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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다.

그래, 나는 지친 거다.

그의 날이 갈수록 차가워져가는 태도에, 줄어들어만 가는 연락들에, 늘어만 가는 외박과 여자들의 립스틱 자국에.

정말 신물이 날 정도로 지쳐버렸다.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들었다. 자연스레 내 시야에 들어온 벽걸이 시계가 지금이 새벽 2시라고 말해주고 있다.

 

 '새벽 2신데도 아직까지도 안 오나...'

 

 그는 어제도 외박을 하더니 아직까지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노트북 옆에 엎어놓은 폰을 들어 확인하니 그에도 역시 그에게로 부어 온 연락은 없다. 짙은 한숨이 나온다. 이게 대체 며칠째지? 이제 내 머릿속에는 또다시 최근 틈만 나면 그랬듯 여러 가지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그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내게 질린 걸까? 아님 내게 무슨 서운했던 일이라도 있었나? 와 같은 것들 말이다. 사귄 지 3년. 그 3년간 그는 단 한 번도 내게 차갑거나 무심하던, 그랬던 적이 없는데, 아니 오히려 나는 신경도 쓰지 않는 걸 자신이 먼저 신경 쓰고 사과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는 두 달 전 갑작스레, 정말 말 그대로 갑작스레 변해버렸다. 나의 질문에 차갑게 답을 하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심지어는 자신의 셔츠나 볼에 여자들의 립스틱 자국을 묻히고 돌아오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대체 어째서 그러는 것인지 알아낼 수가 없다.

 

 안 그래도 레포트로 과부하 된 머리를 끙끙 싸매고 고민하고 있던 중에, 현관 쪽에서 삑삑거리며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 들어온다. 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의자가 넘어질 정도로 벌떡 일어나버렸다. 그런 나를 보고 있자니 나 자신에게 웃음이 나온다. 지금 번호 키를 누르고 있는 사람은 영배일 수도 있다, 현석이 형일 수도 있고, 내 누나일 수도 있으며, 술 먹자고 쳐들어온 최승현의 대학 친구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그 일 것만 같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냥 느낌일 뿐이지만 그래도 저 사람은 분명 그다.

 

 '역시...'

 

 내 감대로 현관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것은 그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 최승현. 

 바로 그다.

 

 "왜 이제야 와?"

 

 붉은 그의 얼굴에 걱정이 되어 나도 모르게 그에게 의부증 있는 아내 같은 질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 자신이 말하고 나서도 아차 싶다. 이런 상황에 그런 걸 물어봐서 뭘 어쩌겠다고. 어차피 내게 돌아올 것은 차디찬 몇 마디일 뿐이란 것을 알고 있는데,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을 수가 없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그가 다시 돌아와 나를 안아주며 지금까지 미안했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면... 정말 그래준다면...

 

 내 질문에 그가 흘깃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주섬주섬 겉옷을 벗는다.

 

 "네가 알아서 뭐 하려고"

 

 그리고 짧은 침묵 뒤에 들려온 것은 역시나 서늘한 대답.

 오늘도 내 희망은 무참히 부서져 사라져버린다.

 마음이 아릿하게 아프다. 원래의 그는 이러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광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고 단순하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한없이 여리고 소심하기가 그지없는 그런 남자였다. 하지만 내 앞의 그는, 마치 나를 처음 보는 사람보다도 더 못하게 대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던 사람에게도 바보 같을 만큼의 친절을 베풀던 그가, 바로 나에게, 그가 사랑하는 나에게 말이다.

 제발... 내게 이러지 마. 

 

 "최승현...."

 

 그가 거침없이 욕실을 향해 걸어간다. 그는 지금 내 말을 듣고 있기는 한 걸까...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우리 그냥 헤어질까?"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그가 내 말에 멈칫한다. 그리고 찾아온 침묵.

 왜 대답을 안 해. 진짜... 진짜 왜 그러는...!

 그리고 나는 그때, 하필 그때 그의 목덜미에 선명히 찍혀져 있는 붉은 립스틱 자국을 보고야 말았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어떻게든 붙잡으려 하던 그의 손을 놓아버렸다.

 

 "왜 대답이 없어."

 "..."

 "왜 대답이 없느냐고."

 "..."

 "시발. 그래 네 하는 꼬락서니 보니까 정말 존나게 나랑 헤어지고 싶나 보다. 그래 씹 질릴 때도 됐네. 존나 고맙다. 사람 게이로나 만들고 버려줘서. 즐기고 나니 땡이란 거냐? 어이구. 그래, 나만 병신 됐네. 씹. 그래요 놈 말고 년들이랑 평생 잘 먹고 잘 사세요."

 

 지쳤다.

 그래, 나는 지친 거다.

 그의 날이 갈수록 차가워져가는 태도에, 줄어들어만 가는 연락들에, 늘어만 가는 외박과 여자들의 립스틱 자국에.

 정말 신물이 날 정도로 지쳐버렸다.

 

 "그냥 분위기 타서 이참에 우리 끝내자."

 

 

 "그냥 분위기 타서 이참에 우리 끝내자."

 

 마음이 아프다. 난 이러고 싶은 게 아닌데... 

 그의 독기 서린 말들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프다. 그래도 지용이가 나 때문에 평생을 아파하는 걸 보는 것보다는 덜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똑같이 아픈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 아픈 것 같다.

 지용이가 나가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뒤에도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미 눈에 가득히 고여 있는 눈물이 흘러 바닥에 소리 내며 떨어질까 봐. 혹시나 얕은 흐느낌이나 그를 붙잡으려는 내 마음의 언어가 새어 나갈까 봐. 만약 그것들이 새어나가면 지용이가 뒤돌아 이런 나를 봐버릴까 봐. 붙잡고 싶지만 그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널 위해서이니까. 네가 아파하는 것보다는 내가 네 몫까지 아픈 게 나아서 내가 지금 이런 짓들을 하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널 붙잡고 싶다. 구차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널 향했던 내 마음은 아직도 처음과 같이 그대로이다.

 내 마음은 억누르고 있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야.

 

 너무 오래 서있었는지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딱 의사가 말한 그대로이다. 고작 십분. 거기까지가 바로 나의 한계인 것이다.

 복도를 걸어가는 지용이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난 바닥에 쓰러지듯 앉아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다 아픈데 그러는 중에도 널 붙잡고 싶어 하는 내 욕심이 싫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미안해. 미안해 지용아. 속으로 수백 번을 되뇌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도. 널 떠나보내기 위해 일부러 못된 짓거리들을 하고 다닐 때도. 그리고 결국 널 떠나보낸 지금도. 내가 다리를 잃는다해도 날 끝까지 끌어안고 갈 너를 알기에. 너는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로 떠나가 주길 바란다. 그게 내가 그나마 행복할 수 있는, 아프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유일한 방법이니까.

 

 

 

 

 

 

 

 [최승현 씨... 이거 대단히 죄송한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6달 전에 건강검사를 받았을 때 의사가 내게 처음으로 한 말은 저것이었다. 딱 들으면 알 수 있는 그런 멘트. 사람을 심리적으로 압박되게 만드는 그런 말. 불안한 느낌이 온몸을 엄습했다.

 

 [왜 그러시죠? 뭔가 심각한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나의 물음에도 의사의 표정은 차가운 무표정이었다. 이런 모든 것이 익숙하다는 듯이. 죽음을 오랜 시간 마주 해온 사내 그저 무감하게 흰 가운을 입고 내 앞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최승현 씨, 최근 다리가 불편할 때가 많다 그러셨었죠? 갑자기 안 움직여진다거나 풀린다거나 그런 것들요.]

 [네.. 그렇긴 한데 그래도 몇 분 있으면 괜찮아지고 그러던데요..]

 

 몸이 떨린다. 몇 달 전부터 느껴오던 그 미세한 아픔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그것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 것일까? 

 그렇다면 얼마나? 

 나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일시적인 것이라 생각하며 방치해 두셨던 게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군요. 다리를 무리하게 사용하셨는지 최승현 씨 다리 쪽 신경에 손상이 굉장히 많이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 '굉장히'라는 의미는 이미 치료가 소용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하고요.......만 호전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 것 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그것은 내가 다리를 잃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나의 두 다리를 평생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것은 지용이었다.

 

 지용아, 지용아, 지용아

 나는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그때, 나는 널 떠나보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되도 나를 끝까지 사랑한다 말한 너를.

어떻게든 그런 너만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적어도 너만은...

 

*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헤어졌다 해도 홧김에 충동적으로 헤어진 거라 어찌해야 할지 갈피도 못 잡은 채로 무작정 이끌리듯이 그의 행동들을 눈으로 좇은 것이 벌써 이주 째다. 처음에는 그냥 아직 사랑하기에 신경이 쓰여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아마 누구나 내 상황이었으면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고 말이다. 게다가 같은 학과여서 그런지 겹치는 강의가 많아 나는 거의 그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언제부턴가 그의 행동들에서 이상한 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그를 그저 바라보기만 한 지 이틀째 일 때, 나는 그가 항상 타고 다니던 검은 자전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일 재에는 그가 축구화를 한 번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가. 그것도 최승현이 축구화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니. 날씨가 좋으나 나쁘나 축구화를 들고 축구하자며 남자들을 몰고 다니던 그는 웬만한 다리 부상에도 그냥 축구화를 신고 우리 학교의 잔디구장을 마구 뛰어다녔다. 그런 그의 행동들에 걱정이 된 나의 말들에 그는 밝게 웃으며 아프긴 해도 참을 만하고 그만큼 운동하는 것이 행복하다 말했었다. 그런 그가 축구화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 걸까? 그가 어딘가 아픈 것일까?

 

 [짹짹짹- ]

 

 멍하니 길가 벤치에 앉아 담배나 피우고 있는데 가방 속에서 나의 단조로운 짹짹대 컬러링이 울린다. 그가 커플 벨 소리라며 지정해준 그대로이다. 조금 울컥했지만 진정시키고 폰을 꺼내기 위해 가방 속을 뒤적거렸다. 이런 시간에 내게 전화를 걸 사람은 없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가방 앞주머니의 폰을 꺼내들자.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이름이 보인다.

 

 “야! 지용아!! 우리 지금 축구하는데 같이 할래?!”

 

 왁자지껄한 소리들 사이에서 영배의 목소리가 겨우겨우 들린다. 날씨가 맑아서 그런지 축구파 학생들이 축구를 하려는 모양인가 보다. 어차피 잘 하지도 못하고 또 구경할 기분도 아니어서 그냥 거절하려 했는데, 갑자기 내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야! 영배야! 지금 축구장이냐?”

 “어! 다른 학과 선배들도 오기로 했는데 우리 학과 사람들은 거의 다 모여있어! 근데 웬일이냐?! 진짜 오려고?!”

 “어! 근데 거기 유천 선배도 계셔?”

 “뭐? 유천 형? 그 형이 안 올 리가 있느냐? 지금은 없긴 한데 올 거라고 하셨어!”

 “어 어. 야. 근데 나 신발 없어서 오늘은 그냥 구경만 한다.”

 “오키 오키! 빨리 오기나 해라!”

 

 박유천 선배.

 그는 나와 최승현의 사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와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와 나는 몇 번 밖에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는 사이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 인맥 중에서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사람은 유천 선배뿐이었다. 가장 확실한 대답을 해줄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다.

 애초에 호기심도 많고 또 꼭 그에 대한 답을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나는 절대 이렇게 노력도 해보지 않은 상태로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었다.

 

 ‘얘기가 잘되면 나랑 최승현이랑 다시 어떻게 화해시켜 달라고 나 말해볼까...’

 

 실없는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는 나한테 질릴 만큼 질려있을 텐데. 나 혼자 일을 벌여서 어쩌잔 말인가. 일단은 그의 이상한 행동들에 대한 확실한 답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와 새로 시작하든가 완전히 끝내든가 하는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깊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대학교가 산에 위치해서 그런지 상쾌한 공기가 나의 폐부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평소처럼 나의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기분을 바꿔보려 일부러 더욱더 크게 심호흡을 몇 번 더하고는 내리막길을 힘차게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 지용아! 여기!”

 

 저쪽에서 초록빛을 배경으로 자그마한 인영이 폴짝거리며 손을 미친 듯이 흔들어 대고 있다.

 짧디 짧은 스포츠머리에 프랑스 국가대표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 보니 딱 영배다. 아무리 내리막길이래도 미친 듯이 뛰어 내려와서 그런지 숨이 턱턱 막힌다. 헐떡헐떡 거리며 하늘을 바라보다 무릎을 잡고 숨을 고르는데 영배 자식은 뭐가 그리 웃긴지 신 나게 웃어젖힌다.

 

 “어? 근데 유천선배 아직도 안 오셨냐?” 

 

 정신없는 와중에도 선배가 있나 없나 확인하던 내가 말을 꺼내자 영배가 겨우 웃음을 멈추고는 머리를 벅벅 긁는다.

 

 “아~ 박 선배가 친구 좀 식당에 데려다 주고 온다고 좀 더 늦을 것 같으시데. 방금 연락 왔어.”

 

 친구? 설마 최승현인 걸까...

 

 “얘들아 나 왔다아아아!!!”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우렁찬 소리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방금은.. 분명 유천 선배의 목소리다.

 

 “야야 많이 늦었지? 미안타 미안혀.. 어? 지용이?”

 

 그의 얼굴은 잠깐 놀라는 것 같더니 곧 담담해진다. 친구의 헤어진 연인을 만난 것이 아니라 마치 그냥 알던 후배를 만난 것 같은 그런 반응. 뭔가 안심이 된다. 저 표정이 그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선배”

 “그러게 하하 근데 이게 진짜 얼마만이냐. 너도 축구하려고?”

 

 아뇨 물어볼게 있어서요. 라고 말해야 되는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손 바닥애 땀이 미끈히 배어나오는 걸 보니 나 꽤 많이 긴장한 듯 싶다. 나는 손바닥을 바지에 스윽 닦고는 몇 번 더 입을 열어보려 시도하다 결국 입을 다물었다. 

 

 “설마... 최승현 건인가?”

 

 그가 눈치 있게 입을 연다. 

 분명 그의 말은 평소의 일반적인 톤인데 나에게는 왜 이렇게 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건지 모르겠다. 그의 말에 정곡이 찔려서 그런 걸까? 이제 그의 표정에는 진지함만이 가득하다.

 

 “그런 건 당사자한테 묻는 게 더 도움이 될 꺼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똑똑한 지용후배가 왜 나한테 그런 걸 묻는 걸까나?”

 

 하-

 한숨이 나온다.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그는 나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을 것 같다. 실망감에 고개를 푹 숙여버리니 내 시야에는 분홍색과 회색의 보도블럭과 이끼만이 가득하다. 다시 우울한 기분이 되어버린 내가 그에게 죄송하다 말하려는데 귓속으로 유쾌함이 가득한 웃음이 들려온다.  

 

 “하하하하. 그만 풀 죽어있어. 난 그렇게 착한 친구는 아니거든. 최승현이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긴 했지만 말야. 자, 그럼 궁금한 게 뭐야?”

 

 그의 말에 고개를 팩 드니 그런 내 머리칼을 선배가 벅벅 장난스럽게 쓰다듬는다.

 

 “저... 요즘 승현 선배가 운동을 아예 안하시는 것 같던데...”

 “오! 역시 지용 후배님이야! 아주 핵심을 팍 찌르는구만!”

 

 유천 선배의 표정에는 한 치의 불쾌함도 없다. 그저 즐거워만 보이는 표정에 나의 마음까지 편해진다. 그리고 유천 선배는 그 방글거리는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후배 씨는 승현이가 그러는 이유가 뭐 일꺼라 생각해? 집안사? 내가 아는 최승현은 축구하러간다고 누나 결혼식도 도중에 빠져나오는 놈이야. 물론 가벼운 부상도 아니지. 너도 알듯이 그 놈은 부상이 있어도 참고 뛰어 댕기는 놈이니까. 그럼 과연 최승현은 왜 그러는 걸까?”

 

 설마...

 

 “그게 최승현이 운동을 안 하면서 몸 사리는 이유야. 너와 헤어진 이유이기도 하고. 정말 멍청한 자식이지, 안 그래?”

 

 나의 멍한 표정에도 그는 방글방글 웃고 있다. 

 그가... 설마... 다리에... 심각한 문제가...

 

 “자, 그럼 후배 씨. 나도 너한테 질문을 하나 해도 될까? 인생은 기브 앤 테이크잖아?”

 

 그의 말이 귓속에 똑똑히 들려오지만 나는 반응하지를 못했다. 그가. 그가 다리를...

 나의 무반응에도 그는 개의치 않은 채 계속 입을 움직인다.

 

 “모든 걸 알아버린 지금도 그를 사랑하니? 그를 끝까지 포가하지 않을 자신 있어?”

 

 그 질문에 갑자기 정신이 차려지는 느낌. 나는 그의 그 말에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그 모든 것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그에 대한 답은 항상 정해져있었다. 내가 그를 받아들인 그 때부터.

 

 “네”

 

 이번만큼은 확고하다. 아니, 난 너에게 항상 확고해왔다. 

 

 “그래. 니 표정이나 말투나. 아주 진심이 뚝뚝 흘러 나오는 구만. 니가 생각하듯이 최승현 몸이 많이 아파. 자전거 타면 중심잡지도 못하고. 축구는 초반에 다리에 힘 풀려버리고. 아마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겠지.” 

 

 평생을 다리를 쓰지 못한다니. 드라마같은 일이다. 한 번도 나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

 지난 삼년간 나는 너에게 그만큼의 믿음을 주지 못했었던 걸까. 당신이 두 눈을 잃어도, 말하는 법을 잊어도. 식물인간이 된다 해도 난 당신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당신은 아직도 나의 마음의 무게를 모른다. 

 

 “지금 승현 형 어디 있는지 아세요?”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또다시 가르쳐 줄 수밖에 없다. 동성애를 혐오하던, 극 이성주의자가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동성의 한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가 얼마나 미친 듯이 그를 사랑 할 수 있는지.

 

 “음.. 아마 지금쯤 식당 쪽에서 낑낑거리고 있을 껄? 내가 데려다 주다가 축구하려고 버리고 왔거든”

 “알겠어요! 축구 재밌게 잘 차세요!”

 

 나는 이제 당신에게 달려간다. 

 나를 떠나보낸 당신을 붙잡으러.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보여주려

 

 “지용아! 혹시 네가 모를까봐 말해 주는 건데 그가 너와 헤어진 이유는 널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야. 알지? 만나면 심하게 갈구지는 마. 가장 힘들었을 녀석은 누구도 아닌 바로 그 녀석이니까.”

 “알았어요!”

 

 다시 나를 붙잡고 말하는 선배의 모습에는 내가 그에게 주먹이라도 날릴까하는 걱정이 가득하다. 그에 나는 웃으며 알겠다고 말했다. 내가 주먹을 날릴 리가. 나는 웃으며 몇 분 전 내가 달려내려온 언덕길을 다시 뛰어올라간다.

 언덕길을 그냥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 뛰어올라가려니 아까보다 몇 배는 더 숨이 막혀온다. 하지만 지금은 서둘러 당신을 만날 생각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야! 최승현!!”

 

*

 

 "야! 최승현!!"

 

 축구를 차러갈 수 없다는 사실에 기분이 우울해져서 멍하니 식당 밖 쪽에 있는 자그마한 조각상 위에 앉아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멍하니 있던 시야의 초점을 맞추니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지용이가 뛰어오는 것이 보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던 일이었지만 빠르게 침착하기 위해 호흡을 한번 가다듬었다. 속으로는 내가 덤덤하게 그를 또다시 내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말이다. 이럴 때만큼은 내가 유천이의 고집에 억지로 연기동아리를 신청했던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무슨 일이야?”

 “왜 말 안했어?”

 

 놀라버렸다. 설마 모든 걸 알아버린 건 아니겠지...

 

 “뭘? 갑작스레 이렇게 들이닥쳐서 그렇게 물어보면 누가 어떻게 알꺼라고 생각해?”

 “아프단 거. 왜 말 안했냐고”

 “무슨 개소리야. 난 보시다시피 이렇게 멀쩡한데”

 

 시발. 분명 박유천이다.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하지만 알아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 내 마음이 계속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점점 더 아파오는 다리에,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다 마음이 지쳐버려서 그런 걸까. 

 이런 내가 너무 싫다. 네가 괴로워할 걸 알면서도 너를 사랑하고 싶어하고 있는 내 자신이.  

 

 “뭐? 개소리라고?”

 “그래 개소리.”

 “다 알고 왔는데 작작 발뺌하라고!! 누가 너보고 맘대로 판단하랬어!! 내가 너야? 네가 내 맘을 어떻게 알아! 네가 그렇게 하면 내가 좋아라하면서 헤어질 줄 알았냐고!! 네 그 존나 짜증나는 짓들에 지치고 지쳐도 그 두 달 동안 존심도 다 버린 채로 너 안 떠나고 붙어있던 이유가 뭔데! 시발! 넌 네 생각밖에 안 해?! 내가 니 그 행동들에 얼마나 아파할 건지는 생각도 안하냐?! 존나 좇같은 새끼야! 니가 먼저 나 꼬셔놓고 이렇게 툭 니 사정에 대해서는 말도 없이 나 떠나보내면! ...떠나면... "

 

 지용이가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그리고 들려오는 자그마한 목소리.

 

 "...내가 아플 꺼라고는 생각도 안하냐고... 니가 아니라 내가 아픈데... 너 떠나면 내가 아픈데... "

 

 발뺌하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용이는 말 그대로 정말 모든 걸 알아버린 것이었다. 내 병, 헤어진 이유. 그 모든 것을. 지용이의 말들에 마음이 편해지고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알아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고 울지 말라고 미안하다고하며 꼭 안아주고 싶은데, 그와 반대로 몸은 움직이지 않고 눈에서 눈물이 펑펑 나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나 홀로 아파왔던 모든 것들이 넘쳐 봇물처럼 입 밖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너가...너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면 흐윽 나 진짜 죽을 것 같았단 말야.. 그래서.. 네가 나 아파도 끝까지 끌어안고 갈 걸 아는데..흡..차라리 너 떠나보내면 너는 그냥 잘 살테니까..그러면 나도 덜 아프..흑..고.. 나도 너 놓기 싫었는데 안그럼 니가 아파하는데...니가 나 끝 까지 사랑한다고 따라올 걸 아니까 그랬단 말이야.."

 

 벤치에 앉은 채로 엉엉 우는데 내 앞의 지용이가 그런 나를 자신의 품으로 안아온다. 그리고 나와 같이 엉엉 울어버리는 지용이.

그 울음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아픔들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날 식당을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은 처량 맞게 서로를 껴안고 울어대는 우리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연인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 한 채로 지나갔겠지.

 그렇게 울면서, 나는 지용이가 정말 나의 인연이자 연인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떠나 보내주려 했는데 그런 나를 붙잡고 자신이 아프더라도 같이 아파하겠다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용이는 나에게 믿음을 주었고, 이제 나의 역할은 그것을 믿는 것이었다.

 

 [Love is painful all the love is painful But pain is beautiful It’s same as you]

 

 나이기에 모든 것을 사랑할 너 그리고 그런 너를 믿어보려 하는 나

 

 

 

 

 

*epilogue. 

 

 '지용아‘

 ‘왜’

 ‘휠체어 미는거 안 힘드냐?’

 ‘안 힘들어’

 ‘나 오늘 보니까 2kg 쪘더라’

 ‘아씨 어쩐지 평소보다 뭔가 더 무겁더라. 내가 작작 쳐먹으라 그랬지. 먹는 거 포기하는게 싫으면 운동을 하던가’

 ‘으흐흐 넌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좋아할 꺼잖아’

 ‘난 사랑할 껀데?’

 

 승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웃는 지용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지용이가 비만이 된다하거나 신체의 어느 부분을 잃는다 해도 그를 사랑할 것이기에 그도 지용을 향해 밝게 웃었다.

 

 ‘지용아’

 ‘아 또 왜’

 ‘사랑해’

 ‘헐 갑자기 왜 그래. 오글거리게.’

 ‘나쁘다...’

 ‘뭐가’

 ‘야 이럴 때는 너도 사랑해라 말하는 게 정석이거든?’

 ‘방금 전에 말해줬잖아.’

 ‘와... 진짜 나쁘다. 입이 닳는 것도 아니잖아.’

 ‘하하하하하. 나 참. 삐진거야?’

 ‘말 걸지마라. 나 갱장히 예민하다.’

 ‘알았어 알았어. 말해주면 되지?’

 ‘엉 으흐흐’

 ‘사랑해요 승현 엉아’

 

 대학을 졸업한 뒤에 수년이 지난 뒤의 그들의 모습.

 휠체어를 타고있는 남자와 그것을 끄는 남자.

 수년전 그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보이는 그 모습

 아직도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

 

 아름다운 이 연인들에게 엔딩이란 게 과연 있기나 할까?

 영원토록 계속된 사랑을 할 것만 같은 이들사이에는 아마 끝과 엔딩이란 단어가 존재하지조차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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