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데이트 하러 갈래?”

 

 따뜻한 봄에 취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가 나에게로 왔다.

 

 “‥조금만 기다려.”

 

 비가 주룩주룩 내리치던 전 날과 달리, 그 날은 유독 햇살이 뜨겁지 않고 바람도 적당히 시원하게 부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봄 날씨였다. 정말 오랜만에 맞이하는 맑은 하늘과 집에까지 들어오는, 맡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의 고유한 내음. 한껏 들뜬 마음으로 서둘러 집에서 나와 그와 손을 잡고 오랜만에 데이트를 즐기러 나갔다. 남자끼리의 스킨십은 익숙지 않은 관경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뭐 어때. 우리는 연인사이인데. 남들이 예쁜 연애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쁜 연애를 할 뿐이니까. 오랜만에 만난 그라서 그런지,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이대로 하늘로 아름다운, 날개 달린 천사들과 날아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기분이었다. 화사한 햇살을 등에 매고 날 내려다보는 그를 볼 때 마다 괜히 가슴이 움찔움찔. 연애 초창기도 아닌데 괜스레 비죽비죽 웃음만 기어 나왔다. 해를 등지고 있어서 얼굴에 그림자가 지는 게 당연한데도 왠지 그의 얼굴이 화사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내 남자친구라 그런가.

 

 연애의 꽃은 놀이공원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 그와 함께 놀이공원으로 갔다. 놀이공원이라고 해봤자 서울의 어린이 대공원 같은 조그마한 공원이었다. 그냥 동네 공원보다 넓은 땅에 조그마한 놀이기구 몇 개와 동물들을 한데 모아놓고 구경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조그마한 휴식처. 그 곳에 멋진 연인과 함께 들어서니 참 기분이 남달랐다. 친구들이랑 심심하면 종종 오던 곳이었는데 정말, 동행하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기분이 이렇게 다르다니.

 

 “엄마, 나 이거 사줘!”

 “뭐? 안 돼. 이런 거 먹으면 이가 아야 한단 말이에요.”

 “나 양치 잘 하면 되잖아. 소영이 이거 사주면 안 돼요?”

 “안 돼요. 어서 가자, 아빠 기다리신다.”

 

 입구에서부터 느긋하게 꼭 잡은 손을 느끼며, 향긋한 봄의 풍경을 느끼며 걸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조그마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꼬마 여자아이가 제 엄마한테 찡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주욱 옮기니 놀이공원하면 빠질 수 없는 군것질거리, 솜사탕이 있었다. 아, 솜사탕 정말 오랜만에 본다. 저거 원래 초등학교 때 조금 사먹고 여태 안 먹은 것 같은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갑자기 먹고 싶네.

 

 “승현아, 나 저거 사주면 안 돼?”

 “애냐, 네 나이가 몇인데 솜사탕이야. 게다가 너 단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래도……. 오랜만에 봐서 그런 지 당긴다. 먹고 싶어. 응? 승현아, 사주라. 응?”

 “‥참 나, 알았어. 사 줄게. 그 대신 너 다 먹어야 돼?”

 

 당연하지, 누가 사주는 건데 내가 남기겠어? 아빠 손을 잡고 장난감 진열장으로 도다다다 뛰어가는 남자아이처럼 그의 손을 꼬옥 잡은 채로 솜사탕 가게 앞으로 갔다. 난 하얀색 먹을래. 하얀색으로 사줘. 왜 하필 하얀색이야? 맑고 깨끗하잖아. 치유되는 기분이랄까? 한껏 들떠서 색상을 고르고 있는 우리 모습 뒤로 그 조막만한 여자아이가 빼액 소리를 지르며 제 엄마한테 뭐라 뭐라 하는 게 들렸다. 음…… 이래도 되나.

 

 “아가, 이거 먹을래?”

 “어…… 감사합니다! 아저씨 고마워요!”

 

 괜한 오지랖을 떤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신경이 쓰여서 안 되겠더라. 연인과 함께 외출하는 목적이 아닌 이상 잘 쓰지 않아 꼬깃꼬깃해진 지갑을 꺼내고는 이내 핑크빛 솜사탕을 아이에게 쥐어주었다. 어린 여자아이니까 핑크색을 좋아하겠지. 그러자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했고, 아이의 엄마는 당황스러워 하다가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띠웠다. 감사해서 어쩌죠.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행복한 표정으로 앙 베어 무는 아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다가 그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 짧은 사이에 벌써 계산을 마쳤는지 커다랗고 하얀 솜사탕 하나를 손에 든 채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나 혼자 다 먹으라고?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가니 그가 같이 먹으려고 하나만 샀다며 한 움큼을 떼어 내 입에 물려줬다. 내 입으로 달콤한 무언가와 함께 그의 손가락이 조금 들어왔다. 먹지 못하는, 약간 짭짜름한 맛이 도는 것을 앙 베어 물까 생각하다가 그냥 혀로 살짝 밀어 밖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는 입안에 서서히 감도는 부드럽고 달콤하게 녹아드는 기분에 취해 얼굴 근육을 살짝 푸니 그 역시 날 보며 씨익 웃어줬다. 잘생겼다. 부드럽게 잘생겼다. 부드럽고 따스하고, 달콤하게 잘생겼다.

 

 그와 함께 다시 걸음을 옮겼다. 놀이공원 깊숙이 들어갔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새록새록 어린아이의 마음이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따스한 햇볕에 취해, 마치 우릴 향해 불러주는 듯한 짹짹 노래에 취해,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정성스레 떼어서 먹여주는 달콤한 군것질 거리에 취해있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흐른 것 같다. 그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 그 당시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 때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정말로 시간이 멈추어 버렸을까. 멈춰버린 시간 속에 그와 평생 행복함을 누릴 수 있었을까.

 그 때엔 그와 같은 것을 나누어 먹었고, 솜사탕을 들고 있는 그의 팔에 내 팔을 끼워 넣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부드러움을 녹아낸 표정으로 싱긋 웃어주었다. 한 개의 솜사탕을 나 한 입, 너 한 입 나눠먹으니 어느새 마지막 한 입만 남아있었다. 그 한 입을 내게 먹여주겠다며 일부러 내 입가에 덕지덕지 묻히고는 닦아주겠다는 핑계로 입을 맞추어왔다. 참으로 달콤한 핑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침에 의해 사르르 녹아내리는 솜사탕처럼 그와의 입맞춤에 내가 솜사탕이 되어 그에게 녹아내렸다. 내리쬐는 햇볕이 따스한 조명이 되어, 딱딱한 인공 바닥이 편안한 무대가 되어 그와 밀착해나갔다. 그의 숨결이 느껴지고, 그의 손길이 느껴질 때 마다 정말로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녹아내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와의 입맞춤은 정말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불판 위의 버터였으니까. 부드럽고도 뜨겁게. 따스하게, 황홀하게.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 말고 그 때의 시각에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행복하지 않을 수 없던 순간이었으니까. 내 일생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으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어라 쑥덕거리든, 높은 곳에서 우릴 지켜보는 동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던 식물들이 무슨 표정을 짓든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중요한 건 단지 나와 그가 함께 있었다는 것, 그 자체였으니까. 정말 잊을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그와 함께였으니까. 마치 정말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꾼 것 같았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그와 나 사이에는 친구들도 없으니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친구로서 첫 만남을 가진 게 아니었으니까. 그가 나에게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날 놀이공원 데이트도 그가 직접 나에게 다가와 가자고 청한 거였으니까.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그게 무슨 연애냐 쑥덕거리지만 난 이게 좋아. 괜히 연락해서 서로 싸우고 쉽게 질리는 게 없잖아. 보고 싶은 마음을 키우면서 기다리다가 만나게 되면 그 보고픔을 배로 키워 사랑으로써 건네주면 되는 거니까. 그가 날 찾아와준다는 그 자체가 나한텐 행복으로 다가오니까. 날 잊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놀이공원 데이트 다음 날은 그러려니 했다. 피곤해서 일찍 자나보다. 이튿날도 그러려니 했다. 바쁜가 보다. 사흗날도, 나흗날도 그러려니 하려 노력했다. 그는 적으면 이틀, 많으면 4일에 한 번 꼴로 찾아오곤 했으니까. 닷새. 하루쯤은 늦어도 괜찮아. 엿새. ‥조금 불안하지만 괜찮을 거야.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무슨 일이지? 왜 갑자기 날 보러 오지 않지? 직접 찾아가 봐야 할까?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그를 찾아가지?

 

 계속해서 기다렸다. 혹시나 그가 내 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로 연락할까 애꿎은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아니, 우편으로 연락 하련가? 우편함도 들락날락.

 시간님이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을 따라 멀리멀리 가버렸는지 그를 마냥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열하루, 열이틀, 열사흘, …, 열아흐레, 스무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이 황폐해져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멀어짐은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느껴졌다. 마치 마취주사를 놓지 않은 채 생치아를 잡아 뽑는 것과 같은 아림이 느껴졌다. 잇몸대신 가슴에 피가 솟구쳐온다. 고장 난 수도꼭지마냥 콸콸 쉼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가 너무나도 보고 싶다. 그와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가 이렇게 한순간에 날 멀리 떠나갈 줄 알았다면 그 짧은 여덟 자리 숫자라도 알아 놓을걸. 그가 날 떠난 게 맞나? 아닐 거야. 그는 인기 많고 바쁜 사람이니까 나에게 올 시간이 없는 거야. 일에 치여 살고 있을 거야. 불쌍한 내 사람. 어서 내게로 와요. 내가 안아드리겠습니다. 제 두 팔 벌려 당신을 안겠습니다.

 

 스물 하루 되는 날 밤, 드디어 그가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반가워 어디에 갔다 이제 오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이제 그만 꿈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

 

 싫습니다.

 

 “사람들이 다 너보고 뭐라고 하는지 알고는 있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요. 나는 그저 당신만 있으면 됩니다. 난 당신 없는 이 현실이 진심으로 싫습니다. 깨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을 만나는 이 꿈속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마치 비가 갠 후에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처럼, 공원을 거닐다보면 느껴지는 향긋한 풀 향기처럼, 당신과 맞닿은 손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처럼, 날 쳐다보는 당신의 사랑스러운 눈망울처럼, 나는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당신과 함께 있다는 이 순간이 나는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사람들이 나보고 손가락질하며 속닥거려도, 당신과 함께 있는 이 곳, 이 순간 자체가 나에겐 행복입니다. 그러니 부디 나한테 이러한 행복에서 벗어나라는 그런 끔찍한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미안해.”

 

 

 

 그날 이후, 하느님이 내게서 햇살을 앗아가 버렸다.

 

 

 

 

 

 

 

해오라비 난초 :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

Copyright (c) 2014 open1128.wix.com/xxxtopxgdxxx All right reserved 이 사이트의 모든 컨텐츠는 무단으로 도용할 수 없습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