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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아이리스 머독의 말 대로 우리의 사랑이 단지 배울 수 있는, 그 어떤 무언가 라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고 또 사랑할 뿐입니다."

 

 매일 밤 듣는, 12시의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보슬비 내리는 오늘 밤, 참 듣기 좋게 나긋 하다. 정적이고, 기분 좋은 쓸쓸함. 묘한 모순의 느낌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추억에 잠기기 좋은 분위기가 즐거운 오늘.

 

 "아이리스 머독의 일생을 영화로 그린, [아이리스 머독] 을 얼마 전에 보게 되었는데요. 예전에 007 시리즈에서 'M' 역을 맡으셔서, 유명하신 주디 덴치께서 주연으로 나오셨던 영화였어요."

 

 아이리스 머독, 실제로 그녀의 작품 하나하나를 참 좋아한다. 영화 또한 주디 덴치가 머독역을 참 잘 소화했기에 정말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였다. 우선, 나와 머독은 공통점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녀의 진실된 마음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공통점은 머독도 나도, 사랑은 할수록 진실된 배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랑도 배움이 가능하다. 

 라디오에서 마침, 머독의 이야기로 막을 열어 감회가 새롭다. 오늘은 마치, 나의 힐링을 위한주제로 준비된 라디오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오늘은 정말 위로를 받고 싶은 날이었다.

 

 보슬보슬, 쓸쓸한 기운의 가을비가 내렸다.

 

 

 

 

 "영화 속 그녀는 인기 많고 도도한 젊은 시절의 아이리스 머독으로 나오는데요. 그녀는 최고의 작가로서 명성을 드높이지만, 실상은 골초에 남자 밝히는 여자로 그려지고 있어요. 음, 하지만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존이 나오죠."

 

내 수 많은 단점을 완전했던 사랑으로 덮어주던 한 남자,

 

 "수많은 남자 중에 그저 한 명 뿐이던 존을 결국 선택하게 된 이유는 그녀가 만나봤던 사람 중 제일 착했기 때문이라고 그녀가 직접 그랬었죠."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남자,

 

 "그렇게 잘나갔던 그녀는 노년에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됩니다."

 

 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 입니다.

 

 "당대 최고의 작가는 점점 기억력을 잃어가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존 또한 절규합니다. 참, 가슴이 아리던 장면 중 하나였어요."

 

 그런 나는, 하루 전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을 잃는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 또한 아스라이 피어 오른 불꽃 속에 잠긴 검은 종이 같이 먼지 같이 사라지는 것.

 

 "이 영화 속 명대사라면 [사랑이 끊어지면, 생명도 끊어진다] 였죠. 여러분, 사랑은 정말 그런걸까요? 그녀의 기억이 점점 끊어지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높이 쌓았던 소중한 추억과 뜨거운 사랑까지 끊어지고, 결국에는 점점 스스로 피폐해져 이른 죽음에 이르는,"

 

 "그렇게 결국 짐은 사랑하는 아이리스를 병원에 들여보내게 되고요. 아이리스는 차가운 병원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는 영화는 끝이 나죠."

 

 "그 교만했던 아이리스를 짐은 왜 그리도 사랑했을까요? 그 잘난 아이리스는 스스로 알츠하이머에 걸려 회복불능이란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어쩌면 사람의 기억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조물주의 선물은, 어떠한 사람에겐 간절한 기적이고, 간곡한 소망 또는 꼭 가지고 싶은 축복이 아닐까요?"

 

 "우리의 기억이란, 사랑하는 소중한 모든 이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죠.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소중한 추억까지 전부 말이죠. 우리는 앞으로 추억이란 축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음, 가슴 아픈 이별을 한 이에게 남은 것 이란 추억뿐이니까요. 추억은 곧 어떤 이에게는 사랑, 전부가 아닐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머독은 말했어요. 사랑이란 오직 사랑을 함으로써 배울 수 있다고요. 진정한 사랑을 만났을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알 수 있는 건, 그저 전에 가졌던 다른 이들과의 추억보다 더 반짝이는 추억을 가질 수 있다 확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에 한 번뿐인 진정한 사랑이라고 확신 할 수 있죠. 사랑은 하면 할수록, 배우는 무언가 입니다. 그렇죠. 여러분?"

 

 

 

 

 

 

 

 

 오늘은 공방에서 조금 일찍 집으로 나섰다. 같이 일하고 있는 대성이 녀석의 개인적인 사정이 담긴 반차로, 점심부터는 혼자 가구들을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작은 개인 카페에 들어갈 모든 가구들을 비롯해 작은 잡동사니 쥬얼리까지 의뢰 받아 몸도 마음도 정신도 바쁜 2주를 꼬박 공방에서 보냈다. 오늘은 대성이 녀석도 없고, 무엇보다 하루 정도는 집에서 푹 쉬고 싶었다. 마침,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핑계거리가 생겨 마음도 편했다. 공방 문을 닫고 천천히 걸어가며 보이는 바쁜 서울의 모습,

 짧디 짧은, 붉고 아름다운 노을은 언제나 서울의 모습을 따스히 끌어 앉기 바쁘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노을이 왜 슬프게만 보일까. 따스한 기운의 노을을 보며, 동시에 쓸쓸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기억 속에서 곧 사라져버릴 오늘의 노을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았다.

 기억이란, 한 사람의 인격체 속의 수많은 인연들과 사연들의 소소한 추억으로 결여된다. 즉, 기억이란 곧 추억을 의미한다. 결국, 나는 기억도 추억도 한 숨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 버리는 슬프고도 불행한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다. 생각 없이 말을툭툭 내뱉는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어제 창피한 일을 겪었는데 아 정말 계속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려, 차라리 하룻밤 지나고 그 기억이 전부 사라졌으면 좋겠어 지용아, 부럽다. 라고 창피하고 쪽팔리는 흑역사의 기억이든, 절대 잊고 싶지 않은 행복한 추억이든 난, 그저 하루가 지나도 어제의 평범하든, 그렇지 않든 그냥 내 하루 동안의 일상을 기억 하고 싶다. 언제든지 아무 시간을 생각하면, 그때의 그 기억과 그 느낌, 그리고 분위기가 보통 사람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떠올랐으면 좋겠다.

 둥, 하고 큰 징 소리 비슷한 소리가 머리 속에서 울리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서서히 전에 있었던 기억들이 머리 속에서 깔끔하게 자취를 감춘다. 마치, 하늘의 아지랑이 노을같이. 짧은 시간 찬란한 아름다움과 포근한 따스함을 보여주고는, 언제 스스로 붉은 빛을 발산했냐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둠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행복한 추억을 언제 만들었냐는 듯이, 곧바로 어둠의 암흑과 혼돈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꼭, 노을은 지용과 닮았다.

 

 

"비 오네...."

 

 

 조금씩 투둑하고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소나기가 내리려는 것 같은데, 여유롭게 집으로 걸어가며 노을 진 서울의 모습과 반짝거리는 야경을 구경하려고 했었던 계획은 무산된 것 같다. 꼭 마음먹고 계획한 일들은 제대로 실행된 적이 없다. 내 인생은 꼭 이렇더라.

 비가 더 쏟아지기 전에 택시를 탔다. 어디 가세요? 하고 물어오는 택시 기사에게 북촌이요. 하고 말했다. 택시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소나기가 폭우처럼 내렸다. 그래도 오늘은 타이밍 하나는 참 잘 맞췄네. 택시 안에는 9월인 지금도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었다. 뭐, 딱 좋았다. 9월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여름하고 똑같이 너무 덥다. 밖은 비까지 내려서 더운 습도가 점점 더 올라가고 있는듯했다. 그래서일까, 창에는 하얀 김이 서렸다. 멍하니, 빗방울을 바라보다가, 손을 들고 빗방울이 달리는 차의 방향에 따라 흘러내리는 모습을 같이 따라가며 천천히 그렸다. 내가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가? 아무래도 익숙하게 빗방울의 모습을 창에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전에도 종종 이렇게 했었음에 틀림없었다.

 아저씨가 차 라디오를 작게 틀었다. 북촌까지 먼 거리를 운전하시면서 아무래도 차 안 분위기가 심심하셨나 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소라의 목소리가 촉촉한 빗방울처럼 내 귓가에 흘러 들어왔다. 비 오는 날에는 딱 듣기 좋은 목소리. 밤에 들었을 때도 좋았고, 지금도 참 좋은 분위기와 목소리를 자아냈다.

 

 

 

 "이소라의 가요광장, 오늘은 갑자기 밤에 소나기가 내려서 많은 분들께서 놀라 셨을 것 같네요. 그런데, 가을에 소나기라, 참 오랜만에 아름다운 모순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가을이 되었어도 더운 요즘, 모두들 건강조심 하시 구요. 일교차도 조심 하시 구요. 음, 오늘의 베스트 사연은 서울에서 거주하고 계시는 20대 남성분께서 보내주셨어요."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야경이 소나기의 빗방울에 겹쳐 보여 흐릿하게 빛나 보인다. 주황불빛, 빨간 불빛, 가로수의 노란  불빛. 아른아른하게 보이는 도시들이 빗소리와 차 소리에 잘 어우러져 서울의 모습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갑작스런 소나기가 싫지만은 않았다. 시원하게 쏴아, 내려주니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데,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20대 후반의 남성입니다. 오늘은, 제게 참 특별한 날 이예요. 소나기가 내릴 때마다 생각나는 찬란한 추억이죠. 저에게는 동갑 친구가 있었어요. 음, 사실은 대학교 같은 과 동기인데, 서로 같은 강의를 들으니까 얼굴만 알고 있던 사이였어요. 그냥, 인사나 안부만 물어보는 사이였죠."

 

 

 나도 대학 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상실증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려서 장기적인 추억들도 뜨문뜨문 생각나지만, 나름 얼기설기 엮어보면 재미있었던 추억들도, 슬펐었던 추억들도 있었다. 물론, 정확도는 장담 못한다.

 

 

 "저는 그때까지 연인이 없었어요. 그래서, 방학 때 혼자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인도에서 인력거를 처음 타봤는데 신기해서 타기 전에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죠. 그때, 저에게 아는 척을 하는 한국인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 사연의 주인공이자 첫사랑 연인이었죠. 그래요. 그저, 얼굴만 알고 있던 대학동기 말이 예요."

 

 

 배낭여행에서 정말 우연하게 만나, 서로 인연을 이뤄서 연인으로 발전한 커플 같은데, 나는 아직까지 열렬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났다. 뭐, 전에는 있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기억이 없는 건 당연지사고 그 흔한 사진 한 장, 메모 한 줄 심지어 서로 주고받은 러브레터 하나가 없었다. 대학교 때 난 어떤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특별한 추억들을 쌓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는 척을 하길래, 저도 아는 척을 했죠. 낯선 타지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니까. 속이 다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구요. 그 아이도 그랬는지 같이 인력거를 타기로 결정했고, 계속 이야기를 나눴어요. 하룻밤 묶을 장소도 정해서, 같은 호텔을 나눠 썼죠. 그 아이는 침대에서 저는 바닥에서 잤고, 다시 아침에는 인도를 구석구석 여행했죠. 역시 하나보단 둘이라고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어요. 그 아이와는 공통점이 참 많았어요. 좋아하는 음식도, 음악도, 영화도 심지어 라이프 패턴도 같더라구요. 말해보니까, 점점 진국 같은 매력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때까진 순수하게 좋은 친구로 지내기로 약소했죠. 그 아이도 제가 썩 싫지는 않았던 모양 이예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계속 서로를 공유했어요. 정말 친한 친구 사이가 된 거죠. 그런데, 제가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되어버렸어요. 언제부터 그 아이를 마음에 품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봄바람처럼 다가오는 따스한 기운의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 아이에게 용기를 내어서 고백했어요. 좋아한다고, 사귀어달라고. 그 아이는 수줍게 웃으면서 좋다고 그랬어요. 정말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있었어요. 전 미술을 전공하고 있었어요. 미대 대학생이라는 큰 변수 말이죠. 프랑스로 유학을 가보라는 제의가 있었어요. 저는 미술을 사랑합니다. 지금도 제가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있구요. 저는 그 아이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사랑하는 연인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었어요. 저는 프랑스로 떠났고, 그 아이와 계속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화를 주고받고 서로를 잊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벌어지니까. 자연스럽게, 서로 연락이 뜸하면서 심하면 3달에 한번 통화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죠. 누가 먼저 이별을 고하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별했습니다. 그리곤, 8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죠. 운명의 장난일까요. 저는 그 아이를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저를 기억하지 못하네요. 매일매일, 기억하지 못하는.."

 

 

 

 

 "저, 다 왔습니다."

 "아, 여기."

 

 라디오 사연 듣다가 벌써 집까지 도착했다. 참 저 남자도 기구한 인생을 살고 있네. 연인이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래도 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 같은데. 자연스럽게 헤어졌으니 애매모호한 관계가 되어버려서 그러는 것 같다. 

 택시에서 내려서 잠시, 라디오 사연을 생각하다가. 곧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

 

 집 아래층에는 담(潭)이라는 꽤 큰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의 관장 이름은 최승현이었는데, 아침마다 내가 위에서 내려오면 오늘도, 안녕하세요. 저는 최승현 입니다. 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하고 난 뒤에 자신의 갤러리의 문을 여는 모습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저 남자는 북촌에서 꽤 알아주는 갤러리의 소유주였다. 미술을 전공한 것 같은데, 언제 한번 갤러리를 구경하러 내려가 본적이 있었다. 갤러리의 안에는 여자들이 참 많았다. 내 생각에는 그의 미술을 구경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꽤 잘생긴 얼굴을 구경하러 오는 것이 아닐까?

 

 "저기, 저...."

 "......"

 "대학교 어디 나오셨어요?"

 "......"

 "아니, 저 그냥.. 아까 라디오 생각나서.."

 "서울 대학교죠?"

 "네?"

 "우리 같은 과였어요."

 

 절대로, 맹세코 몰랐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대학교 졸업 사진부터 종이가 뚫어지게 찾아봐야겠다. 정말,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럴 때마다 민망해져서 정말. 그런데 우연치고는 좀 특별하다. 날 기억하는걸 보면, 우리 둘 사이에 추억 하나쯤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죄송해요. 제가 기억을 못했네요..””

 ““뭐, 알고 있었어요.””

 

 ““..네?””

 ““아침마다, 인사하면 누구냐고 물어오듯 쳐다보셨거든요.””

 ““아, 저 죄송해요.””

 

 

 지용아, 내가 널, 정말 떠나보내려고 했었다. 우리의 사랑은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해서 널 잊고 널 떠나보내려 했었어. 어서 내 마음속에서, 내 추억 속에서 제발 떠나가라고 윽박도 질러봤어. 그런데 돌아오는 건, 넌? 이라는 질문뿐이더라. 너의 마음속에서 난 아직 떠나가지 않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어. 어리석게도. 널 아직도 생각보다 많이사랑해서, 네 기억도, 자꾸만 잊어버리는 네 머리속도 내가 전부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난 네게 너무 마음을 빼앗겨서 못 떠나겠어. 내가, 네 기억이 되어줄게.

 

 

 

 

***

지용이 내리고, 택시 안에는 택시기사와 잔잔한 이소라의 목소리만 흐르고 있었다. 라디오는 지용이 내리고도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병에, 걸려버렸거든요. 그런데, 저는 하나도 슬프지 않아요. 섭섭하거나 화나지도 않아요. 매일 얼굴을 봐도. 내일 아침이 되면 감쪽같이 잊어버리곤 새로운 사람 쳐다보듯 보아도 너무 좋아요. 이게 첫사랑의 위력이고, 사랑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아이의 하루하루의 기억이 되고 싶네요.””

 

 

 ““매일 아침, 저는 노트에 그 아이에게 할 말을 적곤 했습니다. 안녕, 당신. 내 사랑, 그대. 당신의 이름은 권지용(라디오에서는 가명처리)이고, 난 최승현이야. 당신이 우울해 보이면 나도 그날은 몸이 한없이 무겁고 가라앉아 웃음이 사라져버려. 그대의 하늘은 언제나 푸르고 밝길. 내가 그대의 모든 잿빛도, 아픔도 슬픔도 가져갈게. 당신의 행복은 언제나 영원하길. 그대를 사랑하는 연인이.””

 

 

 ““사랑은 하면할수록 배워나가는 무언가 입니다. 꼭, 새로운 연인을 찾으려고 사랑을 경험하진 마세요. 어쩌면 수많은 사랑의 결과인 진정한 사랑이, 예전에 만났던 어떤 한 연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죠. 자, 여러분은 지금 이소라의 가요광장을, 경청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내일은 언제나 밝을 거예요. 그럼, 신청 곡 비가 멈췄고 음악이 멈췄다 듣고 다시 만나요.””

 

 

 ““저, 지용씨.””

 ““네.””

 ““내일, 갤러리로 잠깐 내려오실 수 있으세요?””

 ““어, 뭐 가능하죠.””

 ““내일 밤, 8시에 여기서 만나서 같이 들어가요.””

 

 이제는 용기 내어 말하고 싶다. 당신 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오직, 당신이어야 합니다. 사랑해요. 나의 첫사랑, 내가 그대의 기억이 되어줄게요.

 지용은 생각했다. 누군진 잘 모르겠지만 환하게 웃는 미소가 정말 시선이 빼앗길 정도로 멋있다고, 남자지만 자신을 만나달라는 이 한마디에 가슴이 익숙하게 떨려오는 건, 아무래도 이 사람, 나와 전에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왠지 앞으로 내 하늘에 단단했던 어두운 장막이 저 사람으로 인해서, 거두어 질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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