서 했던 것들이 단지 네가 좋아서 꼬리쳤던 요물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다. 사실 이렇게 좋아한지는 그 다음부터였는데. 대성이가 안 그래도 너랑 만나서 하고 싶던 말 다 하고 가라고 그랬는데 곰곰이 생각했더니 할말이 ‘내 인생에서 그만 사라져’여서.. 오해만은 말았으면 좋겠다. 뭘 알긴 니가 뭘 알아 나도 모르는걸, 그냥 지금 궁금한 건 거기 날씨다. 그리고 변한 건 없는지 날 웃게 했던 그 말투도 여전히 그런 식 이냐고, 난 뭐, 여전히 초밥에 미소 된장국 좋아하는데 못 먹고 있어서 힘들다고. 만나면 이태원 가서 먹어보려 그랬는데.

 

 사람이 그렇다 그렇게 너에게로 도망치던 그때는 잊고 네 얼굴만 떠오르고

 

 ‘난 네 얼굴이 더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데, 늘 너 볼 때마다 그 두 생각만 한 것 같아. 아 진짜 찹쌀떡 같아 권지용 얼굴. 나도 그런 얼굴 좋아하는데 음 그거랑 이름 좋다.’ 

 

 니 목소리만. 떠오르는 거야.

 그 목소리 듣고 일어나서 거울 보니까 너무 슬퍼보였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꼭 최승현 생각이 난다. 오늘 수업 끝나고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한없이 주룩주룩 내렸다. 소나기가 매섭게도 내려와 책으로라도 피하면서 갈까하는데 내려다본 책 제목이 참 시려, 난 사랑이 참 모자란 사람 같아서 따뜻한 눈물이 고이더니 잇달아 눈 주위에 떨어진 빗물과 섞여 한참 내러가더라. 지금 이걸 쓰는 순간에도 비가 온다. 모질고 천둥까지 치는 소나기가 내리다 또 갑자기 그쳤다. 여긴 비가 참 자주오고, 눈도 겨울엔 질리게 온다.

 미친 운명. 넌 거기 비도 잘 안 오고 눈은 더 잘 안 오지 내 생각은 내 새끼손톱만큼도 안하지!

 

 노래가 한 사람과의 기억에 국한되어 버리는 건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 중 최악이다.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어려워진 새파란 예쁜 청춘이 되어버린 반면에, 내 상황은 너를 덮을 수 있는 색이란 없고. 애꿎은 노래들은 번번이 너와 내 감정들을 불러왔다. 그냥 신곡이 나와 들었을 뿐인데 한참 가라앉아 호수 같은 감정에 소용돌이를 불러 온 달까. 이별 노래를 들으면 별것도 없던 내 이야기가 이렇게 길게 불어난다. 심지어 너무 쳑쳑하고 눅져서 다 담지도 못하는데. 노래를 들으면 내 얘기가 무슨 소설 같고 드라마 같다. 맥도날드에서 들어도 배경은 레스토랑인 듯 대입해간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시작도 안하고 헤어졌다는 거. 그래서 더 웃기고 그래 난... 그래도 사랑 노래 들어줄 네가 없고, 이젠 그것마저 넘어서 다 끝난 너랑 노래에 대입시키다 돌아오면 현실은 다 타버린 잿더미인데 말이다. 이거 인형놀이인가, 이 세상이란 영화 속 주인공은 너와 나인데 난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외로운 저 섬 하나같고 내 마음과 달리 참 더럽게도 좋은 건 최승현. 날씨, 비랑 눈.

 근데 난 눈 오면 또 니가 생각이 날거야 그럴 거야 니 생각 날거야, 더 많은 노래에 너가 있을 거야

내 많은 기억에 같이 있지도 않았던 너가 있을 거야.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도 모르게 확인도 없이 쑥 열어버려서 아차 하니, 최승현이 서있었다. 보고싶다 빌었더니 진짜 올 수도 있는 건가. 너무 반가워서 끌어안았더니 끌어올려졌다. 원체 신발을 신은 바닥이고 얘도 알고 있는지라 문도 발로 차 닫고 그대로 성큼성큼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내 얼굴을 쓰는데 꿈인걸 알았다. 눈도 끝까지 감으며 안 깨려고 발악했는데. 곧 수긍하고 일어섰다. 안돼는건 역시 안 되는 거다. 

 

‘좋아할 것 같다 행복할 것 같다’

 

 한국어의 힘은 대단하다. 나 지금 저 두 어절로 수만 가지 생각을 뱉을 수 있다. 그리고 길게 네 생각을 해도 이 글을 쓰고 있어도 결국 너한테 다다르면 곧 토 할 것 같다. 그땐 나도 보기 싫으니까 내 험한 꼴은 더 보고 싶지 않은지 그땐 네가 가줘서 고맙다.

 혹시 나중에 만나려나, 만나면 내가 인사할 수 있을까 그땐 다시 친구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아, 진짜 이건 아닌데. 다시 만난다는 생각은 수 없이 해보지만 결국 또 하나의 미니 청춘 드라마를 써 올려 갈 뿐이지 결국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만날 연결고리도 없다. 같은 동네에 살았던 것도 아니며 지금 그마저 학교에서 훨씬 멀리 이사 갔고 교집합이 생기는 친구도 드물다. 난 최승현 친구들을 싫어하고 아마 최승현도 대성이나 승리한테 그닥.. 그런데 또 그럼 어떻게 만날까 영화 시나리오를 풀고 있다. 바보지? 바보야. 그 바보에겐 스쳐 지나갈 때 머스크향이 날거임. 왜냐하면 너랑 같은 향이 나면 안 끌리지 않을까 싶어서 그럼, 너는 디올 옴므 뿌리면 됨. 왜냐면 아직 좋아하니까. ....아 너 말고 디올 옴므 향수. 그땐 내가 땀냄새가 아닌 머스크향이 나는 사람이라 널 보았을 때 기분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한 사람 보는데 기분 나쁘면 쓰나, 그러니까 제발 승현아.

 

 아 내일, 내일, 내일. 내일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끝나버린 내 첫사랑은 정말 묻고 싶은데 넌 어디 있니? 서울? 네 놀이터? 캘리포니아? 라스베이거스?

 

 요즘 스트레스 받는다고 좀 먹었더니 배에 살이 꽤 두껍게 잡힌다. 에이, 이러면 안 되는데. 거울을 봤는데 막 뾰루지도 올라와있는데- 이 동네에 신경 쓸 사람도 없는데 내가 뭘 신경 쓰는 걸까. 결론은 어제와 같았다.

왜 너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할까. 날 보지도 못하는데 볼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볼 수 있을날을 기다리면서.

드라마처럼 빠르게 쉽게 가버릴 시간은 아니다. 너 없이 허송세월을 보낼 것 같은 기분이야 그러니까 내 아파트 주소가 뭐나면 41동-... ...

 그래봤자 최승현이 지입으로 원래 이상형과 상관없이 외모가 좋으면 그 사람 성격이 뭐든 자기 이상형이 된다고. 그래 맞다 이 새끼야 근데 그거 진짜 위험하니까 그런 식으로 여자 사귀려거든 나랑 사귀는 게 낫지 않겠니?

 

 

 여자를 만나고 있을 거란 생각에 미치자 질겅질겅 손톱도 뜯어내 씹어댔다. 나 손톱 뜯는 거 가지고 참 뭐라 뭐라 과자 양념 꼈다고 뜯었다는 사람 주제에 고치라 많이도 날 씹어댔지... 진짜 안보니까 생각도 안나서 손톱 거의 다 기르고 있었는데 하루 스쳐 지난 다음에 또 뜯고 있었고. 또 생각하니까 또 씹고 있다. 눈에 안보이면 마음도 멀어진다. 그거 분명 사랑에 있어선 우위에 있던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그까짓 하루가 뭐라고, 아무리 내가 악연 만들기를 싫어한다지만 한 사람 떠난 게 뭐라고 오리던 콜라주도 내려놓고 하루도 마치지 않은 이 시간에 일기를 쓰는데?

 

 이상하게 너와의 미래를 그려 너랑 같이 마실 커피 잔의 디자인을 생각하고, 커피와 함께 먹을, 내가 매일 퇴근 후에 사가지고 들어올 디저트들을, 너는 그중에 뭘 좋아했나 곰곰이 다시 생각하고 소파는 둘이 나란히 앉기엔 좁고 나른히 눕기엔 완벽할거고, 침대는 넓적하고 시트는 하얗고, 최승현 책상은 사방이 뚫려 있는 걸로 나는 벽에 붙여놓고 컴퓨터는 맥으로 사는 게 좋겠지? 방은 돈 많이 벌어서 복층 오피스텔 살고 싶고. 앉아서 와인을 마시려면 무슨 의자가 편할까.. 나 진짜 아일랜드 테이블 좋아하는데.. 그거, 아 잠깐 미안 나 잠깐 야한 생각했다.

 그래서 때론 너무 끝을 달리는 내 생각에 내가 지치기도 한다. 꿈에서 같이 살집을 보러 다녀서 다리가 다 아프고 내가 대체 뭘 하고 있었지 깨닫는 순간 머리가 아파왔다. 어리다, 어려. 멈춰선 것도 모자라서 주저앉아 머무른다. 가지가지 한다.

 내가 왜 고백을 그렇게 해버렸나 후회는 없었는데 만약 진짜 안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가 지나면 날 금방 떠나버릴 것 같았다. 결국 그냥 그 순간에 끝나버렸지만, 어차피 끝이 났을 텐데. 내가 너무 궁금하고 이상한 점은, 나는 왜 이리 뒤늦게도 긴 여운의 그림자를 남기게 되었을까. 어떻게 지금 생판 얼굴도 못 보고 있어서 그렇게 진하게 생긴 최승현 얼굴마저 다 까먹어버릴 지경에 이르면서도 꾸준히 그리워할까. 이럴 때 는 운명인가-하는 시덥지 않은 생각도 한다. 결국 최승현이 있던, 없던 나는 걔 아니면 어떤 사랑도, 외로움도 없는 것 같다. 물론 내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들 빼고 다 모르겠고 그냥 나는 네가 보고 싶다. 그거 하나인거다.

 

 가끔은 니 생각에 지쳐 우리 이런 주제에 너무 필요 이상으로 보는 것 같지 않니 내 생각 속의 최승현.

 

 그래도 이런 감정도 조금씩 잊혀 간다. 조금 마조히스트 같지만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아픔으로라도 실컷 긁어내고 싶었다만. 사실 또 이렇게 쓸데없을 니 생각, 중2적인 일기 한 줄로 또 하루 멀어져 간다. 권지용 나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너는 나 같은 작은 남자가 좋다고 했고

너도 참 좋았었는데.

나도 참 좋았는데

우리 참 좋았었는데

대체 무엇이 날 네 앞에 끌어 앉히고 또 어떤 것이 날 멀리 보내게 했을까  어디까지가 우리의 선이었나. 앙?

 

답 없는 그대, 말없는 그대, 매정한 그대

무정한 사람, 철없는 사람

없는 사람, 없는 번호

없는 상태 메시지, 더 이상 없는 그 순간

 

 

 그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사랑 같은 미성숙된 감정이란 게. 그 브레이크 끝, 2학년말 아직도 날짜까지 기억나는 그날이후로 그렇게 혼자 또 보내버린 10년의 크리스마스동안 그 중 생각이 도저히 와인 한 병에도 나가지 않았던 건. 한국에서 보냈던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그 모양이어서였다. 안 그래도 키도 작고 그때따라 야위었던 내가 혼자 애써 사람들 슥슥 피해 걸었던 강남역의 크리스마스. 둘 다 아이러닉하게 외롭던 크리스마스 때, 난 최승 현이 진짜 정말 나랑 사귀길 지겹게 싫어하는걸 알았다.

 그때 우린 조금은 너무 어른스러웠고 또 우리 또래에 쉽게 있을 일이 아닌걸 동시에 겪은 건데 너는 내가 보기에 따라할 수 없을 만큼 성숙하고 차분했으며 아마 그런 날을 이렇게 보고 있는 나 또한 내 열여덟 살에 그리 어렸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얘기함으로서 그걸 힘들게 꺼내는 시간과, 너의 기분과 내가 그걸 잘 삭히고 혼자 성숙시키는 과정도 잃었어. 이거 잘못했어 내가.

 

 점점 생각할수록 하루 또 나이 먹어가서인지 여러 이유를 여러 가지로 깨닫게 된다. 어제는 생각났다. 난 정말 원하던 누군가를 잃어본 적이 없구나. 항상 짝사랑도 하다가 말았고, 내가 식당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사람이 몰리고 내가 점찍는 가수들마저 잘 되니 할 말이 없네. 처음에 딱 날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선을 두고 다가가질 않으니까 못 가졌더라도 그건 필요가 없다고 내가 먼저 놓은 거니까

 그래 너는 내가 원했는데 내 자존심을 잃으면서 무릎 꿇고 한 행동의 유일한 오점이었구나.

 

 문득 두 영화 제목이 바뀌어, 합쳐져 생각났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년, 그리고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정말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고 생각하니 더 우스워지는 거다.

 

 끝엔 더 이상 니가 그립지도, 보고싶지도, 아프지도 않으니까.

 

나는 너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내가 생각한 너와의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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