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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둡고 낡은 지하실의 유일한 출구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계단이었다. 천장, 그러니까 윗 층 바닥에 네모지게 뚫린 구멍에서 한 줄기 햇빛이 내려와 콘크리트 바닥 위에 오목다각형 형태의 잔상을 남겼다. 평행사변형과 사다리꼴을 여러 개 붙여 놓은 듯한 노란 잔상 속에, 주먹 두 개 정도 크기의 납작한 기계 장치가 놓여 있었다. 쏟아지는 햇빛을 십 초 정도 받고 있던 둥그런 실루엣의 장치 윗부분에, 노란 불이 반짝 들어왔다. 이내 그것은 언제 것인지 모를 오래된 음악을 재생했다.

 

 기계 장치에서 서너 발짝 떨어진 바닥에, 모포를 뒤집어쓴 남자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음악이 재생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대로 앉아 음악이 흘러나오는 기계를 보다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 기계를 집어든 남자는 앞부분의 액정을 눌러 음악을 껐다. 곧 음악이 멈추고, 기계에서 발랄한 소년-혹은 소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최승현 님! 오늘은 뭘 하실 예정인가요?]

 "돈 될 만한 거 주우러 가야지."

 […….]

 

 더 이상의 대답을 돌려줄 만한 기술력이 들어간 물건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는 매일 아침 하루의 일정을 기계에게 말해주었다. 매일매일 일정이야 똑같으니 건네는 말도 같았지만 말이다.

 

 태양광 에너지로 작동하는 물건이군요…, 그의 물건들을 받아다 판매하는 잡화상은 말했다. 그 이상의 동작을 하려면 더 있어야 한다지만 일단 작동하는 데는 10초만 걸린다니 효율도 괜찮고. 다만 인공지능 부분은 버전 6.7이니까 저급 기술이군요. 못 해도 80년 전 물건인데, 당시에도 옛날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거였겠죠.

 

 잡화상 남자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들어 이 기계를 좋은 값에 사겠다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하루 일과를 규칙적으로 시작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자신이 옛 물건들을 돈벌이 수단이 아닌, 컬렉션으로 여기고 있기도 했다. 넓지 않은 지하실의 세 벽면에는 잡화상에게 퇴짜맞았지만 아름다운 고철들과, 생활에 필요성을 느끼고 팔지 않은 상태 좋은 기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과거에 지배당하는 시대였다.

 

 22세기 중반 발발한 제 4차 세계 대전, 그리고 20여년의 냉전 후 끝내 재발한 5차 세계 대전. 냉전 기간 동안 서로에게 한계까지 날을 세우던 세계는, 고작 2년 만에 종전한 4차 대전으로 인한 기갈을 딱 10년에 걸쳐 풀어냈다. 육해공 삼군을 모두 동원한 총력전이었다. 핵탄두가 등장하고, 전쟁의 발단이 된 국가들은 연합을 맺어 주위 국가들을 끌어들였다. 그 모든 이들이 힘을 잃은 후엔 옛 제3세계에서 전쟁 후의 보답을 약속하며 거대한 인력을 빌려왔다. 물론 약속은 실행되지 못했다. 그것을 지킬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의 모든 기밀은 최고의 해커들에 의해 파헤쳐진 지 오래였고, 종내에는 가장 저명한 생화학 연구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던 병균이 살포되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도는 사이클. 몇십 년처럼 느껴졌을 전 지구적 이벤트는, 변변한 종전 선언 없이 끝났다. 아무도 더 이상 싸울 의미를, 의욕을 찾지 못했고, 누가 누구와 싸우고 있었는지도 몰라 싸움을 끝낼 방법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쓰레기장이 된 지구의 마지막 물자를 끌어모아, 새로운 통치 기관 세계연방이 세워졌다.

 

 승현은 서로 다른 재질의 판자들로 만들어진 서랍에서 코트를 꺼내들었다. 딱 하나 있는 겉옷인 갈색의 코트는 드물게도 전쟁 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250mSv의 방사능 차단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성능은 아니었지만 어마어마한 값을 주고 산 만큼 험하게 다뤄도 망가지지 않았다. 코트를 여미고 부츠의 끈을 다시 조인 승현은 햇빛이 잘 드는 바닥에 놓여 있던, 그를 깨운 기계장치를 집어들었다.

 

 “프로요.”

 [프로요입니다. 최승현 님께 좋은 하루! 무엇을 하시겠어요?]

 “지도를 켜 줘.”

 [네, 현재 위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출시명을 부르자 적당한 텀을 두고 응답한 프로요는 곧 허공에 커다란 사진 한 장을 띄웠다. 붉은 점으로 표시된 현재 위치는 판자와 건물의 잔해가 쌓인 폐허 한가운데였다.

 

 “전방 30km 안의 가 보지 않은 진입로를 찾아줘.”

 [전방 30km 안, 가 보지 않은 진입로를 찾습니다.]

 

 잠시 후 그는 프로요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지하실의 뚫린 천장은 나무판자와 콘크리트 잔해로 얼기설기 덮여 있었다. 들고 있던 것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승현은 두 팔에 힘을 줘 나무판자를 옆으로 치웠다. 코트를 툭툭 쳐 떨어지는 먼지를 털어내며 그는 천천히 지상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붉은 해는 동쪽에 걸려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거대한 광원에 손으로 시야를 가린 승현은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눈에 띄지 않도록 지하실 입구를 덮어 놓고, 프로요를 꺼내든 그는 지도를 다시 띄웠다.

 

 오늘은 연두색 선으로 표시된 길로 걸을 것이다. 걷다가 좀 온전한 잔해가 나오면 들어가 보고, 괜찮은 게 걸리면 돌아나와 잡화상을 찾아갈 것이다. 정말 멋진 물건을 찾으면 도시에 갈 테고.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승현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지름 50km, 둥근 원 모양의 도시에 들어가 본 것은 세 번 뿐이었다. 

 

 세계연방은 전쟁 전 기준으로 인구 1500만 명을 넘긴 46개 대도시에 제 1번부터 46번까지 지부를 세웠다. 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지부 건물을 중심으로 도시가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사업은 지부 건물로부터 25km 떨어진 곳까지로 한정되었다. 부족한 자원을 언제까지나 제공할 수 없다는 연방의 지침이었다.

 잘 닦인 도로망과 깨끗한 시설에서 사는 도시의 시민들은 만 명이 채 안 되었다.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지부거리 25km의 도시, 시민들이 별장을 짓는 땅인 지부거리 30km의 개발 구역. 그 바깥, 지부거리 30km부터의 외부지에, 시민들의 몇 배가 되는지 모르는 이들이 살고 있었다.

 

 외부지는 건물의 잔해와 쓰레기가 널린 황무지였다. 꼭 필요한 것마저 없는 외부지 주민들은, 저들만의 방법으로 살아갔다. 남의 것을 뺏거나, 도시에서 구걸하거나, 아니면 승현처럼 과거의 물건들에 의존하거나.

 

 모두 전멸하고 난 후의 복구 속도는 매우 느려서, 사람들은 문화 생활까지 누릴 순 없었다. 부족한 물자도 충당하고, 일자리도 만들 겸 연방은 '문화 정책' 을 펼쳤다. 한두 세기 전의 유물들은 망가졌지만 막대한 양이었다. 연방의 문화성은 질에 따라 그것들의 등급을 나누었다. 각 지부의 문화성으로 유물을 가져오면 그에 맞는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문화 정책이었다. 그렇게 모인 것들은 개조되어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쓰여졌다.

 

 "프로요. 위험도 탐지를 해 줘."

 [위험도 탐지를 시작합니다! 수치 80이 넘는 지점의 5m 앞부터 경고 알람이 울리니, 집중해 주세요.]

 

 언제나 씩씩한 목소리의 프로요를 잠시 내려놓고 승현은 눈에 들어오는 폐건물 하나로 향했다. 1층이 온전한, 손상이 약한 편인 건물이었다. 외부지 주민들은 도적이 두려워 지상에서는 살지 못했다. 저런 건물들은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는 다뤄지지 않았다. 아주 운이 나쁘면 도적단의 본거지일 수도 있지만, 프로요가 조용한 걸 보니 그럴 일은 없을 듯했다.

 

 위에서 떨어지는 잔해들을 조심하며 승현은 벽이 갈라진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예상대로 건물 안 쪽은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쓸 만한 것들은 벌써 누가 다 가져가 버렸나 보다.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잡동사니들을 몇 번 헤집다가 승현은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승현 또한 이 정책의 수많은 수혜자들 중 하나였다. 튼튼한 몸을 가진 성인 남자는 23세기에 살아남기 누구보다 유리한 부류였다. 그는 도적단을 피해 건물 잔해로 위장한 지하실에 숨어 살면서, 매일 근방의 폐건물을 찾아다녔다. 쓸모있는 것을 잡화상에 가져다 팔고, 필요한 것을 사 와 생계를 이어갔다. 쓸모가 없더라도 아름다운 것은 가져와 혼자만의 컬렉션에 추가하는, 나름의 여가도 누릴 수 있는 생활이었다.

 

 트레져 헌터. 보물은 문화성 기준 1등급 유물의 통칭이었다.

 보물과는 거리가 멀지만, 승현은 직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좀 빨리 작업을 끝마쳤으면 좋겠다. 발걸음을 옮기며 승현은 생각했다. 해가 평평한 지평선을 노랗게 달구며 떠올랐다. 지평선에 유일한 굴곡은 서쪽으로 보이는, 40여 km 떨어진 도시의 빌딩 숲이었다. 그 중에도 가장 높이 솟은 지부 타워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제목도 누가 불렀는지도 알 수 없지만, 프로요에 들어있던 몇 곡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다.

 

 과거를 기억해, 과거를 잊지 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가사 중 유일하게 들리는 이 부분을 승현은 가장 좋아했다. 과거를 잊지 말라니, 과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신과 잘 어울린다고 그는 생각했다.

 

 과거를 기억해, 과거를 잊지 마. 빛을 비추어, 지금 내게 돌아와….

 

 

 

 

 

 

 

 

 

 

 

 이건 보물 급임은 확실한데. 승현은 이마를 긁적였다.

 

 하루 종일 일이 마음대로 안 됐다. 무리해서 지부거리 75km까지 걸었는데도, 포장식품 한 끼를 살 수 있는 가장 낮은 5등급 유물까지 하나도 찾지 못했다. 반쯤 포기 상태로, 은신처에 숨겨 둔 돈으로 식사는 해결할 수 있으니 딱 1km만 더 갔다가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참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승현은 눈가를 문지르며 처음 보는 장치를 내려다봤다. 오늘 본 중에 제일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던 건물에서 찾은 것은 거대한 타원형의 캡슐이었다. 원래 받침대에 얹혀 있었던 것 같은데 받침대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캡슐은 콘크리트 잔해에 기대어 반쯤 쓰러져 있었다. 희고 광택있는 캡슐의 하단에는 푸른색 빛이 번쩍, 번쩍 일정한 간격으로 켜졌다 꺼졌다 했다.

 

 멀찍이 서서 지켜보던 승현이 한 발짝 다가오기 무섭게, 노란 불이 들어오면서 캡슐의 흰 표면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홀로그램의 안내창은 읽을 수 있는 영어로 적혀 있었다.

 

 [안전한 재생이 가능한 상황으로 판단되어,생체 동결 캡슐을 개방합니다. 허가하시겠습니까?]

 

 생체 동결 캡슐이 뭔지는 잡화상에게 들은 적 있다. 전쟁 전 사람들이 긴급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명 활동을 정지시켜 가사 상태에 빠지는 장치라고 했다. 그리고 수만 명의 사용자들 중 단 열두 명만이 발견되어 연방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것도…. 승현은 안내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Y 버튼을 눌렀다.

 

 [개방을 시작합니다. 본 캡슐의 동결 일자는 2146년 8월 12일입니다.]

 

 2146년 8월 12일. …세계 4차 대전 발발일이다. 승현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빨간 불빛이 번쩍 들어오면서 흰 캡슐의 표면에 갖가지 색의 큐브들이 떠올랐다. 작은 큐브들은 기계음과 함께 조합되어 두 발부터 올라가며 사람의 윤곽을 만들어냈다. 14, 39, 65, 89, …. 퍼센트 기호 옆에 붙은 두 자리 수는 쉴새없이 바뀌며 작업의 진행을 알렸다. 거의 완성된, 실제 크기인 듯 보이는 실루엣은 승현보다 작고 마른 몸이었다. 

 

 캡슐 속 사람이 일어나면 그와 캡슐을 함께 가지고 지부로 가야 하는 건가? 그럼 보물 급에 해당되는 포상금을 받을 수 있으려나. 그런데 과연 그가 순순히 따라와 줄 것인가? 아니면 연방에서 캡슐 개방 유무를 추적할 수 있다니까 잠자코 서서 기다려야 하는가. …

 

 [개방 95% 완료. 본 캡슐 사용자의 신원 정보는 오픈 후 캡슐 내벽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현재 체온 정상. 맥박 정상, 혈압 약간 낮습니다. 1분 후 캡슐을 오픈합니다.]

 

 손을 초조하게 쥐었다 폈다 하며 승현은 작업을 지켜보았다. 곧 실루엣이 완벽하게 맞춰졌다. 실루엣을 이루는 부분이 서서히 유리처럼 투명해지며, 사람의 모습을 비추었다. 희게 빛나는 금발을 가진, 동양인 남성이었다. 승현은 저도 모르게 한 발 다가섰다. 투명한 유리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며, 양 옆으로 열려 남자의 실물을 드러내었다.

 

 남자는 부드러워 보이는 머릿결 사이로 전기선 같은 것들을 붙인 채, 얌전히 누워 있었다. 다 자란 남자보다는 소년 같이 보이는 갸름한 미형의 얼굴이었다. 승현은 가까이 다가가 크지 않고 오뚝한 코를 관찰했다. 세심한 관리를 받아 온 것 같다. 몇 번 본 적 없는 지부 시민들처럼 섬세한 솜씨로 가꿔진 신체였다. 새 것 같이 깨끗한 소년의 흰 옷을 바라보던 승현은 문득 제가 걸치고 있던 오래된 코트를 내려다보았다. 어두운 색이라 크게 티가 나진 않았지만 새 것 같지도 않았다. 황급히 코트를 탁 탁 털어내다가 그는,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던 캡슐의 구동음이 느려지고 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캡슐은 곧 가동을 멈추었다. 기계음이 멎으며, 소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승현은 숨을 삼켰다. 어리고 선이 얇은 얼굴에 그 눈을 보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크지 않은, 갈색의 눈은 저무는 햇빛을 받자 호박색으로 투명하게 빛났다. 느리게 눈꺼풀을 깜박, 깜박 움직이던 소년이 고개를 틀어 승현을 보았다. 무슨 말을 하나 열심히 생각하는 와중에, 소년이 천천히 일어나 앉더니 뭐라고 말을 건네었다.

 

 "어, 그러니까…."

 

 목소리가 예쁘다, 라는 감상이 들었다. 하지만 미성의 예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는 차분한 표정으로 승현을 올려다보며 소년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승현은 천천히, 정확한 발음으로 답했다.

 

 "미안하지만 네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영어? 동양인 같은데 영어를 써요?"

 

 이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던 승현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뜬 소년이 조금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동양인은 영어 말고 다른 언어를 쓰나?"

"네. 캡슐은 이동하지 않았을 테니까 여기는 한국어를 쓰는 곳이 아닌가요?"

"아아. 전쟁이 끝나면서 연방에서 영어로 통일시켰다고 들었어. 내 이름도 영어로 된 건 아니야."

"연방?"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소년이 질문을 던졌다. 응, 연방…, 하고 간단히 설명을 하려던 승현은 멈칫했다. 소년이 고개를 숙이더니 마른 어깨에 얼굴을 묻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승현이 허둥지둥 몸을 숙여 소년과 고개를 맞췄다. 아랫부분이 도톰한 입술엔 핏기가 없었다.

 

"추운가?"

"조금…."

 

 몇십 년 만에 깨어났는데, 변한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외부지가 안전한 곳도 아니지, 방사능 바람도 자주 불고. 소년이 얇은 흰 윗옷만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승현이 황급히 자신의 코트를 벗어, 선이 얇은 어깨에 둘러 주었다.

 

 "일단 이걸 입어. 방사능 차단 기능이 있으니까 좀 나을 거다."

 "…고마워요."

 

 느린 손길로 넉넉한 품의 코트를 여미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승현은 걱정이 생겼다. 방사능 차단은 코트가 몸에 딱 맞아야 제대로 되는데, 아무래도 돌아가면서 잡화상에서 코트를 한 벌 사야겠다. 코트가 귀한 판에 맞는 사이즈는 없겠지만 줄여 달라고 하면 되겠군. 그리고 이 애가 잠들고 난 후엔 잡화상을 캡슐로 데려와서 가져가라고 해야지. 그러려면 일단 지금 떠나야 한다.

 

 지부로 어떻게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던 일은 모두 잊은 듯, 승현은 프로요에게 캡슐의 위치를 저장하라고 시키고 소년이 내려오는 것을 도왔다. 소년은 승현보다 10cm 정도 작았다. 느릿한 동작으로 땅에 발을 딛은 소년이 살짝 비틀하더니, 팔짱을 끼듯 제 몸을 감쌌다.

 

"이제 어디로 가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을 따르는 말에, 승현은 안도감을 느끼며 시선을 내려 소년과 눈을 마주했다.

 

"이름이 뭐지?"

"권지용."

"음…, 캡슐 안에 지용, 너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고 했는데 그냥 물어봐도 되겠지?"

"네."

"몇 살이였어?"

"열여덟 살이요."

"그럼, 캡슐에 들어가기 전에는 뭘 했어?"

"…가수였어요."

"가수? 가수가 정확히 뭐지?"

"가수…, 노래를 불러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직업이에요."

"노래를 불렀군. 멋진 일인데. 요즘은 노래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든데…. 무슨 노래를 불렀어?"

 

 지용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가진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만지작거렸다. 승현은 그저 궁금해서 물었기 때문에 지용의 답을 굳이 들을 필요는 없었다. 방금 깨어난 애한테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자책하며 승현은 다시 물었다.

 

"대답하기 곤란해? 꼭 말할 필요는 없어."

 

 조금 망설이는 눈으로 승현을 올려다본 지용이, 슬쩍 눈을 감았다. 피곤하니, 라고 물으려던 승현은 그러지 못했다. 목을 몇 번 작게 가다듬은 지용이, 잔잔한 바람 소리를 반주로, 느리고 조용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과거를 기억해, 과거를 잊지 마. 

빛을 비추어, 지금 내게 돌아와….

 

 크게 뜨인 승현의 눈에는 지용이 비추어 사라질 줄을 몰랐다.

짤막한 노래를 끝마치고 천천히 눈을 뜬 지용이, 승현을 올려다보며 겸연쩍은 듯 살짝 미소지었다.

 

 "어땠어요?"

 "……."

 

 지용과 한참 눈을 마주하던 승현은 큰 숨을 내쉬었다. 

 

 

 "노래 제목이 뭐야?"

 "소년이여."

 "소년…."

 "응."

 

 고개를 끄덕이는 지용의 머리꼭지를 바라보던 승현은, 가까운 손을 뻗어 지용의 얇은 어깨를 감쌌다.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궁금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갈색 시선을 향해 승현은 대답했다.

 

 "집에 가자."

 "…네."

 

 지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현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연방 문화성이 아닌, 내가 너의 집이 되고 싶다. 나의 소년인 네가, 다시 눈 뜬 세계에서 빛을 비출 수 있게 내가 돕고 싶다. 당사자가 들으면 어이없어 할 테니, 승현은 그저 삼킬 수밖에 없는 말들이었다. 지용의 어깨를 잡지 않은 손으로 꽉 쥔 주먹에, 얼마나 많은 결의가 담겨 있는지는 그는 모를 일이었다.

 

 붉게 가라앉는 지평선에 유일한 굴곡은 동쪽으로 보이는, 70여 km 떨어진 도시의 빌딩 숲이었다. 그 중에도 가장 높이 솟은 지부 타워를 승현은 지용과 바라보았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소년과 그가 함께하는, 과거를 기억하며, 빛을 비추는…, 둘 중 누구도 겪어본 적 없을.

 

 "멋진 노래였어."

 "정말요?"

 "그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이야."

 "잘 됐다."

 

 지용은 칭찬을 들어 기분이 좋은지 고개를 끄덕끄덕,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타박타박 걸음을 옮겼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였다. 그 느린 걸음에 발 맞춰 걸으며 승현은 중얼거렸다. 

 

 “프로요. 이젠 네가 노래를 불러줄 일은 없을 것 같다.”

 “네?”

 

[…….]

 

 콧노래 부르던 것을 멈추고 반문해오는 지용에게 승현은 고개를 저어 보이며 아냐, 대답했다.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기 힘들어 대답은 짧았다.

 물론, 프로요는 더 이상의 대화를 들려줄 만한 기술력이 들어간 물건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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